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31(목)
어제였나 아내가 소윤이 태어났을 때 에버노트에 썼던 일기를 발견해서 소윤이에게 읽어줬다고 했다. 방에서 읽어주고 아내가 먼저 나왔는데 소윤이가 한참을 안 나오고 있길래 들어가서 봤더니, 눈물 자국이 있었다는 거다. 소윤이한테 울었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했다.
아내가 읽어준 일기는 소윤이가 막 태어났을 때 모유 수유가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속상하고, 모유를 제대로 먹지 못해 배가 고플 소윤이를 생각하니 속상했던 아내의 심경을 담은 내용이었다. 소윤이는 그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생각했더니 눈물이 나더라고 얘기를 했다는 거다.
이제 소윤이도 이런 감정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는 게 좀 놀라웠다. 들어서, 배워서 알고는 있었어도 이렇게 사례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내가 일기에 너무 힘든 얘기만 써서 나중에 소윤이나 시윤이가 보고 '아빠는 힘들기만 했나'하는 오해를 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이렇게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을 적었는데 왜 아빠는 꼭 고난의 기록 같냐고 물을까 봐 걱정이 됐다.
자, 이제부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기록해야 하는) 오해 방지의 시간.
소윤아, 시윤아. 일기는 일기일 뿐이란다. 아빠가 쓰는 일기의 원칙(?) 혹은 추구하는 방향이 그런 것뿐이야. 엄마, 아빠의 일상을 남기는 거고 또 그걸 읽다 보면 엄마, 아빠가(특히 아빠) 얼마나 너희를 사랑하는지 자연스레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 또 굳이 일기가 아니어도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을 부비는 하루하루를 통해, 우리가 주고받는 사랑의 언어를 통해 너희 안에 부모의 사랑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고 믿어. 물론 너희와 보내는 하루하루가 매일 고상하고 우아한 건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매일 처절하고 피 터지고. 버겁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여전히 너희 곁에 있다는 건 뭐겠니, 도망치지 않았다는 거지. 단지 의무감 때문만은 아닐 거야. 아마 누가 대신해주겠다고, 이제 그만 가도 좋다고 해도 절대 양보하지 않았을 자리지. 너희 아빠로 있을 때 가장 빛이 났으니까. 너희가 그런 존재야.
이 일기를 읽을 때 아빠가 너희 옆에 함께 있을 수 있는 복이 주어지면 설명도 해줄 수 있고, 정말 감사하겠지만 그러지 못할지도 모르니 이렇게 가끔씩 써 두는 거야. 아빠가 얼마나 너희를 사랑했는지. 너희는 도대체 어떤 사랑을 먹고 큰 건지. 너희가 나중에 확인할 수 있도록 곳곳에 그런 장치를 마련하고 있단다.
소윤이가 들었던 4년 전 엄마의 일기처럼, 이 일기도 언젠가 너희의 가슴을 뜨겁게 하길 바라며.
소윤이가 태어난 지 1700일을 즈음하여,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사랑의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