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28(월)
근래에 보기 드물 정도로 집이 난장판이었다. 치우는 속도가 어지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아예 치울 의지가 없이 며칠(그래 봐야 하루, 이틀이겠지만)을 보냈다. 그런 와중에 어젯밤에 엄마와 아내가 통화를 했다.
"여보. 어머니 내일 일 없으셔서 와주신대"
아내는 든든한 육아 도우미의 방문을 기뻐할 새도 없이 우려스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
"여보. 집 어떻게 하지. 망했다"
"뭘. 그냥 치우지 마"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오늘 출근하는 나를 보면서도 비슷했다.
"여보. 난 망했어"
"괜찮다니까. 내가 엄마한테 전화할까?"
"뭐라고?"
"그냥. 집을 못 치웠다고"
"아니야. 그래도 최대한 치워봐야지"
그냥 [자아 만족]을 위한 수준의 정리도 힘이 들 텐데 [손님 맞이]용 치우기면 오죽할까. 아내 성격에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줄 리도 없었고.
엄마는 점심시간도 되기 전에 오셨다.
"여보. 집은?"
"그래도 엄청 부지런히 움직여서 나름 치웠어"
아내의 말투와 단어 선택에서 어떠한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아마 거의 태초(?)의 상태에 가깝게 치우지 않았을까 예상했다.
청소는 쓰고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청소의 막중한 부담을 이겨낸 아내는 다디단 육아 해방의 열매를 얻었다. 시윤이 재운다고 들어가서 함께 낮잠도 자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모두 시어머니 손에 넘겨 놓고 홀로 집에 남아 할 일도 하고.
퇴근해서 집에 있는 아내를 먼저 태우고, 마트에 있던 엄마와 아이들도 태워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아내가 매콤한 게 당겼는지 쭈꾸미를 먹자고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먹을 걸로는 콩비지를 시켰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를 등에 업고 [뺀질거림], [귀 닫기], [제멋대로 행동하기] 등의 기술을 시전했다.
"소윤아, 시윤아. 적당히 해. 할머니가 오셔서 기쁜 건 알겠지만 너무 지나치면 안 돼"
이 모호한 문장을 소윤이는 정확히 이해하고, 시윤이도 정확히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분위기는 감지하는 듯하다. 잠시 말과 행동의 변화가 생기긴 했다. 지속시간이 너무 짧다는 게 문제지만.
특히 시윤이가 막판에는 숟가락을 놓고 힘들다면서 꾀를 부렸다. 평소 같았으면 에누리 없이 끝까지 직접 먹으라고 했겠지만, 오늘은 할머니가 있었다.
"시윤아. 그럼 할머니가 먹여줄게"
소윤이와 시윤이는 할머니 양옆에 앉아서 서슬 퍼런 훈육의 칼날을 피했다.
할머니랑 마트에서 나올 때부터 각각 손에 쥐고 있던 고래밥과 초코픽(긴 막대과자에 초콜렛을 찍어 먹는)도 식당에서 먹었다. 소윤이는 이런 상황에서 대체로 이렇게 행동한다.
밥 먹기 전에는
"아빠. 이거 밥 다 먹고 먹어도 되지여?"
"응. 돼"
잠시 후
"아빠. 밥 먹자마자 이거 먹을 거다여?"
"그래, 알았어"
또 잠시 후
"아빠. 밥 먹고 이거 먹는 거 안 까먹었져?"
"어. 소윤아. 이제 그만 말해도 돼"
밥 먹고 나서는(마지막 한 숟갈을 뜨자마자)
"아빠. 과자 주세여. 과자"
"소윤아. 일단 입에 있는 건 다 씹고. 천천히"
계속 확인하는 그 과정이 가끔 엄청 짜증 날 때가 있다. 이건 소윤이를 겪어 봐야 안다. 시윤이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얘는 확인이 아니라 그냥 대놓고 조른다. 그러다 수 틀릴 때는 아예 주저앉아서 떼쓰고. 이런 식이다.
"아빠. 가자(과자) 지금 먹고 지퍼여어"
"안 돼. 밥 먹고 나서 먹는 거지?"
"그래두. 지금 먹고 지퍼어어"
"시윤아. 그만 떼 써"
"으아아아아아아아"
오늘은 조르지 않고 밥 먹을 때까지 잘 참았다. 물론 시윤이도 마지막 숟가락을 입에 넣자마자 과자 타령을 하긴 했지만.
엄마를 지하철 역에 내려드리고 집에 왔다. 집이 정말 깨끗했다. 당장 사진을 찍어서 부동산 매매 카페에 매물로 올려도 될 정도였다. 모처럼 문을 열고 평안함을 느꼈다. 아내의 노고에 박수를.
아내는 내일 처치홈스쿨 참관 수업이 있어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반찬을 준비해야 했다. 애들은 내가 재웠다. 오늘도 시윤이는 낮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금방 잤다.
"시윤이도 벌써 자?"
"어. 그러네"
"하. 얘 진짜 여보랑 잘 때는 좀 다른가 보다"
아내는 뭔가 많이 억울한 듯, 시윤이의 행태를 분석했다. 실제로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느끼기에도 아내랑 자면 유독 오래 걸리긴 한다.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