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소한 일상의 하루

19.11.18(월)

by 어깨아빠

아내가 진작부터 대학 친구들과의 만남을 잡아놓은 날이었다. 평소에 만나면 다들 어린이집에 애를 맡겨 놓고 자유의 몸으로 나오는데 아내만 둘을 데리고 나갔었다. 아내는 늘 그걸 아쉬워했고, 미안해했다. 그렇다고 장모님께 둘이나 맡기는 일은 너무 염치가 없고. 어쩔 수 없이 아내는 죽으나 사나 소윤이와 시윤이와 함께였다. 그러다 내가 쉬는 상황이 발생했고 아내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찌감치 나에게 얘기했다.


"여보. 나 그날은 여보한테 애들 맡기고 갈게. 언제 이런 기회가 다시 올지 모르니까. 괜찮지?"


당연히 그러라고 했다. 만나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어디 근사한 곳을 가는 것도 아니다. 그저 모두 홀몸으로 나오는 모임에 본인도 같은 모양으로 나갈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내의 기대가 컸을 거다.


안타깝게도 아내의 기대를 저버려야 하는 상황이 생기고 말았다. 나에게 약속이 생긴 거다. 이게 뭐 나에게 취소하고 말고 할 권한이 있는 약속이 아니었다. 불가항력의 일정이었다. 아내에게 얘기했고, 아내는 잠시 실의에 빠졌다.


"장모님한테 맡겨 봐. 몇 시간이니까"


아내는 깊이,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그래야겠다. 죄송하지만 엄마한테 좀 부탁해야겠다"


이것도 이미 꽤 오래전에 확정된 일이었다.


모두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다. 다 함께 차를 타고난 원흥역에서 내렸다. 아내는 파주(처가댁)에 들렀다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맡기고 몸과 마음의 자유를 얻었다. 꽤 오랜만에. 그것도 낮에.


난 볼 일을 본 뒤 엄마를 만나러 갔다. 오랜만에 서울에 혼자 나간 데다가 (이러니까 뭔가 굉장히 지방에 사는 듯하네) 아내도, 애들도 각자의 장소에서 독립된 하루를 보내고 있어서 가능한 결정이었다. 신림동에서 엄마를 만나 돼지소금구이를 먹었다. 동생도 합류했다. 카페에 쓰는 돈을 택시비만큼이나 아까워하는 엄마이기 때문에 식사만 하고 헤어졌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만남을 끝내고 파주에서 저녁 먹고 카페에 갔다고 했다. 따로따로 (나 따로, 아내+애들 따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내 교통 편이 영 마땅치 않았다. 합정역에서 출판 단지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거기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여보. 소윤이는 너무 졸린데 아빠 보고 싶다고 졸린 거 꾹 참았어요"


소윤이의 느릿한 몸짓과 말투에서 아빠를 향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시윤이는 쌩쌩했다. 시윤이는 (낮잠을) 잤고, 소윤이는 안 잔 결과였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해서도 아내는 시윤이를 재우느라 꽤 시간을 많이 썼다.


아내는 나의 하루가, 나는 아내의 하루가, 서로 궁금했다. 그동안 경험하기 어려웠던 신선한 일상을 나눈 뒤, 내일부터 시작될 가족 여행의 목적지를 결정하느라 한참 시간을 보낸 뒤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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