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01(금)
당분간 일을 쉬게 되었다. (당분간이 얼마만큼인지는 모르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당연히 나도. 항상 내가 가장 먼저 집에서 나갔는데 오늘은 나는 남고 나머지는 떠났다. 영 어색했다.
애들 밥 먹은 거 치우고, 설거지하고, 소파에 쌓인 옷 정리해서 넣고, 아내가 바느질한다고 빼놨던 폴더 매트 스티로폼 다시 끼워 넣고, 재활용 쓰레기 정리하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흘렀다. 일찌감치 집안일을 마치고 여유 있게 헬스장도 다녀온 뒤에 내 시간을 좀 가지려고 했는데 생각만큼 여유가 없었다. 헬스장에 가서 속성으로 운동을 마치고 우리 집이 아닌 다른 집에 들렀다. 아내가 바디필로우를 받기로 했는데 내가 대신 찾아 놓기로 했다. 그걸 다시 집에 가져다 놓고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왔다.
소윤이가 어젯밤부터 기침을 좀 많이 하고 힘들어했다. 비염 때문에 코가 많아지고 기침이 잦아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어제 소윤이를 보니 그런 게 아닌 듯했다. 오늘은 새벽부터 깨서 힘들다면서 낑낑댔다. 열은 안 나길래 어디가 힘드냐고 물어봤더니 기침하고 숨 쉬는 게 힘들다고 했다. 몸살 난 것처럼 기운이 없냐고 물으니까 그렇다고도 했고. 감기가 찾아오려는 전조증상인가 싶었다.
처치홈스쿨 교회에 도착한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소윤이 토했어"
"진짜?"
"어"
"괜찮았어? 여기저기 다 묻었겠네?"
"아니 그래도 차에 봉지가 하나 있어서 그거 줬거든. 거기다 토해서 괜찮았어"
"그랬구나. 소윤이는 좀 어떤데?"
"토하고 나니까 좀 괜찮다고는 하는데, 걱정되네"
"그러게. 이따 병원은 가 봐야겠다"
"그러니까"
뭔가 단단히 아플 징조는 분명했다. 그 뒤로도 처치홈스쿨에서도 한 번 더 토했다고 했다. 계속 누워있고, 힘들다고 얘기하고. 그러다 시윤이 낮잠 재울 때 혼자 누워있다가 잠들었다. 열은 계속 안 나는데 숨이 차다는 이야기를 계속 한다는 게 걱정스러웠다.
집에서 막 나오려고 할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우리는 조퇴하려고"
"소윤이 너무 힘들어서?"
"응. 조퇴하고 병원에 가 보려고"
"언제쯤?"
"아직 소윤이 자니까 좀 더 있다가"
"그래, 알았어"
집 근처 도서관을 가려던 계획을 바꿔 소윤이 병원 근처로 갔다. 카페에 들어가서 아주 잠깐 앉아 있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금방 왔다. 소윤이는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 소윤이는 웬만하면 잘 아프지 않는다. 단체 생활을 안 해서 그런지 면역력이 세서 그런지는 몰라도 잘 아프지도 않고, 어쩌다 한 번씩 열이 나도 하루 정도면 나아지곤 한다. 병원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언제 갔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마치 회색 같은 소윤이와 반대로 시윤이는 낮잠 잘 자고 엄청 쾌조의 상태였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소윤이 앞에서 이리저리 날뛰기 바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버튼을 누르는 순간 소윤이가 또 토했다. 꽤 많이. 그래도 이제 경험이 좀 생겨서 그런가 예전처럼 토하고 놀라서 울거나 그러지도 않고, 나름대로 옷이나 머리에 묻지 않도록 정석적인(?) 자세를 하고 토했다. 아내가 소윤이의 토사물을 치우고 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먼저 병원에 올라갔다.
소윤이가 아내에게 기대 아무것도 못하고 힘없이 늘어져 있을 때, 시윤이는 너무너무 신이 나서 돌아다녔다. 말도 많이 하고.
"시윤아. 조금만 조심해"
"왜여?"
"누나 아프잖아"
"누나아. 아파아? 왜 아파아?"
"몰라. 말 시키지 마"
소윤이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들은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셨다. 몇 번 더.
"아, 소리가 안 좋은데요. 일단 사진 찍어 볼게요. 소리는 천식이나 폐렴 소리네요"
소윤이는 엑스레이 사진도 아무런 저항이나 울음 없이 담담하게 찍었다. 사진 기다리는 동안 네불라이져도 하고.
"아, 다행히 천식은 아니네요. 여기 보시면 폐렴기가 좀 있죠. 그래도 심하지는 않구요. 만약에 여기서 열이 더 오른다거나 숨쉬기가 너무 힘들어진다거나 호흡이 가빠지면 바로 입원을 해야 하는데요 일단 지금은 그 정도 상태는 아니에요. 기침은 많이 해야 좋은 거구요, 그러면서 가래도 자꾸 나와야 하구요. 일단 약 처방해 드릴 테니까 잘 먹이시고, 오늘 밤에라도 심해지면 바로 입원하셔야 돼요"
난 안도했다. 천식보다는 폐렴이 낫다. 아내가 천식이 있으니 소윤이에게 비슷한 증세가 나타날 때마다 염려했는데, 다행히 아직까지는 천식 판정을 받지는 않았다. 폐렴이야 약 잘 먹고, 잘 쉬면 낫는 병이니까.
집에 가는 길에 죽 만들 재료를 샀다. 아내가 야채랑 고기를 넣고 죽을 끓였다. 소윤이는 두 숟가락 정도밖에 못 먹었다. 그나마도 집에 오자마자 힘들어서 방에 누워 있던 걸 약을 먹여야 하니 겨우 일으켜 먹인 거였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환자가 아닌 시윤이는 아주 잘 먹고.
시윤이는 여전히 흥을 주체하지 못했다. 몸으로 입으로 좋은 기분을 마구 표현했다. 시윤이의 그런 모습을 소파에 누워서 보던 소윤이가 힘없이 한마디 했다.
"시윤이는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뛰어다닐 수도 있고"
소윤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내가 약을 타려고 하자 소윤이는 그 아픈 와중에 이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엄마. 약 제가 타고 싶어여"
소윤이의 개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손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으면서 그걸 자기가 하겠다니.
난 소윤이가 약 먹는 것까지 보고 교회에 갔다. 반주 마치고 아내에게 소윤이는 좀 어떠냐고 카톡을 보내봤지만 답장은 없었다. 아내도 고단했을 거다. 하루 종일 처치홈스쿨 하는 것도 힘든데 거기에 아픈 소윤이 수발까지 들었으니. 아마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지 않았을까 싶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뒤로는, 다행히 소윤이의 기침 소리나 이상 징후가 없었다. 방에 들어가서 소윤이 이마도 짚어보고 손과 발도 만져봤는데 멀쩡했다.
일단 다행이었다. 내가 쉬게 된 후에 아픈 것도 그렇고. 소윤이의 쾌유를 위해 기도하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