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4(목)
"소윤아. 몸은 좀 어때?"
"괜찮아여"
"하나도 안 힘들어?"
"네"
겉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느껴졌다. 부모만 알 수 있는 조금 다른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배가 홀쭉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를 못했으니 당연했다. 배가 고프다길래 부지런히 아침밥을 준비해서 차렸다. 어제 차마 먹지 못한 미역국에 밥을 말아서 줬다. 멀쩡하던 소윤이는 두어 숟가락 먹더니 또 힘들다며 울먹거렸다. 본능적으로 약간 꾀병을 부린다는 걸 느꼈다. 꾀병이라기보다는 너무 오래 아프다 보니 계속 아픈 것처럼 착각하는 것 같기도 했고.
"소파에 누워서 좀 쉬고 있어"
소윤이는 오리빵을 찾았다.
"아빠. 오리빵은 언제 먹어여?"
"소윤아. 밥도 못 먹었는데 무슨 오리빵이야. 오리빵은 소윤이 다 괜찮아지면 먹어야지"
"먹고 싶은데"
곁눈질로 소윤이의 동태를 살폈는데 아무리 봐도 전과 같은 상태는 아니었다. 오히려 정상에 가까운 듯했는데 본인이 힘들다고 하니 거기다 대고 꾀병 부리지 말라고 윽박지를 수도 없고. 옷을 갈아입히면서 슬쩍 얘기했다.
"소윤아. 그런데 아빠도 오래 아프다 보면 계속 아픈 것처럼 착각하게 돼. 사실은 다 나았는데도. 그러니까 좀 아프고 힘든 것 같아도 다 나았다고 생각하고 씩씩하게 지내면 금방 괜찮아질지도 몰라"
나의 말이 소윤이의 세포 곳곳에 들어가 살아 움직이는 듯, 소윤이는 곧바로 바뀌었다. 소윤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왜 아침은 못 먹을까라고 혼자 읊조리는 소리를 듣더니 소윤이가 대답했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거에여"
그 뒤로는 정말 멀쩡했다. 식탁에 앉았던 딱 그 5분 정도만 정상이 아니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에 데려다주고 카센터에 갔다. 어제저녁에 차를 타려고 하는데 뒷바퀴에 바람이 빠져 있었다. 긴급 출동을 불러서 임시 타이어를 껴놓은 거라 타이어를 교체해야 했다. 어쩌다 보니 덕이동까지 가게 되었고 대기 시간도 엄청 길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먼저 끝났고 다른 엄마 선생님들하고 이케아에 가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수리가 끝나고 나도 이케아로 갔다.
아내와 다른 엄마 선생님들, 아이들이 한창 식사 중이었다. 나도 바로 뒤편에 자리를 잡고 돈까스를 먹었다. 안 먹으려고 그랬는데 아내가 얼른 먹으라고 해서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소윤이는 완전히 정상인이었다.
"소윤아. 오늘 괜찮았어?"
"네"
"하나도 안 힘들고?"
"하나도는 아닌데 괜찮았어여"
말과 행동에 약간의 장력이 회복되고 풍기는 분위기에서 뺀질거림이 느껴지는 걸 보면 한결 나아진 게 틀림없었다.
아내는 오후에 장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물론 아이들을 데리고. 난 얼마든 아내 홀로 보낼 의향이 있었지만 애들이 허락하지 않았을 거다. 엄마를 보내는 아쉬움이 아닌, 할머니를 만나고 싶은 열망 때문에. 장모님을 만나기로 한 곳에 아내를 데려다주고 난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세 시간 정도 후 다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여보. 소윤이는 또 좀 힘들대"
"진짜?"
아침의 '힘듦'하고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진실된 표정이었다. 힘이 하나도 없고, 활동력이 쭉쭉 떨어진. 감기인지 뭔지 모르지만 참 징글맞게 안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차에 탄 지 얼마 안 돼서 소윤이가 눈을 감았다.
"여보. 소윤이 자는데? 이대로 재워?"
"아니. 깨워야겠다"
아내는 소윤이를 깨웠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우리 같이 동영상 보면서 갈까?"
뽀로로도 아닌 유튜브도 아닌, 자기들 어렸을 때 찍은 동영상을 보면서도 깔깔거렸다. 덕분에 집에 갈 때까지 무사했다. 소윤이는 힘든 게 아니라 졸린 듯했다. 낮잠도 안 잤고, 먹은 것도 없고, 무엇보다 며칠 동안 아팠으니 기력이 쇠해서 피로가 심해졌나 보다.
장모님이 사 주신 소고기를 구워서 애들 저녁 반찬으로 줬다. 역시 먹는 게 달랐다. 완치 판정을 내려도 무방해 보였다. 소윤이, 시윤이 모두 잘 먹었다.
"아빠. 오리빵 먹어도 되여?"
"그래. 오리빵 드디어 먹을 수 있겠다"
소윤이가 그토록 기대하던 오리빵을 드디어 먹게 됐다. 어쩌다 보니 완치의 상징이 된 셈이다. 며칠간 숙성시켰던 기대가 무색하게 소윤이는 좀 남겼다. 내가 먹기에도 좀 질리는 맛이긴 했다.
저녁 먹고 자기 전까지 시윤이랑 노는 걸 봐도 정상의 범주로 돌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드디어 조금씩 말을 안 듣기도 했고. (아픈 동안에는 순한 양이었다.)
소윤아, 어쨌든 드디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