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았다

19.11.17(금)

by 어깨아빠

매일 피곤하지만 유독 피곤한 아침이었다. 아내도 나도 알람 소리를 듣고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1분의 밍기적이 10분의 압박이 되어 돌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최초 알람이 울린 지 30분이 지나고서야 몸을 일으켰다. 일단 발을 바닥에 댄 이후에는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기계처럼 정확하고 빠르게 계란 볶음밥을 만들었다. 오늘도 시간 단축을 위해 먹여줄까 하다가 그냥 각자 자리에 앉혔다. 아내와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난 커피를 마셨다. 밥 다 먹고 나서는 옷을 갈아입혔다.


"여보. 애들 뭐 입혀?"


아내가 옷을 꺼내주면 내가 입힌다. 시윤이는 아직 입혀줘야 하지만 소윤이는 혼자 입는 게 가능해서 바쁠 때는 스스로 갈아입으라고 한다. 시윤이가 갑자기 똥을 싼다던가 하는 일만 없으면 이런 식으로 자잘하게 시간을 줄일 수가 있다. 실제로도 심리적으로도 매우 큰 도움이 된다. 덕분에 오늘도 아침에 침대에서 꽤 게으름을 피웠는데 제시간에 준비를 마쳤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차도 거기에 함께 두고 광흥창역으로 갔다. 오후에 가야 할 곳이 있었는데 진작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근처에 도서관이 있었는데 12월까지 휴관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오후 일정을 마치고 다시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더니 아내와 아이들도 처치홈스쿨이 막 끝날 즘이었다.


사실 평소보다 빨리 끝났는데 아내는 시윤이를 훈육하고 있었다. 무려 40분 동안. 아침에 가서도 그랬다는데 아침에는 아내가 평정심을 잘 지켰는데 끝날 때는 아니었다. 평점심을 잃었다기보다는 그냥 지쳤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내는 뜨거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재 같았다. 분명히 손대면 아직 뜨거운데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오묘한.


시윤이는 서럽게 울며 훈육을 끝냈지만 차를 타러 내려가는 동안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 뭐 어찌 됐든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슬픈 감정에 오래 빠져 침울한 것보다는 나아 보인다. 오히려 마음이 부서진 쪽은 아내였다. 조수석에 앉아 조각난 가슴을 애써 모으고 붙이는 게 느껴졌다.


저녁은 밖에서 먹기로 했다. 오늘은 철야 예배가 없어서 교회에 가지 않아도 됐다. 아내는 저녁 먹고 카페도 가자고 했다. 나름대로 오랜만의 가족의 소소한 데이트를 계획했다. (가족의 시간이야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부족하지 않게 보내고 있지만 '금요일 밤' 이 주는 감성은 또 다르니까.)


식당으로 가는데 카시트에 앉은 소윤이가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아내도 나도 당황스러웠다. 머리 아프다는 말은 잘 안 하는 말이었다. 아내나 나나 다 나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아프다는 말을 들으니 이게 뭔가 싶기도 했고. 머리가 어떻게 아프냐고 물으니 그건 모르겠는데 그냥 아프다고 했다. 마침 나도 머리가 아팠다. 하루 종일. 콕콕 찌르는 느낌보다는 뇌압이 잔뜩 높아져서 머리 전체를 누가 꽉 누르는 느낌이랄까. 아내도 하루 종일 비슷했다고 했다. 소윤이도 비슷한 건가 싶었지만 그저 추정일 뿐이었다.


식당에 가서도 처음 몇 숟가락 뜨더니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면서 못 먹겠다고 했다. 난 어제저녁처럼 약간의 꾀병 내지는 착각을 의심했다. 더 먹기 싫다는 걸 억지로 몇 숟가락 더 뜨게는 했는데 그래도 많이 먹지는 못했다. 나중에는 엄청 피곤해 보였다. 눈도 꿈뻑꿈뻑 거리고. 낮에 낮잠을 자긴 했는데 짧게 잔 데다가 요즘 계속 아팠으니 피곤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내와 내가 금요일 밤의 감성을 기대한 것만큼 소윤이도 기대가 있었다. 카페에 가서 빼빼로를 먹기로 했었다.


"소윤아. 밥 먹고 집에 가서 일찍 자자? 지금 소윤이 상태로는 카페 못 가. 알았지?"

"아빠. 아니에여. 갈 수 있어여"

"무슨 카페를 가. 힘들어서 밥도 못 먹는다면서"

"아빠. 그럼 빼빼로는여?"

"빼빼로는 당연히 못 먹지"


소윤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빼빼로는 화요일부터 열망이 시작됐다가 오늘 코앞까지 다가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소윤이가 정말 상태가 안 좋든 그게 아니든 어차피 카페고 빼빼로고 다 안 될 일이었다. 난 요 며칠 소윤이가 밥 먹다가 힘들고 울렁거린다고 하면 바로 식사를 중단시켜서, 소윤이가 그걸 노리나(?) 싶었다. 소윤이는 새로운 증상을 호소했다.


"아빠. 귀에서 소리가 들려여"

"귀에서? 어떻게?"

"몰라여. 그런데 소리가 나여"

"그래?"


자꾸 확인이 어려운 증상이 등장했다. 겪어본 적도 없고.


식사를 마치고 아파트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소윤이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피곤해 뵈는 걸 넘어서서 어둠이 드리운 얼굴이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집에 가서 아내가 애들을 씻겼다. 소윤이를 씻기던 아내가 나를 불렀다.


"여보. 이리 좀 와 봐. 소윤이 몸에 빨간 두드러기 같은 게 났는데?"


가서 보니 가슴 주변으로 꼭 열꽃이 피는 것처럼 붉은 반점이 옅게 올라왔다. 관찰만 가능하고 진찰은 불가능한 무허가 아빠 의사지만, 뭔가 면역 체계가 무너지고 균형이 깨졌다는 걸 직감했다. 아픈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거기에 머리를 스치는 한 가지 생각은 '항생제'였다. 소윤이가 워낙 약을 안 먹었다. 이번에 먹은 게 거의 1년 만이었다. 지난번 폐렴 걸렸을 때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좀 고민해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전문성 없는 추측에 불과하지만 '항생제'가 자꾸 떠올랐다.


씻고 나온 소윤이를 품에 안고 기도를 했다. 소윤이한테도 진심으로 함께 하자고 얘기했다. 아내나 내가 기도해줄 때 아무리 길어도 가만히 안겨서 진지하게 듣는 건 잘한다. 시윤이까지 씻기고 나온 아내에게 항생제 얘기를 했더니 아내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일단 약은 안 먹이기로 했다.


"소윤아. 약이 소윤이한테 도움이 안 되는 거 같아. 우리가 같이 기도했으니까 뭔가 응답이 있을 거야. 아플 때는 먼저 기도하고, 병원에 가서 진료받고 그래야 되는 거고 소윤이는 잘 먹고, 잘 자고 그래야 하고"


자려고 누웠을 때 아직도 귀에서 소리가 나냐고 물어봤더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식당에서 꾀병을 의심했던 게 미안했다. 꾀병은 아닌 듯했다. 피곤하기도 엄청 피곤해 보였다.


"소윤아. 잘 자. 자면서 소윤이도 마음속으로 꼭 기도하고. 알았지?"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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