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9(화)
어제 잠들기 직전에 목적지와 숙소를 정했다. 목적지는 양양. 숙소는 양양의 어느 펜션. 늦은 시간까지 장소와 숙소를 정하느라 짐도 채 못 싸고 잠들었다. 나는 아침에 일이 있어서 잠시 나갔다 와야 했고, 아내는 그 사이 짐을 마저 챙겼다.
"아빠. 우리 어디 가는 거에여?"
"우리? 양양이라는 곳에"
"휴게소도 가여?"
"어. 휴게소도 가면 되지"
급할 게 없었다. 누구랑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시간에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느긋하게 준비를 했다. 동네 식당에서 늦은 점심까지 먹고 출발했다.
양양으로 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너무 멀지 않은, 두 시간 정도 거리의 어딘가의 너무 비싸지 않은 숙소]를 찾다 보니 결정한 곳이었다. 날이 추워서 바깥에서 뭘 하기도 어렵고, 여행 가서 뭘 하며 시간을 보낼지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났다. 그냥 떠난다는 자체가 여행이 되길 바라면서.
"소윤아. 그래도 신나지?"
"네"
"뭐가?"
"그냥 숙소에서 자는 거여"
"우아. 진난다(신난다)앙"
소윤이에게 큰 즐거움인 휴게소도 들렀다. 큰 홈런볼과 빼빼로를 사서 나눠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 안에서 긴 낮잠을 잤다. 평소랑 비교하면 매우 늦은 시간이었다. 여행 첫날,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해가 지고 깜깜해졌을 때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깨끗하고, 젊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낮잠도 잘 잤고 여행의 흥도 가득 차서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방에 약간 단이 있어서 서너 개의 계단이 있었는데 소윤이와 시윤이한테는 오히려 좋은 놀이터였다.
워낙 여름의 도시인 곳이라 동네 자체가 한산하고 어두컴컴했다. 근처에 밥 먹을 만한 곳이 있냐는 물음에 펜션 사장님이 명함 하나를 건네주셨다. 오는 길에 아내가 열심히 검색한 곳 중에 한 집이었다. 더럽다는 평이 많은 곳이었다. 명함은 조용히 치워두고 다시 급하게 검색을 했다. 설렁탕과 갈비탕을 파는 곳이 한 군데 있었다. 급히 결정한 것치고는 제법 괜찮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잘 먹었다. 주인아주머니가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자그마한 사탕을 하나씩 건네주셨다. 무지 차가웠던 걸로 보아 냉동실에 보관된 듯했는데, 엄청 끈적거렸다.
"소윤아, 시윤아. 이건 일단 엄마한테 드리자. 대신 다른 사탕 하나씩 사 줄게"
"왜여?"
"아. 이게 좀 오래된 것 같아서"
"냉동실에서 꺼낸 거 같아여"
"맞아. 아빠 생각에도 그런 거 같아"
"왜 오래된 걸 주셨지?"
"그냥 너희들 귀여우니까 주신 거지. 아까처럼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으면 돼. 그다음에 엄마, 아빠한테 주고"
숙소 앞 편의점에 가서 애들 사탕과 우리(아내와 나)의 야식(과자), 내일 아침을 샀다. 숙소로 돌아와서 잘 준비를 했다. 이불을 깔고, 잠옷으로 갈아입히고.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더 놀았다. 놀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냥 둘이 뛰어다니고 뒹굴고 하면서 깔깔거렸다.
원룸 구조라 방이 여러 개는 아니었다. 애들이 자는 곳에서 우리도 자야 했고, TV가 있는 곳에서 애들이 자야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잠귀가 밝지 않고 예민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놀았는데도 재우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재웠다기 보다 잠들기를 기다렸다.
아내가 정신을 차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기도 했고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영화를 보는 건 무리였다. 아내는 볼 수 있다며 확신했지만 난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필라멘트가 끊어진 전구의 불이 갑자기 툭 꺼지는 것처럼 아내도 어느 순간 그렇게 되리라는 걸.
집에 TV는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며 밤을 보냈다.
* 숙소
소소한 이야기
하조대 해변 바로 옆. 엄청 깨끗함. 초특급 깨끗함. 도대체 청소를 얼마나 열심히 하시나 싶을 정도로 깨끗함. 건물 외관은 삭막한 빌라형 모텔 같은 모습인데 내부는 뭔가 일본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김 (일본이라고는 오키나와에 며칠 가본 게 전부지만) 숙소 내부에서 과도한 요리(?)는 불가함. 연기, 냄새 많이 나는 구이, 찜 등. 한 쪽 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서 전망이 좋음. 우리는 1층이라 비록 [CU 뷰]였지만 3층에 배정받으면 [하조대 해변 뷰]가 된다고 한다. 대신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서로의 기회비용을 상쇄한다고 보면 됨. 비수기에서 가서 그런지 가격이 무지 착했음. 연박 할인도 받고.
장점 : 청결도. 내가 가봤던 그 어떤 숙소보다 깨끗함. 특히 화장실은 경이로웠음.
단점 : 숙소 안에서 뭔가 해먹고 그런 사람에게는 불편할 수 있음.
* 식당
우가원
무난한 맛. 우리처럼 비수기에 서퍼들의 천국인 양양을 방문하면, 특히 밤에는 문 연 곳이 몇 군데 없다.(고 추측해본다) 애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이 큰돈 들이지 않고 간단히 한 끼 때우기에 딱 좋은 식당. 아이들과 함께 먹을 맵지 않은 밥류를 파는 곳이 별로 없었다. 갈비탕의 갈비가 인색하지 않았고 특설렁탕의 고기나 도가니도 야박하지 않았음. 후식으로 주신 식혜도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람.
장점 : 무난한 가격, 무난한 맛, 소인에서 대인을 아우를 수 있는 보편 메뉴.
단점 : 아이들에게 주신 사탕이 너무 끈적거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