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2(화)
출근할 때보다 더 부지런해졌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오늘 처치홈스쿨 반찬은 오징어볶음이었는데 장모님이 양념까지만 해서 주신 거라, 아침에 볶아야 했다. 아이들이 먹을 맵지 않은 거, 어른들이 먹을 매운 거. 이렇게 따로따로. 커다란 팬 두 개를 꺼내서 따로따로 볶기 시작했다.
애들 아침은 계란밥이었다. 밥이 좀 애매하게 남아 있었다. 정량으로 셋이 먹기에는 좀 부족했는데 소윤이는 아주 조금만 주고 시윤이도 평소보다 적게 줬다. 아내에게는 최대한 정량을 보장해줬다.
소윤이는 어제 토하기 전처럼 상태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었다. 본인의 진술에 의하면
"엄청 힘들지는 않은데 그래도 좀 힘들어여어"
이 정도였다. 병과 나음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처치홈스쿨에 못 갈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못 갈 정도였으면 굉장히 복잡해질 뻔했는데 다행이었다. 아내도 아침에 일어나니 목소리가 안 나왔다. 다른 데가 아픈 건 아니고 목이 칼칼하다고 했다. 시윤이는 콧물을 줄줄 흘린 게 벌써 며칠 됐고.
아내가 예고한 시간이 다 되기도 전에 애들 준비도 마무리하고 심지어는 쌓여있던 설거지도 끝냈다. 무척 뿌듯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난 도서관으로 향했다. 정말 계절의 문제인지 나도 왠지 모르게 몸이 찌푸둥하고 무거웠다. 으슬으슬 춥기도 했고. 여태껏 가 본 공립 도서관 중에 가장 좋은 곳이었는데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림 수업하면서 좀 멀쩡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는데 소윤이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아아"
생기가 가득하고 신이 잔뜩 찬 목소리였다.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어, 소윤아. 소윤이 괜찮아?"
"네. 괜찮아여"
"오늘 안 힘들었어?"
"안 힘들었던 건 아닌데 그래도 괜찮아여"
"지금은? 힘들지 않아?"
"네"
하루 종일 좋았던 건 아니고 좋았다 안 좋았다를 반복하긴 했다고 했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만큼 아무것도 못 할 정도는 아니었고.
교회에 도착해서 차에 태울 때까지만 해도 거의 다 나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일단 병원에는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병원으로 가고 있는데 차 안에서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 소윤이는 다시 울며 얘기했다.
"아빠. 너무 힘들어여어어. 엉엉엉엉"
나 빼고 모두 진찰을 받았다. 일단 소윤이는 목이 많이 부어 있다고 했다. 저번에 확인했던 중이염도 조금 있고. 목감기일 가능성이 높지만 독감이 유행이라 독감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열이 올랐다 내렸다를 반복하면 오히려 괜찮은데 주우우욱 올라서 그게 지속되면 독감 검사를 하자고 하셨다. 목이 칼칼하다던 아내의 목은 오히려 멀쩡했다. 그냥 감기 증세일 가능성이 큰데 약은 보류했다. 롬이 때문에. 증상이 별로 심하지 않기도 했고. 시윤이는 아예 멀쩡했고.
"아빠아. 이제 우디(우리) 어디 가여엉? 찌땅(식당)?"
시윤이는 자꾸 식당 타령이었다. 누나는 아파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시윤아. 누나가 아파서 오늘은 그냥 집에서 먹어야 할 거 같아"
시윤이를 설득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말했다.
"아빠. 밖에서 먹고 싶어여"
"소윤아. 괜찮겠어?"
"안 힘들어?"
"그래도 밖에서 먹고 싶어여"
"그래? 힘들 것 같은데"
일단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 일단 밖에서 먹기로 했다. 아내랑 뭘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소윤이가 다시 얘기했다.
"아빠아. 엉엉. 그냥 집에 갈래여. 엉엉"
그 사이에 좀 더 안 좋아졌나 보다. 다행히 시윤이는 상황을 좀 파악하고 있는지 기쁘게는 아니어도 수긍하긴 했다. 아내와 나는 햄버거를 사서 들어갔다.
집에 가자마자 쌀을 씻어서 밥을 했다. 아내가 낮에 먹고 싸 온 오징어볶음을 비벼서 줬다. 소윤이는 아주 조금만, 건더기는 없이 국물에만 비벼서 줬다. 어제처럼 시윤이는 축축 처진 누나와 대비되어 그런지 유난히 우왁스러웠다. 거기에 오늘은 먹는 것까지 겹쳤다. 시윤이는 밥을 먹고 나서 감자튀김, 빼빼로를 먹었다.
"아빠. 저도 먹고 싶어여"
"소윤아. 소윤이는 혹시 소화가 안 될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안 돼. 내일 줄 게"
"너무 먹고 싶은데"
눈물을 글썽거리고 울먹이며 얘기했다. 시윤이는 옆에서 매우 빠른 속도로 빼빼로를 쪼개 먹고 있었고. 소윤이는 다 나으면 먹고 싶은 걸 하나씩 얘기했고 아내는 받아 적었다. 김밥, 빼빼로, 샌드위치, 감자튀김 등등.
"아빠. 내일이면 다 나을까여?"
"글쎄. 그럴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얼추 먹일 걸 다 먹이고 애들을 씻기는 일만 남았을 때 시윤이가 아내에게 물었다.
"엄마아. 오느은 누구당 자여어?"
"글쎄"
아내의 대답에서 오늘은 좀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을 읽어냈다. 내가 곧바로 대답했다.
"오늘은 아빠랑 잘 거야"
"엄마양 자고 지픈데에"
"오늘 엄마는 하루 종일 힘드셨잖아. 엄마도 좀 쉬어야지. 오늘은 아빠랑"
씻는 건 엄마랑 하는 걸로 거래를 완료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씻고 나와서는 또 시작이었다. 이번에는 소윤이까지.
"엄마랑 자고 싶어여. 엉엉엉"
"엄마양 자고 지퍼여어어어. 엉엉엉"
"오늘은 엄마가 힘드시대. 매일 엄마랑 자니까 오늘은 아빠랑 자. 엄마는 좀 쉬라고 하고"
전혀 먹히지 않았다.
"너희 자꾸 별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 떼쓰면 이제 엄마는 너희 안 재워줄 거야. 누가 재워줄지는 엄마, 아빠가 정하는 거지"
역시 먹히지 않았다. 나도 엄청 피곤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아무것도 아닌 걸 가지고 씨름하는 것도 싫고. 결국 무력(큰 소리, 고성)으로 제압했다. 광장 민주주의 부작용을 우리 집에서 매일 체험하고 있다. 이럴 때는 나도 진심으로 서운하다. 뭐 나랑 안 잔다고 하는 게 서러운 것보다 그냥 엄마, 아빠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들에게. 참고로 다섯 살, 세 살이다.
둘 다 슬피 울며 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함께 들어가긴 했는데 매트리스에 누웠다.
"아빠. 왜 거기 누워여?"
"그냥. 아빠 여기서 잘 거야. 너희는 바닥에서 자"
"아빠. 옆에 누워여"
"싫어. 소윤아. 아빠는 안 피곤하고 안 힘들어서 너네 재워주는 거 아니야. 엄마, 아빠 다 힘들고 피곤해도 너희 재워주고 그러는 건데, 이렇게 맨날 떼쓰고 울고 그러면 엄마, 아빠가 어떻겠어"
소윤이가 갑자기 더 서럽게 울면서 얘기했다.
"아빠아아. 죄송, 흑 해여어어. 흑. 진심으로 흑. 죄송해여어. 다음부터는 안. 흑. 그럴게여어. 흑. 아빠. 흑. 미안해여어. 속상하게. 흑. 해서"
소윤이가 꼭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진심이 느껴졌다. 아무 소리 않고 가만히 누워 있는 시윤이도 과연 같은 마음이었을지 궁금했다.
"그래 소윤아. 알았어. 이제 얼른 자"
그렇게 말하고 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던 것 같다. 잠시 졸다 깨어보니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