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의 초대

by 어깨아빠

아침부터 나갈 준비를 하고 아내가 다녔던 학교에 총출동했다. 아내가 활동했던 동아리의 홈커밍 데이가 있었는데, 결혼하고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아내가 이번에는 가고 싶어 했다. 내가 가라 말아라 할 문제는 아니지만 육아하는 부부에게는 늘 협조와 조율이 필요하다. 겹치는 일정이 있지 않는 이상은 서로 그런 거 막지도 않는다. 난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남겨두고 간다고 생각했다. 아내를 데려다주고 애들이랑 뭘 할지를 고민했는데 아내는 자기가 데려가겠다고 했다. 아마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소윤이와 시윤이를 보고 싶어서 그랬을 거다.


집에서 아내의 학교까지 가는 데 제법 오래 걸렸다. 거리가 멀지는 않았지만 서울 시내를 관통해야 해서 그랬다. 학교 앞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내려주고 인사를 나눴다.


"여보. 잘 갔다 와. 소윤이, 시윤이도 엄마 말씀 잘 듣고. 예배 잘 드리고"


아내는 가끔 농담처럼 얘기한다. 단절될 경력조차 없어서 아쉽다고. 난 아내가 어떤 형태로든 잠시 과거로 돌아가는 걸 보면 좋다. 아내가 정확히 어떤 마음으로 거길 가는지는 몰랐지만, 한때는 자기 삶의 많은 시간과 마음을 썼던 과거와 만나는 시간이니 부디 만족스러운 시간이길 바랐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방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랐고.


난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내의 모임은 생각보다 늦게까지 이어졌다. 점심시간을 한참 넘기고 나서야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카페에 도착한 아내가 나더러 잠깐 나오라고 했다.


"여보. 잠깐 나와"

"왜?"

"아, 여기 동생들 와서. 잠깐 인사하라고"

"뭘 인사를 해"

"아, 그래도. 여기 기다리고 있잖아"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운동화, 청바지, 면 티셔츠, 후드 집업을 착장했다. 아침에 옷을 입고 아내에게 여러 번 물었다.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늙은이가 너무 젊은이처럼 입은 거 같지 않아?"

"뭐래. 안 그래"

"캐주얼 데이날 부장님 같지 않아?"

"아니라니까"

"안 늙어 보여?"

"어. 젊지는 않지만 늙어 보이지도 않아"


젊어 보이는 건 바라지도 않았다. 심하게 더 늙어 보이지만 않아도 그게 어디랴.


카페 앞에 나가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내의 동생들이 가고 곧바로 짐을 챙겨 카페에서 나왔다.


"여보가 제일 선배였어?"

"아니. 90 선배님도 오셨어"

"진짜? 대박이구나"

"그래도 내가 한 서너 번째 정도?"


난 아직도 아내가 33살인 게 믿기지 않는다. 내가 35살인 것보다 더.


저녁에는 (내) 동생네 집들이에 가야 했다.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모두 힘들었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느라 시간을 보내서 좀 다행이었다. 잠에서 깬 소윤이는 카시트에 너무 오래 타고 있으니 힘들다며 울먹였다.


"맞아. 소윤아. 그건 진짜 힘든 일이지. 조금만 더 참아. 거의 다 왔어"


잠기운을 떨쳐내고 조금 기운을 찾은 소윤이가 다시 얘기했다.


"아빠. 그런데 우리도 힘들지만 아빠는 운전까지 해야 되니까 더 힘들져?"

"어, 뭐 그럴 수도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운전하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어. 아빠도 차에서 가만히 앉아 있으면 너무 힘들더라"

"그래도여. 아빠가 더 힘들져"

"아니야. 다 힘들지"


난 이런 '예쁜' 대화가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가능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집들이니만큼 음식은 풍성했다. 시윤이는 전복죽은 먹지 않았지만 전복 구이는 엄청 먹었고, 소윤이는 전복죽과 전복은 먹지 않고 돼지 수육은 잘 먹었다. 요즘 맛 들인 쌈싸먹기로.


둘 다 엄청 배부르게 먹은 것 같은데 밥 먹고 나서 간식도 아주 많이 먹었다. 아까 아내 동아리 모임에 갔을 때 다과로 제공된 걸 엄청 싸 왔다. 아내 말로는 조금 민망할 정도로 살뜰히 가방에 챙겼다고 했다. 둘 다.


아래층에 아직 사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껏 뛰고 쿵쾅거려도 된다는 말에 소윤이와 시윤이는 작정한 듯 소리 지르며 뛰어다녔다. 소윤이는 고모(내 동생)가 머리도 잘라줬다. 기장만 조금 줄였다. 아내는 엄청 줄었다고 했는데 난 사실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몰랐으면 눈치도 못 챘을 거다. 여자의 머리 길이 변화는 애고 어른이고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실컷 놀고 밤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하아. 애들 간단하게라도 씻겨서 올걸"

"그러게. 그 생각을 못 했네"


아내와 나는 둘 다 엄청 피곤했다. 아침부터 움직인 데다가 차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다. 집에서 보낸 날은 집에서 보낸 날의 피로가, 밖에서 보낸 날은 밖에서 보낸 피로가 각각 존재한다. 맞다. 그게 어디든 늘 힘들고 피곤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피곤하지 않은 날은 딱 한 가지 경우다. 누군가 나의 역할을 대신할 때. 그게 아내(남편)이든 부모님이든 형제(자매)든. 그렇지 않으면 늘 비슷하다.


사실 이런 날은 씻기지 않고 그냥 재우고 싶다. 잠들면 안 씻고 재우는 게 당연하니까. 두 가지 제약이 있다. 양심의 가책, 그리고 소윤이와 시윤이의 정당한 반박.


"아빠. 그래도 씻고 자야지여. 씻는 걸 안 하면 어떻게 해여"

"아빠. 찌져야지여어.(씻어야지요) 그르믄 안 대여어어"


니네 엄마, 아빠도 안 씻고 자는 날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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