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24(주일)
요즘 아이들 기상 시간이 미세하게 뒤로 밀렸다. 한참 동안 알람이 필요 없을 정도로 일찍 일어나더니 요새는 종종 늦게 일어나곤 한다. 오늘도 알람 안 맞추고 애들 깰 때까지 잤더니 엄청 늦게 일어났다. 늦게 일어났지만 집에서 나간 시간은 다른 날과 비슷했다. 똑같이 밥도 먹이고, 옷도 갈아입히고 했는데.
"여보. 앞으로는 그냥 늦게 일어나도 될까 봐"
"왜?"
"어차피 나가는 시간이 똑같네. 일찍 일어나서 준비해도 이 시간. 늦게 일어나도 이 시간"
아침부터 날이 잔뜩 흐렸다. 오후에(내가 딱 축구할 시간에)는 비도 예보되었다. 저녁에는 처가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로 해서 원래는 축구하러 안 가려고 했다. 몸이 근질거려서 견딜 수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하다가 비에 여행에 연속으로 서너 번을 쉬었더니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어제 아내에게 얘기해야겠다.
"여보. 나 내일 잠깐이라도 축구하러 갔다 와야겠다"
아내와 아이들은 예배 끝나고 집에 데려다 놓고 목장 모임을 하러 다시 교회로 갔다. 목장 모임이 끝날 때쯤에는 부슬부슬이긴 했어도 꽤 많은 양의 비가 내렸다. 저녁 식사 장소는 집 근처였다. 축구하다가 조금 일찍 나와서 집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고 함께 갈지, 아내랑 아이들은 먼저(따로) 갈지 정해서 내가 연락을 주기로 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쌀쌀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좀 늦게 나왔다. 한 시간 정도를 그냥 허비하고 제대로 뛴 건 30분 정도였다. 아내는 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게임을 더 차고 갈지 거기서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지 고민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가려면 거기서 끝내야 했다. 몸은 축구장으로, 머리는 집으로. 약속 장소가 집에서 가깝긴 해도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따로 가려면 궂은 날씨에 택시를 타야 하니 훨씬 번거롭긴 했다. 일단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어. 끝났어?"
"어, 뭐. 한 게임 더 찰지 말지 고민 중이야. 애들은 잤어?"
"시윤이만"
"소윤이는 여보가 안 재운 거야?"
"어, 그렇지"
"괜찮아?"
"아니"
"아, 알았어. 이제 바로 갈게"
못내 아쉬웠지만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잠시의 쾌락을 즐기려다가 영원히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주머님(형님-아내 오빠-의 아내)의 생일이라 처가 식구들이 모였다. 소윤이는 외숙모를 향해 편지도 썼다. 말하는 걸 보면 어른 같을 때도 많은데 글을 쓰는 걸 보면 아직 다섯 살이라는 게 물씬 느껴진다. 그래서 좋다. 아직 어설프고 한참 모자란 구석을 만나면 반갑다. 시윤이도 누나를 따라서 종이에 편지를 대신한 그림을 그렸다. 물론 진짜 그림다운 그림은 아니었지만.
소윤이와 시윤이는 음식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어른들이 고정 값이라면 소윤이와 시윤이는 변동 값이었다. 오늘처럼 잘 먹는 날에는 얘네 속도를 봐 가면서 숟가락과 젓가락을 놀려야 한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케이크도 엄청 잘 먹었다. 처음에는 한 그릇에 함께 떠 주고 나눠 먹도록 했는데 둘이 엄청난 신경전을 벌였다. '양보'와 '배려'라는 윤리의식을 상기시켜서 스스로 돌이키도록 하고 싶었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장모님이 그릇을 하나 더 투입해서 각자의 몫을 나눠줬다. 그제서야 평화가 찾아왔다. 소윤이의 포크질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시윤이는 별 차이가 없었다. 같이 먹을 때도 빠르게, 따로 먹을 때도 빠르게. 번개탄 같은 녀석이다. 짧고 굵게 자기 배를 채우면 뒤도 안 돌아 보고 포크를 내려놓는다.
"여보. 시윤이가 먹는 음식 중에 제일 안 흘리고 먹는 게 케이크 같아"
아내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잘 흘리지도, 묻히지도 않고 입에 쏙 넣었다. 그것도 매우 빠른 속도로.
카페에 들러서 차를 한잔하고 집에 돌아왔다. 아내에게 슬쩍 물었다.
"여보. 오늘 안 자고 싶어?"
"응"
곧이어 아이들에게 통보했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은 아빠랑 자자"
곧바로 울음바다가 되었다.
"엄마라아아아아앙. 엉엉엉엉엉엉"
"엄마랑 자고 싶어여어어어어엉"
단호하게 거부했다.
"소윤아, 시윤아. 너희 맨날 엄마가 재워주시잖아. 오늘은 엄마가 할 일도 있고 힘드시다고 해서 아빠가 재워주는 거야. 자꾸 이러면 아빠가 어떻게 한다고 했어? 아예 엄마랑 못 잔다고 했지?"
그런 일이 벌어지면 너희뿐만 아니라 아빠도 너무 슬플 거야. 그러니까 우리 서로 잘 하자.
"그러니까 이제 그만 울고 아빠랑 씻고 들어가서 자자"
그렇게 슬피 울다가도 막상 방에 들어가면 또 고분고분하게 잘 잔다.
"소윤아. 아빠랑 자는 게 그렇게 싫어?"
"아니, 아빠랑 자는 게 싫은 게 아니라 엄마랑 자고 싶은 마음이 크니까 그런 거져"
"시윤이는? 아빠랑 자는 게 싫어?"
"네. 엄마양 자고 지퍼여어"
이걸 부러워해야 하나, 부러워하지 말아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