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05(화)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 가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함께 일찍 일어나 준비했다. 밥도 부지런히 먹이고, 옷도 후다닥 갈아입히고. 평소에 혼자 바쁜 아침을 보내느라 고생했을 아내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알아서 기었, 아니 열심히 움직였다. 안타깝게도 나갈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기껏 부지런 떤 게 빛이 바래긴 했지만.
아내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지만 조금 늦은 것, 또 그냥 여러가지가 복합되어 기분이 별로인 듯 보였다. 난 일부러 평소보다 더 밝게, 아무것도 모르는 듯 해맑게 말하고 행동했다. 찬양도 틀고. 적절한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아내의 마음이 좀 녹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내려주고 난 곧장 차를 타고 탄현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부터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그 장소가 탄현의 어느 아파트 상가였다. 그림 수업은 오후라서 그때까지 근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이놈의 몸뚱아리는 예나 지금이나 도서관만 들어가면 수면 호르몬을 쏟아내는지, 앉자마자 한 시간 정도 졸음과 사투를 벌였다. 내 뒤에 앉아 계셨던 어느 아주머니가 한글 파일에 그림을 넣으면 자꾸 글자가 이상한 위치로 도망간다며 도움을 요청한 때부터 잠을 좀 떨쳐냈다.
그 뒤로는 나름 집중력을 발휘해 할 일을 했다. 시간이 되어서 그림을 배우러 갔다. 이제는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어린 시절에 미술을 배운 이후로는 처음 그림을 배우는 거라 좀 떨리고 긴장되기는 했는데 염려했던 것보다 재밌고 잘 맞았다.
그림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다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교회로 이동했다. 차에 앉아 10여 분 기다리니 사람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오늘 하루를 이렇게 표현했다.
"하아. 장난 아니었어. 진짜 너무 힘들었어"
그야말로 살아있는 날 것의 표현. 에두르지도 포장하지도 않은. 내가 한가롭게 연필 놀림을 하고 있을 때 아내는 육아의 최전선에서 피땀 흘려가며 전투를 벌였다는 생각에 아주 조금 미안했다.
주된 원인 제공자는 시윤이었다. 계속 울고, 징징거리고, 싸고. 전업주부의 고충을 귀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과 직접 전업주부가 되어보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인 것처럼, 아마 처치홈스쿨의 일정이 얼마나 고됐는지 전해 듣는 것과 직접 하루 종일 해 보는 것 또한 엄청난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그저 아내의 등을 두드려 주며 수고했다고 얘기해주는 게 최선일뿐이다.
"아빠. 이제 우리 어디가여?"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아아. 싫어여"
"뭘 싫어"
"아빠 저는 집 말고 다른데 가고 싶어여"
"어디?"
"어, 그냥 어디서 바람을 좀 쐬고 싶어여"
"그래? 그럼 집에 들어가기 전에 서서 바람 좀 쐬면 되겠네"
"아니이. 그게 아니라 어디 앉아서 바람도 쐬고 그러자구여"
"그럼 거기 경비실 옆에 정자에 앉아서 잠깐 바람 쐬면 되겠네"
"아니이. 놀이기구도 있고 그런 곳이여. 놀이터 같은 곳"
"거기도 운동기구 있어"
"아니이. 놀이터 같은 곳이여. 막 그네도 있고 그런 곳"
소윤이가 나의 장난을 더 이상 받아칠 여유가 없어질 때쯤 (더 했다가는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징조가 보일 때쯤) 장난을 멈췄다. 아내는 일단 저녁을 먹자고 했다. 가는 길에 새로 생긴 [등촌칼국수]가 있다며 거길 가자고 했다. 아내는 가끔 이럴 때가 있다. 먹부림 동선이나 계획을 미리 구상해 놓고 착착 진행한다. 어떨 때는 메뉴 하나를 못 정해서 쩔쩔매기도 하지만 가고 싶었던 곳을 발견했을 때는 막힘이 없다.
애들하고 같이 먹기에 적당한 메뉴는 아니었다. 일단 매우니까. 소윤이와 시윤이가 반찬처럼 먹을 건 만두뿐이었다. 일단 밥과 만두를 줬다. 시윤이는 태도가 매우 불성실했지만 뭐라 할 수 없었다. 차려준 게 없으니까. 그나마 만두라도 잘 먹어서 다행이었다. 마지막 볶음밥은 소윤이, 시윤이 모두 입맛에 안 맞았는지 잘 안 먹었다.
"아빠. 이제 어디 가여?"
"어디 가긴. 집에 가야지"
"아빠. 저는 카페 같은데 가고 싶어여"
"카페? 카페 가서 뭐하게?"
"그냥. 간식 같은 것도 먹고"
지난 토요일, 처가 어른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소윤이가 명언을 남겼다. 그날도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소윤이가 장모님에게 물었다.
"할머니. 우리 밥 먹고 카페 갈 거에여?"
"카페? 가야지. 소윤이는 카페 가는 게 그렇게 좋아?"
"할머니. 카페 가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집에 빨리 가는 게 싫은 거에여"
특히 밤에는 집에 가면 남은 건 취침뿐이니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집 근처 스타벅스에 잠깐 들렀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엉덩이 고정용 간식으로는 한살림 팝콘을 준비했다. 아주 잠깐 앉아 있었다. 딱 아내와 내가 커피 마실 시간 정도만.
카페에서 나올 때쯤 아내는 엄청나게 고단하다며 피로를 드러냈다. 어제 롬이 보러 갔을 때 선생님이 그러셨다.
"지금 밑이 조금 짧아진 느낌이 있어요. 아직 전혀 걱정할 단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지금 일하시는 건 아니죠?"
"아, 뭐. 일하는 건 아니지만"
이럴 때 참 난감할 거다. 처치홈스쿨이 무엇인지 장황히 설명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하고 쉬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 못지않은 노동 강도의 일정을 수행하고 있으니.
"혹시 조산기가 생기거나 그러면 힘들어지니까 무거운 거 들지 마시고 오래 서 계시지 마시고 아이들 안아주는 것도 가급적이면 하지 마시구요. 아직 전혀 걱정은 안 하셔도 되는데 약간 밑으로 내려온 느낌이 있어서 말씀드리는 거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지양해야 할 행동을 피하고 삼갈 수 있는, 애 둘을 가진 엄마가 과연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아내가 밥 먹듯이 하고 있는 행동들인데. 아내에게 강한 어조로 알아서 조심하고 몸을 사리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생명이 아닌 지방 덩어리가 증가해서 불어난 배를 가지고 생활하는 것도 가끔 버거운데, 아내는 어떨까 싶다.
오늘은 아내도 정말 많이 피곤했는지 애들이랑 들어가서 다시 나올 생각하지 말고 그냥 푹 자라는 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