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하지 않아도 피곤한 주일

19.11.17(주일)

by 어깨아빠

슬프게도 아침부터 비가 왔다. 나에게 비가 오는 게 슬픈 상황은 딱 두 가지다. 놀러 가기로 했는데 비가 올 때, 축구하는 날 비가 올 때.


예배를 마치고 식당에 갔는데 아주 얼큰하고 매운 국밥이었다. 당연히 애들은 못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소윤이가 국에 밥을 말더니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소윤아. 안 매워?"

"매운데 맛있어여. 씁하아. 너무 맛있다. 씁하아"


내가 먹기에도 꽤 매콤했는데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이제 소윤이는 웬만한 매운 맛은 다 먹을지도 모르겠다. 시윤이는 국에 들었던 건더기조차도 입에 대지 못해서 맨밥으로만 한 끼를 때웠다.


축구가 사라져서 갑자기 늘어난 시간에 뭘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마침 아내에게 소윤이 외숙모의 연락이 왔다.


[가영아. 오늘 육아도우미 필요해?]


소윤이와 시윤이의 외숙모는 원흥역의 스타벅스에 있다고 했다. 난 축구는 없었지만 목장 모임은 있어서 교회에 가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원흥역에 내려줬다. 목장 모임을 마치고 전화했더니 소윤이 외숙모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형님(아내 오빠)은 없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신이 나서 놀고 있었다. 집에 있을 때보다 많이 뛰고,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는 숙모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됐나 보다. 나중에는 장모님과 장인어른까지 오셨다.


시윤이는 낮잠을 자지 않았다. 신나지만 피곤한 상태였다.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사고'가 터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있었다. 잘 놀던 시윤이가 순식간에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사기 컵에 코를 갖다 박았다. 난 곁에 앉아 모두 지켜봤다. 차마 손쓸 겨를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다. 갖다 박는 모습만 보면 코피가 줄줄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충돌이었다. 다행히 큰 탈은 없었다. 결과가 좋아서 그렇지 큰일 날 뻔했다.


우리 집 근처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놀이방이 딸린 식당이어서 어른들이 어느 정도 밥을 먹을 때까지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거기에 풀어놨다. 마침 다른 손님들도 없어서 자유로웠다. 난 놀이방을 등지고 앉았는데 거의 뒤돌아보지 않았을 정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두어 번 돌아봤을 때 매우 건전하게(?) 잘 놀고 있었다. 어른들이 거의 밥을 다 먹었을 때 두 녀석을 불러 밥을 먹였다. 사실 거의 이런 경우는 없다. '식사는 늘 함께, 같이'가 우리 가족의 암묵적인 규칙이지만 가끔은 이런 예외도 있어야지.


밥 먹고 나서는 카페도 잠깐 갔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식사에서 마무리했으면 딱 깔끔했을 날이지만(다들 뭔가 피곤한 듯했다) 아이들의 성화가 크기도 했고, 당연한 수순처럼 누구도 반기를 들지 않기도 했고. 아주 잠깐 있다가 나왔다.


집에 돌아가 씻겨서 재우는 건 금방이었다. 오히려 나와 아내가 쏟아지는 피로를 이겨내고 제정신을 찾는 게 오래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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