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8(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게 되니 아침에 아이들이랑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고 여유가 없어졌다고 생각을 했는데 차 타고 가도 어차피 그만큼 늦게까지 밍기적거리니 그게 그거구나 싶다. 시윤이는 아침부터 먹을 거 달라고 울어대고 있었고 소윤이도 마찬가지로 눈 뜨자마자 이것저것 간식을 먹고 있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갈 게. 빠이빠이"
소윤이, 시윤이, 아내에게 차례로 뽀뽀를 하고 집을 나섰다. 아침 공기가 눈에 띄게 차가워졌다. 그래도 한 10분 자전거 타면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원흥역에 내려가면서 입고 있던 바람막이를 벗었다. 대화역에 도착해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달렸더니 지난 주보다 한 10분 정도가 줄었다. 거기에 확실히 몸도 더 개운한 것 같다. 차 가지고 온 날은 일하는 내내 몸이 덜 깬 느낌이었는데 자전거 타고 출근하면 온몸의 세포가 활성화돼서 난리인 느낌이랄까.
'역시 자전거 타고 오는 게 개운하네'
컴퓨터 앞에 앉아 열심히 일을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막 졸았다. 그 왜 너무 피곤하면 졸음이 오는 걸 느끼지도 못하고, 분명히 멀쩡했는데 눈 떠보니 자고 있고. 그런 느낌.
'어? 이상하다? 개운한데? 안 피곤한데?'
몸은 아니었나 보다. 기면증 환자처럼 순식간에 수면 상태에 빠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아내는 기껏 차 놓고 다녀도 거의 차를 쓰지 않고 있다. 없을 땐 막 당장 차 쓸 수 있으면 엄청 좋을 것 같아도 막상 애 둘 데리고 어디 나가려고 마음먹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시윤이는 유모차에 태우고 소윤이는 아내 앞에 서 있고 아내 손과 유모차에는 재활용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봉투가 걸려 있는 사진을 받았다.
[우리는 시윤이 재우는 게 목표야]
이제 아내와 전략을 공유하고 시행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우리 소윤이가. 대략 그렇게 나가서 바람 좀 쐬다가 근처 카페에 들렀다가 (이때 하람이네도 만나고) 오후에는 놀이터에서도 놀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집에 돌아오니 애들은 저녁 먹기 직전이었다. 퇴근하면서 전화했을 때 아내는
"오늘은 여보 오자마자 나가야지"
라고 했다. 시윤이가 격렬하게 울고 있었다. 일단 빨리 밥을 달라며 울고 있었고 막상 밥을 주려고 하니 엄마가 밥을 먹이라고 울었다. 난 이미 앉아서 소윤이랑 저녁을 먹고 있었다. 아내가 일단 안고 몇 숟가락 맛을 보게 하면 스스로 앉지 않을까 싶어 아내가 밥을 떠 먹였다. 받아먹기는 했는데 먹으면서도 날 향해 손짓하며
"이이잉 이이이잉"
소리를 냈다. 비키라는 거다. 아빠는 비키고 엄마가 거기 앉아서 날 먹여야 한다는 의미였을 거다. 참 내. 퇴근해서 반갑다고 뛰어 와서 안길 때는 언제고 또 비키래. 하여간 아빠들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불과 몇 분 전에 죽고 못 살 것처럼 굴던 아이들이아빠를 언제 찬밥신세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일단 시윤이도 앉히고 아내도 앞에 앉았다가 아내는 일어나고 내가 앉았다. 시윤이는 자지러졌다. 아내가 오늘 유난히 서두르길래 약속이 있냐고 물었는데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다른 날은 얼른 나가라고 해도 이것저것 해놓고 나간다고 늦어졌으면서 오늘은 왜 그렇게 서두르나 싶었다. 아무튼 아내는 서둘러 나갔고 시윤이는 소윤이가 밥 다 먹을 때까지 엄마를 찾으며 독기를 품고 울었다. 안아준다고 해도 싫다 그러고 내려준다고 그래도 싫다 그러고. 소윤이 다 먹고 의자에서 내려주니까 그제야 자기도 안아 달라며 나에게 팔을 뻗었다. 그렇게 안기더니 순한 양이 되었다. 엄청 졸렸나 보다.
시윤이를 내려놓을 수 없는 상태라 소윤이는 대충 씻겼다. 그나마 소윤이가 말을 잘 들었다. 화장실 의자에 있는 빨랫감 옆으로 치워달라고 하면 치워 주고 혼자 쉬 좀 하라고 하면 쉬도 하고 마무리도 하고. 불 좀 꺼달라고 하면 불도 꺼주고. 네 살이어도 누나는 누나인지 시윤이랑 같이 있으면 은근히 든든하다. 시윤이는 눕혀 놓으니 정신을 못 차리고 뒹굴거렸다. 눈은 뜨지도 못하고 엄지손가락은 입에 넣고. 소윤이는 책 세 권 읽고 시답잖은 수다 좀 떨다가 순식간에 잠들었다.
아내는 내일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다며 롯데몰에 갔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아내는 옷이 별로 없다. 하긴 우리 집에서 강소윤 말고는 옷 많은 사람이 없긴 하지. 아내가 원피스 입고 사진을 하나 찍어서 보냈다. 미용실 가운 같았다.
[여보. 그거 샀어?]
[아니]
다행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샀을지도 모르니
[별론데]
라고 얘기하지 않고 샀냐고 물어봤다. 바둑이나 장기랑 비슷하다. 여러 수를 앞서 볼 수 있을수록 유리하다. 미용실 가운 대신 산 옷 두 개는 모두 예쁘고 잘 어울렸다. 아내는 집에 와서도 휴대폰으로 열심히 아이쇼핑 중이다. 생일 때 여기저기서 받은 용돈 덕분에 오랜만에 주머니가 두둑해져서 요 며칠 한껏 흥이 오른 듯하다. 재벌가 며느리 코스프레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제 롯데몰에 갔을 때도 뉴발란스 10만 원짜리 옷을 내가 조금만 조르면 사줄 기세였다. 오히려 먼저 나를 부추겼다. 텅 빈 지갑을 보고
"내 돈 다 어디 갔지"
하며 나라 잃은 표정을 짓고 있을 아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여보. 누려. 뭐 어차피 인생 YOLO 지. 써. 막써.
아. 참. 나 자전거 탈 때 입을 옷이랑 축구할 때 입을 싸구려 바람막이가 필요한 것 같더라.
그냥 그렇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