사랑받는 남편이 되려면

19.10.22(화)

by 어깨아빠

조용히 나오려고 했는데 아내가 따라서 깼고, 소윤이가 득달같이 따라 나왔다. 처치홈스쿨 가는 날은 일찍 일어난다고 나쁠 게 없긴 하다. 아내나 나나 어차피 일찍 일어나야 하고, 낮에 낮잠도 재우려면 차라리 일찍 일어나는 게 낫다. 나도 아침에 딸 얼굴 한 번 더 보고 출근하면 좋고. 퇴근할 때까지 연락이 안 되는 날이라 아침에 못 보면 하루 종일 아른거린다. (아내 얼굴이)


퇴근해서 집에 갔더니 아내는 옷도 안 갈아입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뭐야?"

"어. 부침개 해 먹으려고. 오징어랑 부추 넣고"


아내는 이미 어제였나 부침개 재료를 다 사뒀었다. 부침개가 먹고 싶다며 조만간 밤에 해 먹자고 했었다. 아내의 부침개를 향한 갈망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나 보다. 바로 오늘 저녁일 줄이야.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가 부침개 반죽 만드는 걸 보고 싶다면서 아내 옆에서 의자를 갖다 놓고 알짱거렸다. 요리할 때 애들이 옆에 서 있는 것만큼 성가신 일이 또 없다. 그 와중에 서로 의자에 서겠다고 툭닥거려서 시윤이는 내가 안고 보여줬다. 그게 뭐라고.


반죽은 아내가 만들고 부치는 건 내가 했다. 부치는 실력이야 당연히 아내가 월등하지만 난 기름을 때려 붓는다. 아내는 아직 건강 양심이 남아 있어서 최소한의 기름을 쓰지만 난 기름을 너무 조금 쓰면 들러붙는 게 싫어서 팍팍 붓는다. 오히려 기름이 너무 과할 정도로.


소윤이와 시윤이는 부침개를 막 부치기 시작했을 때부터 배가 고프다면서 난리였다. 일단 소윤이, 시윤이 것부터 조금 부쳐서 반찬으로 줬다.


"너무 맛있다"

"마시떠여"


사실 오늘의 부침개도 질감은 그저 그랬다. 엄마나 장모님처럼 주부 내공이 가득한 분이 만드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부침개는 아니었다. 대신 재료를 푸짐하게 넣어서 맛은 좋았다. 아내랑 나도 함께 앉아서 먹었다.


"여보. 그래도 맛있다"

"그러게. 맛있네"


배부르게 먹었다. 보통 때 같으면 씻고 잘 시간이지만 오늘은 둘 다 낮잠을 푹 잤다고 하니 재우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소윤아, 시윤아. 밥 먹고 같이 재활용 쓰레기 버리고 올까?"

"좋아여"


"여보도 커피 한 잔 사 줄 테니까 갈래?"

"그럴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것도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자기가 버리려고 애를 쓴다. 과연 언제까지 그럴까. 언제까지 엄마, 아빠가 시키는 심부름과 집안일을 즐겁게 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짧은 외출이지만 킥보드를 타고 나왔다. 원래 맞은편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카페에서 사려고 했는데 영업 마감된 뒤였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괜히 한 번 말해봤다.


"에이.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겠네"

"아빠. 집에 그냥 간다구여?"

"어. 카페 문 닫았대"

"아빠. 저는 바람이 좀 더 쐬고 싶은데 어떻게 하져?"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어쩔 수 없지"

"아니이. 저 쪽으로 한 바퀴 돌아서 가면 되져"

"그럴까?"


얼떨결에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산책을 했다. 아내랑 나는 커피도 한 잔씩 마시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나오기 전에 양치까지 하고 나와서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했다.


그렇게 한 바퀴 돌고 들어오니 재우기에 충분히 늦은 시간이 되었다.


"아빠. 오늘은 누구랑 자여?"

"엄마랑"


방에서 두어 차례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윤이한테 하는 얘기 같았는데, 대략 '자꾸 이렇게 장난치면 엄마 나간다', '한 번만 더 돌아다니면 엄마 나간다' 이런 내용이었다.


역시나 오늘도 아내는 탈출에 실패했다.


아내를 흠모하는 마음을 집안일로 승화시켰다. 너저분한 거실도 정리하고 더 너저분한 설거지도 하고 싱크대도 닦고 가스레인지도 닦고. 오늘은 개수대도 박박 닦았다. 어제였나 오늘이었나 아내가 얘기했다.


"저기(개수대)서 자꾸 냄새 올라오더라. 한 번 닦아야지"


연애할 때는 여자친구가 지나가면서 '이거 예쁘다' 이렇게 말한 거 기억해 놨다가 뿅하고 사주면 사랑받지만, 결혼하면 '아, 화장실에 휴지가 없네' 이런 거 기억해 놨다가 짠하고 해결해주면 사랑받는다.


화장실의 휴지 같은 건 뭐 로드샵에서 파는 머리핀 정도로 환원되지만, 개수대 청소는 18K 반지 정도의 가치가 있다.


고 내 마음대로 정의해 본다.


여보. 나 잘했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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