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를 넘어 육아로

19.11.03(주일)

by 어깨아빠

시윤이가 많이 피곤했는지 문을 다 열어놔도 안 일어나고 계속 잤다. 아침으로는 간단히 토스트를 먹일까 하다가 아직 투병(?) 중인 소윤이를 생각해서 어제 남은 죽을 줬다.


오늘은 목장 모임이 있어서 동선이 번거로웠다. 예배 마친 뒤 식당에서 밥 먹고, 카페 들러서 커피 사고, 아내와 아이들은 집에 데려다 놓고 난 다시 교회에 갔다가, 목장 모임 마친 후에 다시 집으로 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다시 교회 근처의 축구장으로.


소윤이를 축구장에 데리고 갈까 말까 고민했다. 아내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지만 서너 시간을 밖에 있어야 하니, 괜히 다시 악화될까 봐 걱정이 되는 거였다. 소윤이는 가고 싶어 했다. 아내는 기온과 미세먼지를 고려해 고민하다가 축구장 동행을 허락했다. (뭐 사실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날씨도 따뜻하고 미세 먼지도 심하지 않았다.


아내는 내가 목장 모임 하는 동안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는 게 임무이자 목표였다. 안타깝게도 목적 달성은 실패했다. 시윤이가 아침에 너무 늦게까지 자서 낮잠이 매우 늦어졌다. 목장 모임이 거의 끝났을 때가 되어서야 아내에게 카톡이 하나 왔다.


[시윤이 이제 잠]


푹 자고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잠들었다. 목장 모임을 끝내고 집에 갔을 때도 당연히 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깨웠다. 한 30분 잔 건가. 그래도 일어나서 짜증을 내거나 울지는 않았다. 어리둥절하긴 했어도 순순히 옷을 갈아입고 축구장에 따라나섰다.


소윤이가 좋아하는 교회 언니(초등학생 2학년)가 있는데 지난주에 서로 축구장에서 만나자며 약속했었다. 아내는 아이들과 내가 축구장에 있는 동안 그 아이의 엄마 (아내와 같은 목장의 집사님, 호칭은 언니) 와 만나기로 했다.


다행히 오늘은 축구하는 동안 갑작스러운 호출이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 쉬는 시간에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다른 언니, 누나의 휴대폰을 함께 보고 있었다. 뭘 보나 봤더니 꽃게를 잡아서 직접 요리하는 걸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그나마 유해한 내용은 아니라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게 두지는 않았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여기 뛰어놀려고 나온 거니까 그만 보자"


초등학생 2학년이 되면 사회생활이 가능한 정도의 눈치가 생기는 걸까. 휴대폰 주인인 아이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휴대폰을 끄며 말했다.


"그래. 소윤아, 시윤아. 이제 놀자"


오늘은 축구 끝나고 결산 총회가 있어서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애들 데리고 거기도 참석했다. 메뉴는 순댓국이었는데 국물에 밥을 말아주고, 고기도 좀 잘라줬다. 시윤이는 고기부터 골라 먹었는데, 소윤이는 비계 부분이 싫다면서 밥만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말을 안 들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엄청 고분고분한 것도 아니었다. 막 드셌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엄청 신나고 기분이 좋아서 귀가 닫히고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달까.


밥 먹고 나서는 바로 옆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씩 했다. 당연히 거기도 데리고 갔다. 아내는 그때까지 그 언니 (소윤이, 시윤이와 함께 카페에 동행한 초2 여자아이의 엄마이자 아내와 같은 목장의 집사님)와 시간을 보냈다. 거의 끝날 무렵 아내가 왔다. 아내의 얼굴이 환했다. 분명히 어두운 밤이었는데.


"여보. 고생했어"

"고생은 뭐. 논 건데"


맞다. 논 건데 힘들 게 없었다. 그건 이론이고 현실은 힘들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역시 단독 육아는 가볍고 무거움을 떠나 일정 시간이 넘어가면 자동으로 동반되는 피로가 있다. 그렇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애만 본 게 아니니까. 축구를 한 거니까.


"아빠. 누구랑 잘 거에여?"

"엄마"


아마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을 한 듯하다.


축구 한 번 하기 되게 힘들다. 그래도 안 하는 게 더 힘드니까 기쁘게 감당할 거야. 여보. 우리 오래오래 축구, 아니 행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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