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 회사 안 간다

19.10.30(수)

by 어깨아빠


회사를 하루 쉬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쉬었다.


"아빠. 오늘은 왜 회사 안 가여?"

"음, 그냥. 소윤이, 시윤이랑 놀고 싶어서"


어제 오후까지만 하더라도 오전에 다 함께 영화관에 가서 애니메이션이나 볼까 했는데, 자기 전에 친구한테 연락이 왔다. 근처에 오는데 볼 시간이 되냐고.(가족 동반으로) 영화관 계획은 잠시 접어뒀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예고되지 않은 아빠의 휴무를 매우 반겼다. 아침 먹고 빈둥거리다가(실제로는 결코 빈둥이 아니다. 똥도 치우고, 설거지도 하고, 빈둥이 빈둥이 아닌 육안의 삶) 애들한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랑 세차하러 갈까?"

"아빠. 좋아여 가자여"

"제짜 가자여"

"여보도 같이 갈래?"

"아니. 난 집에서 좀 쉴게"

쉬든 집안일을 하든 소윤이와 시윤이의 방해에서 좀 자유롭게 보내라고 꺼내든 생각이긴 했는데, 막상 둘 데리고 가려니 좀 귀찮기도 해서 혹시나 싶어 아내에게 물어본 거였다. 가차 없이 거절당했지만.

동네 셀프 세차장으로 갔다.

"소윤아, 시윤아. 안에서 구경할래 밖에 나와서 구경할래?"

"밖에 나와서여"

"바께져"


소윤이와 시윤이를 한쪽에 세워 놓고 세차를 시작했다. 거품으로 차 여기저기를 닦는데 소윤이가 훈수를 뒀다.


"아빠. 여기 안 닦았어여. 여기 여기 여기도. 여기도 먼지 그대로다"


거품을 다 묻히고 나서 고압수를 틀자 소윤이와 시윤이가 환호했다. 자기들한테 튀는 물을 맞으면서 꺅꺅 소리 지르며 방방 뛰었다.


"아아아악. 시윤아아아아. 크하하하하하하"

"으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아악"

물 세차를 마치고 나서는 차 안을 청소했다.

"아빠. 밖에 물은 안 닦아여?"

"응, 오늘은 안 닦으려고"

"왜여?"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청소기를 한 번 싹 돌리고 나서 걸레질을 시작했다.

"자, 소윤이는 이거. 시윤이는 이거. 소윤이는 엄마 자리 닦고 시윤이는 시윤이 자리 닦아"

역시나 소윤이는 성실하게, 시윤이는 불성실하게 임했다.

"역시 소윤이, 시윤이가 도와주니까 엄청 깨끗해지는데?"

"아빠. 여기 봐여. 엄청 깨끗하게 닦았져?"

"그러게. 엄청 깨끗해졌네"

"아빠. 아빠. 나늠여?"

"어, 시윤이도. 깨끗하네"


혼자 왔을 때에 비하면 훨씬 간단히 하고 마쳤다.


"소윤아, 시윤아. 세차하느라 수고했으니까 편의점에서 초코 우유 하나씩 마실까?"

"좋아여. 좋아여"

"시윤이는 초코 우유 마시고 집에 가서 아빠랑 낮잠 한숨 자자?"

"네"


아파트 단지 정자에 앉아 초코 우유를 마셨다. 엄청 추운 건 아니었는데 한 번씩 세찬 바람이 불면 서늘함이 느껴졌다. 나야 괜찮지만 혹시나 애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었다. 안 그래도 소윤이는 비염 증세가 너무 심해서 아침부터 코가 꽉 막히고 눈은 간지러운지 계속 비벼댔다.


"소윤아, 시윤아. 얼른 먹고 들어가자. 바람이 좀 차다"


아내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 산 폴더 매트의 재가공(?)을 하느라 뜯었던 걸 다시 붙이는 작업이었다. 수선집에 가지고 갔더니 그런 건 안 해준다고 해서 직접 하는 거였다. 아내는 거의 재봉틀로 박았나 싶을 정도로 촘촘하고 정교하게 바느질을 했다.


"시윤아. 이제 아빠랑 들어가서 자자"

"엄마랑"

"에이. 아빠랑 밖에서 얘기했잖아. 이따 밤에 엄마랑 자고 지금은 아빠랑 자기로 했잖아"

"아아. 시더여어어. 엄마라아앙"

"아빠랑 자자. 얼른"

"으아아아아아아앙"


하아. 초코 우유 앞에서 맺은 언약의 무게가 떨어지는 나뭇잎보다도 가볍구나. 이럴 때 자주 쓰는 전략을 꺼내들었다. 일단 안아주기. 그다음 조곤조곤하게 아무리 울어도 아빠랑 들어간다는 걸 말해주기. 말해주면서 방으로 들어가고 곧바로 폐쇄적 선택지를 제시하기.


"시윤아. 침대에서 잘래? 바닥에서 잘래?"

"음, 찜대"

"그래. 그럼 침대에서 자자"


그러고 나서는 고분고분하게 잠들었다. 친구네랑 만나기로 한 시간까지 그렇게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점심을 대신해 냉동실에 있던 만두를 쪘다. 소윤이는 고기만두 두 개를 먹더니 안 먹겠다고 했다. 시윤이는 한 시간 조금 못 채우고 깨웠다.


"시윤아. 우리 이제 나가야 돼. 시윤이 배 안 고파? 만두 줄까?"

"아니여"

"만두 안 먹어?"

"네"


시윤이는 정말 안 먹었다. 잠에 취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잠이 좀 달아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옷 다 입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데 시윤이에게서 퀴퀴한 향이 났다.


"시윤이 똥 쌌어?"

"네"

"그럼 얼른 아빠랑 닦자"

"엄마랑"

"엄마 지금 준비하셔야 되고 엄마는 힘드니까 아빠랑 닦자"

"엄마라아아앙"

"시윤아. 얼른 와. 아빠가 닦아줄게"

"시더여어어어. 엄마라아아아앙. 으아아아아앙"


나름대로 일절 짜증의 기색을 안 내비치고 얘기했는데 기어코 엄마한테 닦아달라고 하면서 떼를 썼다. 시윤이가 세 살이라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마음 저 아래에서 올라오는 진심 어린 짜증이 용솟음쳤다. 뭐랄까, 인간적으로 정말 서운하고 야속해서 시윤이를 향해 내뱉었다.


"강시윤. 아빠는 뭐 너 닦아주는 게 좋은 줄 알아. 아빠도 힘들어. 힘들어도 닦아주는 거야. 아빠가 닦아준다고 하면 감사하다고 하면서 와야지. 왜 자꾸 떼를 쓰고 있어. 어? 그럴 거면 엄마한테 가서 닦아달라고 해. 아빠도 너 닦아주는 거 싫어"


시윤이는 울면서 아내에게 갔다. 세 살짜리한테 뭐 하는 짓인가 싶겠지만 매일 얼굴 마주하고 살다 보니 세 살이어도 퍽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나의 미성숙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엉덩이를 닦고 나온 시윤이에게 아내가 얘기하며 떠밀었다.


"시윤아. 얼른 아빠한테 가서 죄송하다고 해"


"아빠. 미안해여어"

"됐어. 아빠 시윤이랑 말 안 하고 싶어"


"시윤아. 아빠한테 가서 또 얘기해"


"아빠. 미안해여. 안 그럴게여"

"아빠는 누나랑 나갈 거야. 시윤이는 엄마랑 나와"


"시윤아. 얼른. 또 가"


"아빠"


서른다섯의 유치함은 거기서 매듭지었다. 시윤이를 안고 사과, 위로, 하소연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애매한 말을 속삭였다.


앙금을 풀고 집을 나섰다. 친구네랑은 카페에서 만났는데 친구는 돌을 앞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어디 내려놓을 수도 없이 안고 있어야만 하는 아기를 번갈아 안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친구 부부를 보니, 아내와 내가 꽤나 여유로운 듯 느껴졌다. 요즘은 이런 생각 뒤에 꼭 따라붙는 생각이 있다.


'내년 4월이 되면 다시 원점이지 뭐'


소윤이와 시윤이는 커피와 함께 시킨 빵을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소윤이는 진정되지 않는 비염 증세 때문에 힘들어하면서도 포크는 놓지 않았다. 낮잠 잘 자고 일어난 시윤이는 잔뜩 신이 났고. 소윤이가 안쓰러웠다. 만성 비염 환자로써 그 고통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계속 덥다고 하는 게 딱 나랑 비슷했다. 먼지나 알레르기 반응으로 인한 비염이 아닌, 갑작스러운(혹은 잦은) 온도 변화로 인한 비염일 때 주로 그랬다. 내가. 가장 죄스럽다. 비염을 물려준 게.


친구네랑은 금방 헤어졌다. 친구네가 아들 이유식을 먹이러 가야 한다고 해서. 차에 타서 출발하며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집으로 가면 되지?"

"여보. 우리 이케아 가서 저녁 먹을까?"

"크크크크크크크크"

"왜 웃어?"

"아까 집에 가서 볶음밥 해 먹자던 말은 어디 갔나 싶어서"

"그래도 되고"

"아니야. 밖에서 먹어"

"아니. 롯데 상품권이 있어서 롯데 아울렛 가서 먹을까 했지"

"좋네. 그러자"


오늘의 선택은 쌀국수. 아내가 먹고 싶다고 했다. 뭘 시켜도 애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집에서야 고민이 없지만 여기처럼 뭘 시키는지에 따라 아이들이 먹고, 못 먹고가 나뉘는 집에서는 고민이 깊어진다. 거기에 아이들이 잘 먹을지, 안 먹을지도 고려해야 하고. (그 말인즉, 두 개를 시킬 건지 세 개를 시킬 건지 고민이라는 말이다.) 세 개를 시켰다. 팟타이(애들 못 먹음), 쌀국수(애들 먹음), 새우볶음밥(애들 먹음). 이 정도면 괜찮은 조합이다. 아내의 욕구도 충족하면서 아이들도 함께 숟가락을 섞을 수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개수 선택에는 실패했다. 애들이 잘 안 먹었다. 빵을 비롯한 소소한 군것질을 좀 해서 그런가 소윤이도 시윤이도 숟가락질이 굼떴다. 아내는 푸드파이터를 방불케 하는 욕망에 비해 실제 용량은 작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금방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오늘도 내가 가장 많이 먹었다.


"아우. 배불러"

"아빠. 배부르면 그만 먹으면 되지여"

"안 돼. 음식 남기면 안 돼. 아빠는 음식 남는 게 너무 아까워"


남기는 게 아까운 건 사실이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갖고 진중하게 내면을 파보면 아깝다는 건 껍데기고 '먹고 싶다'라는 게 알맹이가 아닐까 싶다. 내 몸, 내 인생이 증명하는 확고 불변의 명제가 하나 있다.


"살찌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부제 : 물만 먹어도 살찌는 인류는 없다. 물'도' 먹은 것뿐이다)"


밥 다 먹고 나서는 아주 잠깐 걸었다.


"아빠. 저 여기 잠깐 구경만 좀 할게여"

"그래. 만지지 말고"


소윤이는 장난감 파는 곳에 가서 구경했다. 시윤이도 누나를 따라갔고. 소윤이가 참 기특한 게 장난감 구경하면서 늘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아빠. 저는 여기서 뭐가 제일 갖고 싶냐면여, 이거랑 이거. 나중에 아빠가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사주세여"


소윤이가 오늘 지목한 건 아기 인형을 돌보는 데 필요한 부수 장비들이 포함된 패키지 상품이었다. 요즘 누리(소윤이가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가슴으로 낳은 아기 인형의 이름.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교감선생님네 막내 이름을 차용한 듯하다) 육아에 열을 올리는 소윤이의 구미를 당길만한 구성이었다. 이럴 때마다 여전히 '아, 그냥 하나 사 줄까'하는 유혹에 시달리지만 버려도 버려도 정돈되지 않는 집을 떠올리며, 돈으로 산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주장을 떠올리며 참는다.


잠깐의 실내 산책(?)을 마치고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왔다.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수요일이니까.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애들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서두른 덕분에 아내와 아이들이 방에 누운 걸 보고 나오는 게 가능했다.


행복한 세 시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보통은 혹시나 잠들었을까 봐 섣불리 전화를 하지 않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아내가 구글포토를 공유했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그건 아내가 휴대폰을 만졌다는 얘기였다.


"여보"

"어. 뭐해?"

"나 동백꽃 봐"

"아, 그래. 끊을 게. 뭐 필요한 거 없어?"

"알아서 군것질할 것 좀 사 와"

"오키"


마트에 가서 과자를 조금 샀다. 아내가 드라마의 후반부를 시청하는 동안 샤워를 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드라마는 끝나고 난 뒤였다.


"먹을까?"

"그래"


아내는 아주 잘 먹었다.


"여보. 여보의 입덧은 확실히 끝난 걸로"

"크크크크크크. 그런가 봐"


롬이야. 이제 조금 이따가 태동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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