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가족 여행, Day 3

19.11.21(목)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의 아침은 계란 프라이와 소시지, 김이었다. 어제 고기 구워 먹을 때 바베큐장에 식용유가 있는 걸 보고 아침에 잠시 가지고 왔다. 나와 아내는 시리얼. 어제 마트에 갔을 때 아내는 과감하게 시리얼 한 봉지를 집었다. 여기서 먹고 남으면 집에 가서도 먹으면 된다는 긍정 회로가 작동했을 거다.


시리얼 한 그릇은 뭔가 아쉬워서 컵라면까지 끓일까 말까 고민했지만 잘 참아냈다. 하루 종일 많이 먹을 텐데 아침에라도 자제해야 한다는 양심 회로가 작동했다. 시윤이는 엄마, 아빠가 밥도 안 먹고 시리얼(시윤이에게는 간식)을 먹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됐나 보다.


"아빠. 아빠늠 왜 간직 먹어여어?"

"이거 간식이 아니고 밥이야"

"아니자나여어. 이거 이여(시리얼)자나여어"

"엄마, 아빠는 밥 대신 이거 먹는 거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밥을 다 먹고 시리얼도 한 그릇씩 먹었다. 물론 진짜 한 그릇은 아니고 한 1/3 그릇 정도.(본인들은 한 그릇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러고 나서 딸기도 잔뜩 먹었다. 어제 마트에 갔을 때 귤과 딸기도 샀다. 다들 딸기를 어찌나 잘 먹는지. 생각해 보면 난 딸기가 먹고 싶었던 적이 일생에 없었다. 그냥 앞에 보이고, 있으면 잘 먹긴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 특히 소윤이는 다르다. 딸기가 '간절히' 먹고 싶을 때가 많다. 소윤이는 아플 때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빠지지 않는 게 딸기다. 아내는 거의 파스타 급으로 언제나 딸기를 향한 갈망이 존재하고. 시윤이는 아직까지는 눈앞에 없는 딸기가 먹고 싶다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일단 앞에 놓이면 그 누구보다 열정을 가지고 움직인다. 감히 내 손을 딸기 위에 얹기가 겁난다.


오늘의 목적지는 강릉이었다. 어제처럼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양양을 기준으로 거리, 시간상 속초와 대칭을 이루는 곳이 강릉이었다. 첫 일정은 역시 밥이었다. 작년 이맘때쯤 혼자 강릉 여행을 왔을 때 갔었던 식당을 가기로 했다. 그때 기억이 너무 좋았다. 고맙게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가는 길에, 아주 적절한 (이른) 시간에 잠들어 줬다. 내비게이션에 찍히는 도착 예상시간은 1시였고, 2시부터 중간 휴식 시간이라 잠든 애들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둘 다 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작년에 홀로 방문했을 때의 기억과 너무 달랐다. 일단 너무 더러웠다. 물병과 수저 통을 비롯해 손에 닿는 모든 식기에 찌든 때가 가득했다. '그래, 이 정도는 맛으로 보상받자'라고 애써 자기 최면을 걸었는데, 그마저도 배신당했다. 맛도 작년 그 맛이 아니었다. 물론 혼자 와서 온갖 정취와 분위기를 만끽하며 먹는 것과 산만한 두 녀석을 챙기며 먹는 건 다르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좀 아쉬웠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찌든 때처럼 음식에서도 성의와 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히 작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작년에는 자녀로 추정되는 비교적 젊은 분이 함께 계셨는데 이번에는 부모로 추정되는 나이 지긋하신 분만 계셨다. 검색을 통해 알아낸 정보 (원래 굉장히 오래된 노포였는데 자녀의 추천으로 리모델링을 함)를 조합해 보면, 자녀의 부재로 인한 질의 하락이 생긴 게 아닐까 싶다. [강릉 맛집]을 검색한 게 아니라 그냥 길을 걷다가 끌려서 들어간 맛집이라고 아내에게 그렇게 자랑을 했는데 아마 강릉에 올 일이 또 생기더라도 거기는 다시 안 갈 거다.


금강산은 식후경. 식후경보다 일단 커피. 밥을 먹고 나와서 카페를 찾았다. 점심을 먹기 전에 검색을 통해 알아낸 평이 좋은 양양의 카페를 찾았는데, 막상 가보니 없었다. 역시 양양은 여름의 도시라는 걸 다시 한번 실습했다. 카페도 작년에 나 혼자 왔을 때 가 봤던 [봉봉방앗간]으로 정했다. 기억이 희미했다. 엄청 맛있었다는 기억은 없었지만 반대로 나쁜 기억도 전혀 없었다. 분위기와 구조는 생생히 기억나는데 제일 중요한 맛이 기억나지 않았다.


"여보. 거긴 어땠어?"

"글쎄. 괜찮았던 거 같은데"


정도의 대답만 가능한 기억이었다. 일기를 찾아봐도 상세한 기록이 없었다. 점심 식사의 실패 덕분에 한껏 두려움(?)을 안고 방문했다. 주문하는 순간, 사라졌던 기억이 복원됐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하고요"

"아, 저희는 핸드드립만 하고 있어서요. 원두를 선택하셔야 해요"


맞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에스프레소 기계가 없다. 작년에 왔을 때도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혹은 직원분)을 보면서 '가영이랑 같이 오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던 게 그제서야 떠올랐다.


'여보. 여긴 성공이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맛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는데 오히려 공간이 애들이랑 함께하기에 적합하지는 않았다. 일단 꽤 높은 2층에 올라가야 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처럼 완전히 독립된 2층이 아니라 뻥뻥 뚫려서 소리치면 서로 소통이 가능한 구조였다. 다시 말하면 낙상의 위험이 매우 큰 구조였다. 다행히 구석 자리가 비어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꽤 얌전히 있어줬고. (사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굉장히 말도 잘 듣고, 얌전한 편이긴 하다. 딸아, 아들아. 새삼 고맙네?)


커피를 마신 뒤에는 또 시장에 갔다. 이번에는 강릉중앙시장. 어제 속초중앙시장 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대신 사람은 훨씬 많았다. 속초보다는 강릉이 더 큰 도시라는 걸 여기저기서 느꼈다. 차로 이동할 때 '막힌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시장도 훨씬 북적였고. 아이스크림 호떡과 꽈배기, 도넛 같은 걸 먹었다. 아이스크림 호떡은 기대 이상이었다. 말 그대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프트아이스크림 위에 호떡을 잘게 잘라서 함께 주는 건데, 그 조화가 환상적이었다. 단돈 2,0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굉장히 원색적인 만족감이었다. (2만 원 가까이 지불한 점심 식사보다 몇 배는 만족스러웠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아기 참새가 되어서 연신 입을 벌려댔다. 혹여라도 순서를 착각해서 연속으로 주기라도 하면 대번에 민원이 들어왔다.


"아빠! 저에여. 저"

"아빠! 나에여엉"


어제저녁에 고기를 구워 먹을 때만 하더라도 너무 만족스러워서 아내와 이렇게 얘기했다.


"내일도 또 구워 먹을까?"

"그러자"


막상 닥치니 귀찮았다.


"여보. 그냥 저녁 사서 가자"

"그래. 간편하게"


아내와 나의 계획은 닭강정과 회였다. [만석 닭강정]이라는 전국구 스타 가게가 있었지만, 강릉중앙시장에는 없었다. (어제 속초중앙시장에는 있었다.) 대신 다른 가게가 두 군데 있었다. 치열하게 호객 행위를 하는 두 곳 중에 줄이 길게 늘어선 한곳을 택했다. 아이들을 위해서 프라이드 반, 양념 반을 골랐다. 기다려야 했다. 회는 역시 작년에 혼자 왔을 때 가 봤던 곳에서 포장하려고 했다. 가성비가 매우 좋은 곳이었다. 아내에게 입이 닳고 귀에 피가 나도록 무용담(?)을 펼쳤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그냥 받지 않는 게 아니라 없어진 듯했다. 다시 급히 검색을 해서 강릉중앙시장 지하 1층 수산물 센터에 [도마 횟집]이라는 곳을 찾아냈다. 포장 판매만 하는 곳인데 평이 매우 좋았다. 아내와 아이들이 닭강정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가서 사 오기로 했다. 일단 사장님이 뭔가 사연(혹은 포스)이 있는 듯했다. 능숙하게 칼질을 하는 오른팔에는 얼핏 봐도 단단해 보이는 근육과 핏줄이 수시로 올라왔고, 목덜미에는 옷에 가려졌지만 완전히는 아니어서 순간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문신(타투의 느낌은 아니었다)이 보였다. 다소 거칠어 보이는 겉모습과 대조되는 친절함으로 응대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근처 홈플러스에 들러서 (강릉에는 무려 홈플러스도 있다. 강릉=대도시) 내일 아침을 비롯한 간식을 보충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여행 특수를 위한 '인디언밥'도 구매했다.


숙소에 돌아와 강원도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을 시작했다. 닭강정은 워낙 기대가 없어서 그랬는지 (유명세에 비해 별로였다는 후기를 많이 봐서)ㄹ 꽤 괜찮았다. 튀김은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명언이 딱 맞는, 튀겼으니 보통은 가는 느낌이랄까. 회가 대박이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도마횟집]이었다. 양과 신선도가 아주 훌륭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예 안 먹었고, 생명을 품고 있는 아내도 맛만 보기 위해 두어 점 먹은 게 전부였다. 그러니 '양'은 나의 특수한 상황이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신선도는 보장한다.) 기본 중에 기본인 광어회였는데 나도 아내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부족하지 않게 먹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어도 쌀밥을 먹여야 한다'라는 육아인들의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와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위해 꼬마 김밥도 샀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꼬마 김밥과 닭강정으로 배를 채운 뒤, 인디언밥으로 입가심을 했다.


"소윤아. 우리 이제 마지막 밤이네. 언제 시간이 이렇게 갔냐"

"아빠. 이제 내일 집에 가는 거에여?"

"응. 시간이 엄청 빨리 갔지?"

"네. 여기서 더 있고 싶어여"


마지막 밤이니만큼 아이들에게도 충분한 여유를 제공했다. 육아에 시달린 날, 밤이 되면 보통은 매우 촉박해진다. "빨리빨리", "얼른얼른"이 입에서 떠나지 않는다.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일상에서의 탈출이기도 하니까. 매우 느긋하게 취침을 위한 준비 및 단계를 밟아나갔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여행=즐거움'이라는 걸 알아야 하니까.


둘 다 생각보다 금방 잠들었다. 문제는 아내도 애들 못지않았다는 거다. 잠들지는 않았지만 멀쩡(?)하다고도 하기 힘들 정도로 하품을 했고, 정신을 못 차렸다. 여행은 체력전이다. 나도 비슷했는데 난 홀몸이라 조금 더 의지를 발동했지만 아내는 그게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아내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했다.


"아, 마지막인데. 자기 싫은데"


양양 가족 여행의 마지막 날 밤, 나의 동반자는 리모트컨트롤러였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