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0(주일)
부모님 댁을 방문했던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애들이 언제, 어떻게 일어났는지 전혀 몰랐다. 오늘도 가장 늦게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거실로 나갔다. 이제 어쩌면 우리 집보다 부모님 집에 장난감이 더 많은지도 모르겠다. 아침, 그 잠깐 사이에 부모님 집 거실을 초토화 시켜 놓고 나왔다.
"어머니. 집이 난장판이네요. 맨날 치우지도 못하고"
진심이지만 인사치레가 되어버린 아내의 인사와 함께 바쁘게 집을 떠났다.
시윤이가 기침을 많이 하고 뭔가 우울했다. 며칠 전 소윤이가 아팠을 때처럼.
"시윤아. 어디 아파?"
"아니여어"
"힘들어?"
"네"
"어디가?"
"모야여(몰라여). 그양 힘드여여어"
소윤이에 비하면 진술만으로 상태를 파악하기가 좀 힘들다. 겉모습만 봐서는 꼭 아픈 애 같았다. 새싹꿈나무 예배에 보내도 괜찮을지 걱정이 좀 됐지만, 그렇다고 못 보낼 정도는 또 아니었다.
"여보. 시윤이는 잘 갔어?"
"응. 잘 갔어"
주차를 하느라 아내가 먼저 애들을 들여보냈다. 그러고 보면 소윤이와 시윤이의 일상에서 유일무이하게 아내나 내가 들여다보지 못하는 때가 주일이다. 다른 날, 거의 모든 순간은 아내나 내가 함께하지만 주일은 유일한 예외다. 늘 궁금하다. 과연 두 녀석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바라기는 가르치고 전했던 것들을 자율적으로 실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느낌상 아직은 무리인 듯하다. 오늘 같은 날도 소윤이가 다른 날에 비해 더 동생을 좀 챙기고 그랬으면 좋겠는데, 어떨지는 모르겠다. 분명하게 알고 있는 건 시윤이는, 아내나 내가 없는 공간, 시간에서는 철저히 누나를 의지한다는 거다. 오늘도 소윤이가 잠깐 화장실 간다고 나갔더니 울음을 터뜨렸다고 했다. 그렇다고 매 순간 누나한테 고분고분한 건 또 아니고.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를 축구장에 데리고 가지 않기로 했다. 소윤이가 찬바람을 쐬면 안 된다는 진단을 받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날씨도 하루가 다르게 서늘해졌고. 예배를 마친 뒤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목장 모임이 없어서 여유가 있었다.
"여보. 그래도 이제 얘네랑 와도 있을 만하다"
"맞아. 간식도 안 줬는데"
"롬이 태어나면 끝이지만"
"그러게"
내년에는 내년의 해가 뜨겠지. 롬이야 와라. 아빠는 각오가 되어 있다.
물론 소윤이와 시윤이가 완전무결하게 아내와 나의 말을 듣는 건 당연히 아니다. 소위 '잔잔바리'로 피곤하게 하는 게 많긴 하다. 아직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보. 오늘은 낮잠 어떻게 할 거야?"
"소윤이는 안 재우려고"
"시윤이는?"
"쟤도 안 재우지 뭐"
"진짜? 괜찮겠어?"
"뭐 하면 하는 거지"
"조퇴(조기퇴근)를 위한 큰 그림?"
아내에게도 오랜만이었다. 주일 오후에 애들이랑 시간을 보내는 게. 내가 애들을 데리고 축구하러 다닌 게 제법 됐다. 단지 아이들의 부재를 넘어 나 혼자만의 시간, 자유의 시간을 보냈던 아내는 옛 기억과 근육을 재생시켜야 했다. 아내는 현재의 고난을 투자해 미래의 행복을 대가로 얻는 길을 택했다.
다행히 시윤이의 상태가 아픈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졸음이 가득해서 걸핏하면 떼를 쓰고, 울고, 짜증을 냈다. 시한폭탄이었다. 훈육의 유효 시간도 매우 짧고. 소윤이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아침에 7시쯤 일어났다고 했다. 어제는 11시 30분이 넘어서 잤고. 평소보다 네댓 시간을 덜 잤으니 안 피곤하면 그게 이상할 노릇이었다. 소윤이의 말과 행동에서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의 피로가.
막 축구하러 나가려던 차에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오셨다. 아내가 긴급 구조대를 호출한 거였다. 서너 시간이지만 아내는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자신이 없었다기보다 현실 파악이 빨랐다고 해야 하나. 홀로 감당했으면 나도 지치고 너희들도 지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걸 예견한 거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갔다 올게. 할머니, 할아버지 말씀 잘 듣고"
나도 몇 주간 애들이랑 같이 가다가 애들 없이 가려니 굉장히 허전했다. 집에서 나갈 때도 그랬고 운동장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축구는 편하게 했지만 왠지 모르게 허전하고.
"여보"
"어. 끝났어?"
"어. 이제 가려고 차 탔어. 장인어른이랑 장모님은 가셨어?"
"어. 좀 전에 가셨어"
"애들은?"
"이제 씻고 자려고"
"아, 알았어. 저녁은?"
"장가계 가서 먹었어"
"애들은 괜찮았고"
"아니. 힘들었지. 소윤이도 졸고. 시윤이도 졸고"
"아, 진짜? 둘 다 엄청 피곤했나 보네"
"그러니까"
"밥도 제대로 못 먹었겠네"
"아니야. 그래도 그 와중에 탕수육 먹겠다고 깨고 그랬어"
"대단하네. 아무튼 난 이제 갈게"
"여보 저녁은?"
"뭐 집에 가서 먹으면 되지"
"집에 뭐 없어. 올 때 치킨이라도 사 와"
"에이. 치킨은 뭐. 집에 가서 먹으면 된다니까"
"먹을 게 없다니까. 밥도 없어"
"그래? 일단 알았어"
아내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치킨 가게에 전화를 했다. 프라이드 한 마리를 주문했다.
치킨을 들고 집에 들어갔는데 거실에 아무도 없었다. 아내도 애들을 재우다 잠들었거나 아직 누군가를 재우고 있다는 얘기였다. 난 전자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일단 샤워부터 했다. 샤워하고 나왔는데도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조심스레 방 문을 열고 들어가 아내를 톡톡 쳤다. 아내가 푸드득 잠에서 깨더니 거실로 나왔다. 8시도 안 됐는데 그대로 두면 아내가 너무 억울할 듯했다. (누구를 향한 억울함인지는 나도 모르고, 아내도 모르지만 아무튼.)
"애들 금방 잤어?"
"그런 거 같아"
"여보도 금방 잠들었나 보네"
"맞아"
소윤이와 시윤이는 저녁 먹으러 가서 함께 졸았다고 했다. 소윤이는 졸면서도 장모님이 "너무 졸려 해서 카페는 못 가겠다"라고 말하는 걸 듣더니 벌떡 일어나서 괜찮다며 카페도 가야 한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결국 카페에 갔고 뭐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소윤이는 특히 시윤이한테 엄청 예민하고 까칠하게 굴었다. 졸린 두 녀석의 중간에서 이리저리 치인 아내는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계셨는데도, 아침에는 시댁 찬스도 사용했는데도, 깊은 피로가 쌓였다.
아내는 잠시 깨서 나의 치킨 먹는 걸 관람하다가 바나나킥 한 봉지를 먹고 다시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