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3(수)
아내와 아이들은 제법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듯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통화할 때 느껴지는 집안의 분위기와 아내의 목소리, 아이들의 태도를 종합해 보니 그랬다.
퇴근하면서 아내와 통화를 했는데 형님(아내 오빠)네 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도착하면 바로 출발하겠다면서 미리 준비하면 주차장에 미리 나와 있겠다고 했다.
주차장에 도착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역시 두 아이를 데리고 '미리'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올라갔다. 소윤이만 날 반기고 아내와 시윤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에서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로 가서 들여다보니 아내와 시윤이 둘 다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아내는 울상이었다.
"하아. 너무 힘들다"
"왜. 똥 때문에?"
"어. 오늘도 벌써 몇 번째야"
그렇게 말하고는 푸념하듯 시윤이에게
"시윤아. 좀 한 번에 싸면 안 돼?"
라고 얘기했다. 6주 동안 똥 못 싸서 걱정하고 제발 싸기만 하라고 기도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현재를 감사하는 건, 이렇게 밤에 일기 쓸 때나 가능한 일인가 보다. 막상 하루 3똥 이상의 현실을 마주하면 평정심은 무너진다.
똥을 치우고 나서 곧바로 형님네로 출발했다. 수요일이니 축구하러 가는 날인데 시간이 별로 없었다. 형님네 가서 저녁만 먹고 바로 돌아와도 촉박했다.
"여보. 시간이 너무 없지 않아?"
"아, 그래서 여보는 먼저 가고 난 애들이랑 더 있다 오려고"
"아, 그래. 내가 택시 타고 갈까? 아니면 여보가 택시 타고 오는 게 낫나?"
"아니면 내가 데려다줄까? 애들은 잠깐 오빠네 맡기고"
"왔다 갔다 하면 시간이 꽤 걸릴 텐데"
"얼마 안 걸릴걸"
"그런가"
확실히 정하지 않고 일단 형님네 도착했다. 유부초밥과 어묵탕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먹는 게 시원찮았다. 그동안의 식사 데이터를 종합해 볼 때 유부초밥, 김밥 이런 종류는 둘 다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이런 건 취향의 문제니까 식사 태도가 좀 불량해도 참작을 해줘야 한다.
삼촌과 숙모라는 든든한 육아 조력자가 있으니 함께 있는 동안에는 괜찮겠지만 집에 오면 아내 혼자 애들을 씻기고 재워야 하는 게 좀 걱정이 됐다. 미안하기도 했고. 감정은 감정에 머물 뿐, 어떠한 변화된 실천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걱정과 미안함과는 별개로 내 몸은 축구장으로 향했다.
아내에게 차를 넘기고 내가 택시를 타고 갔다. 축구 마치고 돌아올 때는 다른 집사님 차를 얻어 탔다. 막 아파트 입구에 내렸을 때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어, 여보"
"뭐 했어?"
"나 방금 나왔어"
"아, 진짜? 집에 몇 시에 도착했는데?"
"한 8시 30분 넘어서"
"아, 그럼 애초에 좀 늦긴 했네. 자러 들어간 건 몇 시인데?"
"한 9시 30분 좀 넘어서. 시윤이가 안 잤어"
"아, 그랬구나. 고생했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는 그래도 생각보다 밝았다. (그 시간, 그런 상황에 처하면 밝기 힘들 때가 많다.) 아내는 나에게 얘기했다.
"빨리 재우고 나와서 [동백꽃] 도 보고 집 정리도 하고 내일 기도 모임 준비도 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뭐 매우 소박한 꿈같지만 막상 이룬 적은 드문 신비한 꿈이었다. 마치 내가 평생 하고 있는 다이어트 같은 꿈이랄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삼촌 집에서 아주 잘 놀았다고 했다. 아내는 이렇게 표현했다.
"애들이 잘 놀았다기보다는 삼촌이랑 숙모가 잘 놀아줬지"
아마 내년이 되면 삼촌과 숙모의 존재가 더더욱 감사해지겠지. 아내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