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으로 몸보신, 빼빼로로 마음보신

19.11.16(토)

by 어깨아빠

"소윤아. 어때?"

"괜찮아여"


최근 며칠 들은 "괜찮아여"가 굉장히 신빙성이 없었지만 일단 겉으로 보기에는 다시 정상이었다. 소윤이가 호소했던 여러 증상들을 물어봤는데 모두 괜찮다고 했다.


아침부터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지난번에 장모님이 삼계탕을 끓여 먹으라고 재료를 사주셨다. 오늘 아침에 삼계탕을 끓이기로 했다. 닭은 손질이 되어 있어서 사실 요리라고 할 게 별로 없었다. 닭 두 마리 넣고, 닭에 딸려 있는 한약 재료 넣고, 통마늘 넣고, 대추 넣고, 물 붓고 끓이기. 전복도 사주셔서 그것도 손질해서 넣었다. 밥은 찹쌀로. 그동안 제대로 못 먹은 소윤이가 이거 먹고 좀 싹 낫길 바라며 만들었다.


끓이는 시간이 있다 보니 11시가 넘어서야 식탁에 앉았다. 닭이 두 마리라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시윤이는 살코기를 뜯어 주기가 무섭게 먹어치웠다. 정말 빠른 속도로. 고기는 고기대로, 밥은 밥대로 잘 먹었다.


"아빠. 또 주데여어"


나도 좀 집중해서 먹으니까 시윤이 속도를 못 따라갈 지경이었다. 엄청난 기세였다. 소윤이도 잘 먹었다. 원체 먹는 속도가 느려서 시윤이만큼 튀지는 않아도 잘 먹고 있었다. 나를 향한 찬사도 잊지 않았다.


"아빠. 진짜 맛있어여. 아빠는 진짜 최고에여"

"할머니가 재료를 좋은 거 사주셔서 그래"

"그래도여. 아빠가 요리를 잘 한 것도 있져"

"그래. 맞아. 고마워"


반 마리 정도는 505호 사모님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다 먹었다. 마지막에는 국물을 한 사발씩 따라서 줬다.


"자. 둘 다 국물도 쭉 들이켜. 몸에 좋은 거야"


워낙 늦은 첫 끼라 밥 먹고 좀 놀다 보니 금방 낮잠 시간이었다. 오후에는 부모교육이 있어서 시윤이는 물론이고 소윤이도 재우려고 했다. 내가 데리고 방에 들어갔는데 시윤이는 금방 잠들었고, 소윤이는 도무지 잠들지 않았다. 아침에 좀 늦게 일어나서 그런지 졸리지 않은 것 같기도 했고. 어쨌든 눈을 감고 자기 위해 노력하라는 나의 말과는 다르게 소윤이는 살살 실눈을 뜨며 자기를 거부했다. 뭐 기분이 좋고 마음이 좀 넉넉하면야 이런 것도 웃음으로 받았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아침부터 쉴 틈 없이 움직여서 그런지 좀 일찍 지쳤다. 애들을 얼른 재워야 할 것 같다(당신이 얼른 들어가서 재워라)는 나의 말에, 난 지금 바쁘니 그렇게 급하면 당신이 재우든가처럼 느껴진 아내의 태도에 약간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물론 아내는 놀고 있지 않았다. 역시 쉴 틈 없이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소윤이의 낮잠은 울음과 함께 종료되었다.


어느덧 나갈 시간이 되어서 준비를 하고 나가기 직전이었다. 현관에 서 있던 두 녀석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시윤아. 신발 신어"


시윤이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이며 대답했다.


"아빠아. 저늠 진발(신발) 못 지너여어(신어여)"


이유는 모르겠는데 약간의 신경질이 포함되어 있었다. 글쎄, 이것도 내 마음이 넉넉했으면 좀 더 유연하게 넘어갔을지 모르겠다. 어쨌든 엄마, 아빠에게 소리를 치는 건 '반드시 훈육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었고, 자주 있는 일도 아니었다. 여기서도 순순히 훈육을 받았으면 됐을 텐데, 시윤이가 갑자기 똥고집을 부리기 시작했다. 마치 아내가 어제 겪었던 일의 재탕인 듯했다. 이미 늦었는데 그마저도 금방 끝나지 않을 듯했다. 아내와 소윤이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난 시윤이와 집에 남아서 길고 긴 훈육의 밀고 당기기(?)를 이어갔다. 배울 때, 좋을 때는 확신이 가득한데 한 번씩 이렇게 매뉴얼에 없는, 강력한 예외가 발생하면 확신이 흐려진다.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회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녀석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온전하고 건강하다고 믿고 나아가는 거다. 정말 오래 걸린 끝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윤이도 속이 상했겠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격렬한 대결을 마친 격투 선수들이 포옹을 나누며 '이건 룰에 의한 게임이지. 감정의 연속은 아니다'고 확인하는 것처럼 시윤이를 안고 말했다.


"시윤아. 아빠는 시윤이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알지? 시윤이가 순종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가르치려고 그러는 거야. 아빠는 시윤이가 아무리 미운 행동을 해도 사랑해"


적어도 시윤이를 훈육할 때는 어떻게든 감정의 개입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저 말이 떳떳했다. 부모 되는 게 참 어렵다. 아빠 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내년에 롬이가 태어나도 마찬가지일 거다. 두 명 겪었다고 세 번째가 쉽지 않으리라는 건 이제 잘 알게 됐다.


"시윤아. 덕분에 시윤이는 아빠랑 버스 타고 가야겠네"

"뻐쯔? 무즌 뻐쯔여?"

"그러게. 아빠가 한 번 봐야겠네"


시윤이는 금세 잊고 버스 데이트에 흥분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걸 불러보겠다는 듯 부지런히 입술을 움직였다. 원래 시간보다 1시간 늦게 부모교육 장소에 도착했다.


7시가 조금 넘어서 부모교육이 끝났고 저녁을 함께 먹지는 않았다. 교회 근처의 콩나물국밥집에 가서 아내는 콩나물국밥, 나는 돼지 국밥, 애들은 돈까스를 시켰다. 그동안 주로 밤이 되면 '환자로의 복귀'가 벌어진 탓에 소윤이를 예의주시했는데 다행히 오늘은 아닌 듯했다. 낮잠을 안 자서 졸린데도 제법 쌩쌩했다.


밥 먹고 나서는 소윤이가 그토록 고대하던 빼빼로도 드디어 사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하나 사서 나눠 먹지 말고 하나씩 따로 먹어"


무슨 엄청난 선심 쓰듯 얘기하는 나의 말에, 아이들은 흥분과 환호로 호응했다. 초록색도 빨간색도 먹고 싶다는 소윤이의 말에 그럼 두 개를 사서 반반씩 나눠 먹으라고 했더니 둘 다 '나눠 먹으라'는 것만 들었는지


"아, 싫어여. 한 개 다 먹을 거에여"

"아빠. 지더여어. 한 개 머그꺼에영"


이라고 대답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두 개를 산 다음에 빨간색 반, 초록색 반 이렇게 섞으면 되지 않냐고. 그 말이야"


소윤이는 이해하고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윤이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누나가 좋다고 하니까 같이 호응했다.


"소윤아. 빼빼로 먹기 무척 힘들다. 그치?"


빼빼로 먹으면서 아픈 거, 혼났던 거, 마음 상했던 거 다 날려버려라. 이 똥강아지 녀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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