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 주부 코스프레

19.11.04(월)

by 어깨아빠

아내는 오전에 목장 식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일을 쉬고 첫날이었던 금요일은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에 하루 종일 있었다. 아내는 목장 모임에 가고 난 소윤이, 시윤이와 남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자잘한 국지전을 벌이는 둘을 말리고, 명백히 잘못한 쪽이 있으면 그거 훈육하고. 아침 먹다 말고 짜증 내며 떼쓰는 시윤이와 씨름하고. 말을 듣는 듯 안 듣는 듯 줄타기를 하는 둘과 밀고 당기고.


얼마나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여행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하는 시간은 큰 자산이 될 거다. 다른 건 모르겠고 아내를 이해하는 면에서.


점심시간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소윤이는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염증이었고, 항생제를 먹고 있으니 한 번 더 병원에 가는 게 좋아 보였다. 그게 주된 이유였고 그냥 빨리 나가고 싶기도 했다. 오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매우 많아서 어차피 나가야 할 거, 조금이라도 이른 외출이 하고 싶었다.


차는 아내가 가지고 가서 우리(나, 소윤, 시윤)는 버스를 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좋아했다.


"아빠. 버스 타고 가니까 너무 신나여"

"소윤아. 버스 타는 게 왜 좋아?"

"왜냐하면 카시트 안 타도되니까요"

"아, 그래서 좋아?"

"네. 편하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고. 또 내릴 때도 그냥 바로 일어나서 내리면 되니까"

"그렇구나"


"아빠아. 저두 버쯔 타니까 주아여"

"시윤이는 왜 좋아?"

"바께 보이니까"


병원이 한 시부터 점심시간이었다. 우린 한 시에 도착했고.


"소윤아. 병원 점심시간이라 어디 좀 가 있어야겠다"

"그러게. 아, 너네 점심을 안 먹었구나. 배 안 고파?"

"조금 고파여"

"그럼 우리 그냥 파리바게뜨 가자. 거기서 빵 먹으면서 기다리자"

"좋아여"


소보로 빵, 꽈배기, 뽀로로 마들렌, 딸기 우유를 하나씩 사서 나눠줬다. 앉아서 시간을 좀 충분히 때우려고 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가 빵을 어느 정도 먹더니 나가고 싶어 했다. 사실 내가 앉아 있기에도 좀 답답하고 더웠다. 그래도 밖에 나가면 어디 앉을 데도 없는 곳이라 더 앉아있고 싶었지만 더 앉아 있었다가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애들하고 씨름하느라 더 열이 날 판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인도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놀았다. 자기들끼리 숨바꼭질도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도 하고. 이렇게 써 놓으면 되게 소소하지만 행복한 시간 같은데 그건 아니었다. 자꾸 남의 가게 앞에 가서 얼쩡거리거나, 약속을 어기고 너무 멀리 가거나. 그러다 보니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하게 되고. 애들은 어땠는지 모르겠는데 잔소리 한 번 할 때마다 짜증, 피로 수치가 팍팍 증가했다.


아내는 목장 모임이 길어져서 병원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에 왔다. 난 그때 이미 내가 챙겨서 나온 육아 체력의 8할 이상을 쓴 느낌이었다. 아니면 마음의 여유 8할 이상을 잃었거나. 뭔가 지치고 짜증이 났다.


다행히 소윤이의 폐렴은 많이 완화되었다. 그래도 아직 조금은 남아 있어서 약은 한 번 더 먹고 다음에 마지막으로 확인하기로 했다. 시윤이는 나오는 길에 똥을 쌌는데 기저귀와 물티슈가 없었다. 난 아내가 챙겨 나갔을 줄 알았고, 아내는 당연히 내가 챙겨 나올 거라고 생각했고. 기분이 좋을 때야 웃으며 넘길 작은 일이지만 마음이 쪼그라들어 있을 때는 아주 좋은 불쏘시개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잘 막아냈다. 마침 차에 굴러다니던 기저귀도 하나 있었다.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최대한 휴지로 닦아내고 물로 마무리를 했다.


병원 다음에는 고용센터로 갔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깨알같이 수선을 떨었다.


그다음은 기독교 서점. 글씨를 읽을 줄 알게 된 소윤이에게 새번역 성경을 사주려고 갔다. 다른 건 둘째 치고 카시트에 태웠다가 내렸다가 하는 게 고역이었다. 소윤이는 앉는 것부터 벨트를 채우는 것까지 전부 스스로 했다. 시윤이는 내가 앉혀주고 벨트도 채워줘야 한다. 크게 어럽지는 않지만 굉장히 성가시고 은근히 허리에 부담을 준다.


"하아. 오늘만 벌써 몇 번을 태웠다가 내렸다가 하는 거야"


이쯤부터는 이런 말을 자주 했다.


"애들아. 가자"

"얘들아. 한 번 말하면 좀 들어"

"강소윤, 강시윤. 이리 오세요"


물론 시간이 갈수록 다정함은 사라졌고.


그다음이자 오늘의 마지막 할 일은 롬이 만나러 가는 거였다. 애들은 변함없이 신나서 날뛰었지만 난 점점 체력과 여유가 바닥나고 있었다. 여유는 지혜와 비례한다. 여유가 있으면 같은 상황이라도 조금 더 부드럽게 넘길 만한 지혜가 생기는데 그렇지 않으면 너무 직선적인 대응을 하게 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주 사소한 규칙(뛰지 않기, 큰 소리 내지 않기, 신발 신고 의자에 올라가지 않기 등)을 계속 어겼고 난 점점 더 틈 없이 반응했다.


가기 전까지만 해도 얼른 롬이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소윤이는 막상 진료실 안에 들어가자 딱히 롬이 영상에 집중하지 않았다. 졸려 보이기도 했고. 시윤이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병원에서 나와서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저녁 먹는 시간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나 먹는데 집중했으니까. 시윤이는 포크를 두고 손으로 돈까스를 집어먹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짜증이 섞이는 느낌이라 아예 입을 좀 닫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지난 토요일, 소윤이와의 오붓했던 데이트가 무색하게 인상도 많이 쓰고 짜증도 많이 냈다. 가장 큰 이유는 확실히 혼자일 때보다 둘이 있으면 말을 안 들을 기회가 많아진다. 누나가 하는 거 보고 따라 하고, 동생이 하는 거 보고 따라 하고, 둘이 연합해서 작당모의하고 이런 게 가능해진다. 내가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것도 원인일 테고. 다시 한번 한순간의 분리도 없이 애 둘을 데리고 사는 아내가 존경스럽다.


기나긴 하루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모든 의지와 동력을 상실하고 병든 닭처럼 힘 없이.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다 처리했다는 건 뿌듯했지만,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녀서인지 피곤했다. 특히 카시트의 카자만 들어도 진절머리가 났다.


"여보. 어디라도 나갔다 와"

"아니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는데 뭐"

"그래도. 여보 나갔다 오면 좀 나아질지도 몰라"

"그런가"


말은 그렇게 하고 계속 앉아서 조는 나를, 아내가 계속 채근해서 내보냈다. 참 신기하다. 문밖의 공기는 아까 애들이랑도 마셨는데 왜 그 밤에 나가서 들이마시는 공기는 다른 맛인 걸까. 아내 말 듣고 나갔다 온 덕분에 혈관 곳곳에 남아 있던 육아의 잔해들이 다 배출된 기분이었다.


하아. 전업주부가 보통 일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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