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4(목)
일이 좀 있어서 회사를 하루 쉬었다. 없던 남편, 아빠가 생겼다고 아침 시간에 여유가 생기거나 느긋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오늘 깨달았다. 그러려면 일찍 일어나서 미리 준비도 하고 그래야 한다. 오히려 안 그래도 바쁜 시간에 커피를 꼭 챙겨 먹겠다며 스타벅스에 들르느라 더 늦었다.(맞다. 지금 내 얘기하는 거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에 데려다주고 바쁘게 움직였다. 원래 계획은 처리해야 할 일 얼른 끝내고 시간이 좀 남으면 카페나 도서관에서 여유롭게 아내와 아이들 기다리는 거였다. 초장부터 꼬였다. 집에다 뭘 놓고 와서 다시 들르느라, 거기에 점심시간이 겹쳐서 대기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일을 다 마치자 딱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어. 나 이제 일 다 봤어"
"그래? 우리도 이제 끝났어"
"그래. 그럼 거기로 갈게"
아내와 아이들은 점심을 먹었다고 해서 난 김밥을 한 줄 사서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교회(처치홈스쿨 기도모임 했던) 근처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있었다. 시윤이는 오늘도 똥으로 나를 맞이했다. 김밥의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시윤이를 데리고 화장실로 갔다. 닦고 닦고 또 닦고 닦고 또 닦고.
저녁에 파주에서 약속이 있었는데 시간이 좀 떴다. 아내는 서울이라도 나갔다 오자고 했고 경의선 숲길을 목적지로 택했다. 교회에서 그리 멀지 않아서 금방 도착했다. 시윤이는 그 사이 잠들어서 내가 안았다. 앉을만한 곳을 찾아 좀 걸었는데 엄청 힘들었다. 빈 의자를 찾아 앉았더니 시윤이가 깼다. 그럴 거면 그냥 진작에 깨울 걸 그랬다. 팔이 후들거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킥보드를 타고 나와 아내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평화, 그 자체였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선선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무 문제없이 잘 놀고.
한창 열심히 놀고 있을 때 두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아이 둘이 나타났다. 어린이집을 마치고 잠깐 들른 모양이었는데 둘 다 아장아장 걸어 다녔다. 시윤이가 그 여자애들을 보더니 갑자기 바뀌었다. 괜히 그 앞에 가서 멈추지를 않나, 요상한 자세(킥보드 손잡이는 한 손으로만 잡고 나머지 한 쪽은 겨드랑이 춤에 기댄, 아무튼 뭔가 잔뜩 멋을 부리려는 듯한)를 취하지 않나, 집에서 혼자 하두리 셀카 찍을 때나 지을 법한 표정을 짓지를 않나. 아내랑 나랑 발견하고는 깔깔대고 웃었다. 세 살만 되어도 이런 수컷 특유의 허세가 나오다니. 시윤아, 아빠가 겪어봐서 아는데 걔네 너한테 관심 하나도 없어.
초코송이도 사서 나눠주며 나들이의 기분을 한껏 끌어올렸다. 꽤 한참 앉아 있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파주로 출발했다. 조금 미리 도착해서 식당 앞에 앉아 있었는데 어디선가 자꾸 구린내가 났다.
"시윤이 바지에 냄새가 다 뱄나 봐"
"그러게"
시간이 지날수록 그저 뱄다고 하기에는 너무 강력히 풍겼다. 들춰봤더니, 역시나. 또 똥이었다. 본능적으로 한숨과 짜증이 섞여 나왔다.
"하아. 시윤아. 쫌"
"여보. 내가 갈게"
"아, 됐어. 뭘 여보가 가"
아내는 자기가 데리고 가서 닦아주겠다고 했지만 아무리 짜증이 날지언정 아내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은 이런 상황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들어갈 때는 잔뜩 짜증이 나서 괜히 시윤이한테 한마디 하고 그랬지만, 막상 다 닦아주고 나면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괜히 더 과장된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시윤아. 다 닦으니까 개운해? 우와. 엄청 시원하겠다"
시윤아. 아빠의 부덕을 용서하거라. 힘들어서 그래.
아내의 친한 언니(나와 함께 일하는 형의 아내)네 식구와 밥을 먹었다. 놀이방이 딸려 있는 샤브샤브 가게였는데 덕분에 엄청 편하게 밥을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좀 컸는지 마냥 놀겠다고만 할 줄 알았는데 자기들 스스로 나와서 밥도 먹고 그랬다. 특히 소윤이는 미취학아동 식사 요금으로 낸 5,9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많이 먹었다.
밥 먹고 나서는 잠깐 그 형네 집에 앉아 있다가 왔다. 거기도 다섯 살 딸, 두 살 아들이 있었는데 큰 갈등 없이 잘 놀았다. 오히려 제각각 놀았다. 9시 넘어서 집으로 출발했다. 소윤이는 몰라도 시윤이는 차에서 잠들지도 모르니 일단 둘 다 간단히 씻겼다. 시윤이는 확실히 남자다. 목에 때도 더 많이 끼고, 땀 냄새도 더 많이 나고, 발냄새도 더 많이 나고. 아내 말로는 내 냄새도 난다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두 잠들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는데 도착해서 애들 눕히고 났더니 역시나 잠이 달아났는지 곧장 소파에 앉아서 [동백꽃필무렵]을 시청했다. 나도 엄청 피곤했는데 육아 퇴근을 하고 나니 새 힘이 솟았다.
출근도 안 했는데 이렇게 피곤한 걸 보면 역시 내 피로의 원천은 육아인가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