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7(주일)
소윤이와 시윤이가 먼저 일어나 거실에서 복작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소윤이가 잠시 안방으로 들어왔다.
"누나. 왜 들어갔떠어"
"잠깐 누워 있을려구"
"아. 지러. 나와아. 무저워어"
"잠깐만 누워 있다 나갈게"
"아. 지러어. 나와아. 나 무저워어"
그러고는 시윤이도 쭐래쭐래 방으로 들어왔다.
"소윤아, 시윤아. 나가자. 엄마는 좀 더 주무시라고 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오늘도 아침부터 배가 고프다며 빨리 밥을 차려달라고 성화였다. 어제 아내가 사 놓은 생선을 구워주려고 냉장고를 뒤졌는데 보이지 않았다. 냉동실에 얼린 간고등어가 몇 개 있었다. 본능적으로 어제 아내가 산 생선이 그 간고등어가 아닐 거라고 느꼈지만 대안이 없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거실 정리를 시켰다. 언제나처럼 소윤이는 조금 더 성실하게, 시윤이는 조금 더 뺀질거리며 임했다. 생선 말고 다른 반찬이 없어서 김을 좀 잘라줬다. 애들은 아기의자에 앉혀 밥을 먹게 하고 난 설거지를 했다. 그때쯤 아내가 나왔다.
그렇게 늦게 일어나지도 않았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시간은 촉박했다. 교회 갈 준비를 마치고 나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먼저 나왔다. 각종 재활용, 음식 쓰레기도 함께 들고 나왔다.
아내와 교회로 가면서 '왜 주일 아침은 늘 바쁜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결론은 이거였다. [애들은 9시까지 준비를 마쳐 놓고, 그다음 우리(아내와 나)는 9시 40분까지 준비를 마쳐야 한다. (지금은 9시 40분 정도에 애들 준비가 끝난다.)] 그렇게 해야 각종 변수(똥, 훈육 등)에 대응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목표를 삼아도 10-20분 지체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감과 사과를 하나씩 들고 갔다. 새싹꿈나무 예배실 앞에서 인사하고 헤어지려는데 소윤이가 다시 나왔다.
"화장실"
예배실 안에 앉았던 시윤이도 따라 나왔다.
"시윤이는 왜 나왔어?"
"누나늠여?"
"누나는 쉬하고 있어. 쉬하고 들어갈 거야. 시윤이도 들어가"
"누나랑 같이"
"누나 금방 들어간대"
"아아. 누나랑 같이"
시윤이는 소윤이가 나오자 소윤이 손을 꼭 잡고 들어갔다. 그렇게 누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처럼 굴면서, 같이 있으면 왜 그렇게 누나 꺼 뺏고 떼쓰고 그러는지. 새삼 한 번 소윤이가 누나고 시윤이가 동생이라 감사했다.
어제 오징어 먹을 때 보니 오징어에는 타우린 성분이 많아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쓰여 있었다. 그 덕분인지 예배 시간에 하나도 졸지 않고 잘 들었는데, 아내는 오징어도 소용없을 정도의 피로였는지 정신을 못 차렸다. 내가 멀쩡하면 아내가 졸고, 아내가 멀쩡하면 내가 졸고. 둘 중 하나라도 잘 들으니 다행인 건가.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는 간식으로 초코 우유를 들고 있었다.
"이건 밥 먹고 먹자?"
"아빠. 따아악 한 모만"
"딱 한 모금?"
"네"
"알았어. 그럼 시윤이는 딱 한 모금 마셔"
"아빠. 나도여. 한 모금"
"소윤아. 소윤이는 참을 수 있으면 참아 봐. 그게 더 좋은 거야. 참고 밥 먹고 먹는 게"
"아빠. 그럼 저는 이따 밥 먹고 먹을게여"
"역시. 소윤이 짱이네"
소윤이는 매우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늘도 목장 모임이 없어서 점심 먹고 시간이 꽤 남았다. 늘 가던 [윌] 말고 다른 카페에 갔다. 커피를 한 잔씩 시키고 무화과 깜빠뉴도 하나 시켰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또 무섭게 달려들어서 감히 집어먹기가 어려웠다. 순식간에 빵을 먹어 치우더니 자리를 이탈해서 돌아다니려고 했다.
"여보. 나 편의점 좀 다녀올게"
"왜?"
"애들 고래밥이나 사주게"
"고래밥? 왜?"
"아. 내가 좀 편하게 있으려고"
고래밥은 없었고 인디안밥이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역시나 정신을 못 차리고 한시도 손을 가만히 두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예나 지금이나 인디안밥은 온 손에 과자 부스러기며 침이며 다 묻혀가며 먹어야 제맛인가 보다.
시윤이는 이제 하루 삼똥은 기본으로 장착했나 보다. 내가 왜 이렇게 시윤이의 똥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독 오래 걸리는 뒤처리도 영향을 끼치는 듯하다. 무슨 마르지 않는 샘도 아니고 왜 이렇게 닦아도 닦아도 계속 묻어 나오는지.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감추고 태연한 척하느라 매일 괴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오늘은 내가 낮잠을 재웠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아내도 나도 꿀 같은 한 시간여의 휴식 시간을 가졌다.
잘 자고 있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깨워서 옷을 갈아입혔다. 졸려가지고 비몽사몽하는 와중에도 아빠 축구하러 가는데 따라가겠다고 열심히 옷을 입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소윤아, 시윤아. 이제 이번 주가 마지막일지도 몰라. 만약에 다음 주에 갑자기 추워지면"
오늘도 두꺼운 겨울 점퍼를 하나씩 챙겼다. 축구장의 필수품, 텐텐도 챙기고. 낮에 남은 인디안밥도 챙기고. 다른 날에 비하면 간식이 많이 적었지만 이제 간식으로 버티는 시기는 아닌 듯해서 그냥 조촐하게 챙겼다.
아내는 우리를 내려주고 자유의 바다로 떠났다. 생각만큼 날씨가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이들에게 간식이 담긴 가방을 내어주고 그라운드로 들어갔다. 오늘은 다른 아이들이 없어서 그랬을까. 시윤이는 유독 많이 징징거렸고, 그 징징거림의 원인은 소윤이가 많이 제공했고. 둘이 툭닥거렸다는 말이다. 어찌나 아빠를 불러대고 울어대는지. 도무지 경기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너네 이럴 거면 다음 주부터는 아빠 따라오지 마"
"아빠. 아니에여.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여"
오줌이 마렵다는 소윤이를 화장실에 데리고 가는 길에 했던 말이다. 나의 축구 인생을 연장하기 위해 애들 데리고 다니는 거면서 괜히 꼬장을 부렸다. 물론 축구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다시 천사 아빠 코스프레.
축구 끝날 시간에 맞춰 아내가 데리러 왔다. 파주에 가서 장인어른 장모님과 저녁을 먹었다고 했다.
"손주 없이 가도 반겨주셔?"
"그럼"
"역시. 딸의 위력인가?"
아내는 저녁을 먹고 와서 나랑 애들만 먹으면 됐다. [국수나무]에 가려고 했는데 문을 닫아서 그 옆에 있는 [김가네]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김밥을 먹겠다고 성화였다.
"너네 김밥 시켜주면 잘 먹지도 않잖아. 됐어"
말은 그렇게 했는데 오므라이스, 라면, 김밥을 시켰다. 오므라이스는 애들 거, 라면과 김밥은 내 거면서 애들 거. 나의 면박이 무색하게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김밥을 잘 먹었다.
"소윤아. 오늘은 별로 재미 없었지?"
"네"
"다른 언니, 오빠들이 없어서?"
"네"
"그럼 다음 주에는 안 갈 거야?"
"아니여. 그래도 가야져"
"왜?"
"축구는 맨날 가는 거에여"
"다음 주에 날씨가 추워지면 못 갈지도 몰라. 알지?"
"네. 알아여. 그런데 다음 주에는 보라 언니도 온다고 했어여"
"아, 그러네"
"시윤이는? 다음 주에도 아빠랑 축구하러 갈 거야?"
"네에"
내 유익(?)을 위해 애들을 데리고 다닌 거면서, 좀 성가시게 한다고 투덜거린 게 미안해서 한 번 물어봤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오늘 소윤이와 시윤이가 축구장에서 막 뛰노는 걸 보면서 나중에 롬이가 태어나고 롬이까지 여기를 뛰어다니면 얼마나 귀여울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 슬슬 정신을 놓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