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09(화)
한글날에 걸맞게 이제 막 말문이 트여서 엄마 아빠 빠바 따위의 단어를 나름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일이 많아진 시윤이. 단순히 적절한 때에 적당한 단어를 선택해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을 넘어서 가끔은 유머와 해학을 담은 표현을 사용하는 소윤이와 함께 하고 있다. 소윤이가 막 말문이 트이고 하루가 다르게 한국어 회화 실력이 늘어가는 걸 보고 영어공부(다른 언어도)는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시윤이를 보고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그동안 정체되어 있었나 보구나.
하루 종일 집에서 애들과 씨름하는 아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나도 한 번씩 이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문득문득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나마 올해는 [비교적 젊은데 열심히 육아하는 아빠] 지만 해가 갈수록 [점점 늙어가지만 열심히 육아하는 아빠]로 머무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 난 그렇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름 저항의 몸짓도 해보고 했지만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불안함에 사로잡히는 게 마땅한 것으로 여겨지는 대한민국에서 34년을 살다 보니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애들이 커 갈수록 [성공, 안정, 미래]류의 단어들이 나를 괴롭게 할 때가 많다.
그런데 또 냉정히 생각해보면 난 늘 쭉 이래왔다. 생각과 실천의 괴리가 꽤 큰 인간 중 한명이었다. 머리는 부지런히 몸은 게을리.
앗. 오늘은 왜 시작부터 잡소리지. 아무튼 오늘은 바빴다. 일단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인 해나의 결혼식이 점심때 있었다. 다행히(?) 두 녀석이 일찍 일어나 아내와 나를 못살게 구는 바람에 시간은 많이 확보됐다. 아내가 소윤이 시윤이의 아침을 준비하고 먹이는 동안 나는 샤워를 했다. 애들이 밥을 다 먹고 나도 샤워를 마친 후에는 아내가 머리를 감았다. 부지런히 움직였더니 오히려 시간이 남은 것처럼 느껴졌다.(육아인에게 시간이 남았다 는 생각은 금물이다. 그것은 느낌일 뿐이라는 자기 세뇌만이 정시 출발, 정시 도착을 이뤄낼 수 있다) 아침부터 졸음에 허덕이고 있는 나를 아내가 채근했다.
"여보. 이제 애들 옷 입혀야 돼"
어제 밤늦게까지 애들 옷을 뭘 입힐지 얘기하고 미리 정해놨다. 소윤이는 입을 옷이 풍년인데 시윤이는 입을 옷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늘만 해도 소윤이는 추석 기념으로 할머니가 사준 원피스를 입었지만 시윤이는 아내가 월요일에 급히 무지에서 산 바지와 울산에 있을 때 알던 지인이 물려준 티셔츠를 입었다. 아내도 월요일에 급히 산 원피스. 난 계절을 가리지 않고마땅히 입을 게 없을 때 손이 가게 되는 가장 최근에 산 정장(이것도 아저씨 말인가? 수트라고 해야 하나. 중고등학생 시절 6년 동안 교복 '마이'라고 불러서 마이가 입에 붙었는데 맨날 아내가 뭐라고 한다. 아저씨 같이 마이가 뭐냐면서)
각자 나름의 사연과 연식의 차이는 있지만 온 가족이 이렇게 꾸미고 외출하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누가 가족 아니랄까 봐 다들 한 가지씩 아쉬운 점이 있다. 시윤이는 머리카락, 소윤이는 까만 피부, 아내는 작은 키 (난 작은 여자가 좋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아무리 말해도 자기는 작다며 자책하는 듯하지만 가만히 들어보면 작아서 귀엽다는 걸 은근히 어필할 때가 대부분이다)
나는? 과체중. 하하하하하하하하. 젠장.
아무튼 태어나서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중곡동이라는 동네까지 가야 해서 얼마나 걸릴지 감이 없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운전할 때, 특히 그곳이 행정 구분 상 서울특별시 소속이라면 막연하게 막힐 거라는 짐작을 하게 마련이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부지런히 출발했다. 생각만큼 막히지는 않았고 덕분에 식이 시작하기 전에 도착해서 신랑 신부와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도 해나(신부)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 결혼식에 오셨다. 덕분에 아내와 나는 한결 가벼워졌다. 실제로 육체의 부담이 가벼워진 것도 당연하지만 심리적으로 '언제든 맡길 수 있는' 누군가가 근거리에 함께 한다는 건 참 큰 위안이요 힘이 된다.
주례를 맡으신 목사님의 말씀이 참 좋았다. 요즘 나는 조곤조곤 체계를 갖춰 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가 끌린다. 내가 행하기 힘든 일이라 그런가 약간의 동경심이 수반되기도 하는 것 같고. 오늘 결혼식을 보며 '나도 교회에서 결혼식을 하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그럴만한 위치나 관계가 아니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늙으면서 주책과 청승 수치가 늘었나 울컥하는 지점도 몇 군데 있었다. 신부가 입장하면서 아빠랑 포옹할 때, 신부가 엄마 아빠한테 큰 절 할 때. 나 소윤이 결혼할 때 통곡하면 어떻게 하지?
결혼 예식은 아주 정갈하고 깔끔하고 격식 있고 아무튼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그런 결혼식이라 아주 좋았다. 사진 찍을 때부터 중노동이 시작되었다.
"자. 신랑 신부 친구, 지인분들 나오실게요"
과거의 직업병인지 몰라도 저 '나오실게요'는 들을 때마다 걸린다. 제발 '나오세요'라고 했으면 좋겠다. 아무튼 나는 소윤이를 안고 뒷 줄에 아내는 시윤이를 안고 앞 줄에 섰다.
그냥 단체 사진
부케 받는 단체 사진
부케 들고 단체 사진
신랑 신부 뽀뽀하는 단체 사진
이 코스는 혼자 찍어도 힘든데 소윤이를 안고 찍으려니 어마어마한 피로감이 순식간에 적립됐다. 밥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내랑 둘이 먹어도 정신 사나운 게 대부분인 결혼식 피로연장인데 소윤이 시윤이까지 앉혀서 먹이려니 이건 뭐 조선시대 저잣거리가 이랬나 싶었다. 시윤이는 백정이 환생했나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묻히고 흘려가며 게걸스럽게 자기 주도 식사를 진행했다.
식사는 니가 주도하고 청결 및 뒤처리는 엄마가 하냐.
소윤이도 인도 문화 체험하러 온 것 마냥 모든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고 있었다. 탕수육을 포크로 집으려고 했는데 피융 하고 튕겨져 나가는 걸 보고 나도 그냥 단념했다.
'그래. 너라고 뭐 그러고 싶었겠냐'
결혼식 후에도 약속이 있었다. 있긴 있었는데 시간과 장소가 명확하지 않았다. 홈스쿨을 함께 하기로 한 시안이네를 만나기로 했는데
[일단 행주역사공원에서 만나는 걸로 하되 날씨가 안 좋으면 시안이네서 보기로 했다]
는 게 아내의 설명이었다. 하필 날씨가 꾸물꾸물 했다.
"몇 시에 보기로 했는데?"
"어. 우리가 결혼식 끝나면 연락하기로 하기는 했는데 대략 4시에서 4시 30분?"
아내가 급히 연락을 취한 결과 [장소는 시안이네 집, 시간은 도착하는 대로]로 정해졌다. 돌아가는 길도 별로 막히지 않아서 슝슝 달리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시안이와 다율이(시안이 동생)가 모두 낮잠에 돌입해서 5시 30분쯤 봐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출발한 지 얼마 안 돼 잠들었다. 시간의 공백이 생겼고 아내와 나는 윌에 가서 커피를 사기로 했다. 아내가 커피를 사러 간 사이 소윤이가 깼다. 원래 애들이 안 깨면 차에서라도 커피 마시며 여유를 즐기려 했는데 소윤이가 금방 깨버렸다.
"여보. 일단 집에 가야겠다"
집에 가봐야 한 시간 남짓 머물다 나와야 했지만 그렇다고 밖에서 버틸 수도 없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와 나는 그대로 누워 버렸다. 결혼식에 다녀오는 게 이토록 고단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소윤이가 자지 말고 눈 뜨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지만 아내와 나 모두 쪽잠을 잤다. 어찌나 피곤하던지. 다음부터는 결혼식이 있으면 다른 일정은 잡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다시 집에서 나왔다. 이제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소윤이랑 시윤이는 자기 집처럼 마음대로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오히려 주인인 시안이와 다율이가 멀뚱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소윤이랑 시안이는 같이 노는 듯하면서도 서로 말 한마디를 섞지 않는 게 신기했다. 아직 아기인 둘째들은 각자 마이웨이. 먼저 애들 밥부터 먹였다.오늘 했던 일 중 가장 잘 한 일이었다. 애들만 먹이는데도 어찌나 정신없는지 이미 밥을 먹은 기분이었다. 애들 먹이고 나서 어른들도 밥을 먹었다. 식탁에서 먹었는데 다음에 집에 손님이 오면 이 방법을 써야겠다. 애들 먼저 먹이고 어른들은 식탁에서 먹고. 일단 물리적으로 애들이 방해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시간이 좀 지나니 소윤이랑 시안이가 서로 대화도 하고 꽤 친밀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에 따라 갈등과 대결의 구도도 종종 형성되었으나 둘 다 끝까지 고집부리는 성향은 아니라 대체로 평화스럽게 마무리되었다. 아주 잠깐씩이긴 해도 여기가 애 네 명이 함께 있는 공간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안한 분위기가 느껴져 어른들이 흠칫 놀라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우리야 훌렁 떠나면 되지만 어질러진 집과 쌓인 설거지를 치워야만 하는 시안이네한테 좀 미안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다시 차에 탔을 때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아마 거리가 조금만 더 멀었으면 둘 다 그대로 잤을 텐데 그러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조금 더 태워서 돌아볼까 아내랑 잠깐 고민했지만 빨리 들어가서 씻기고 재우는 방법을 택했다. 아주 빠르게 씻기고 옷 갈아 입히고 방에 들어갔다. 아내가 가장 먼저 잠들었다. 그다음 소윤이. 그다음 시윤이. 아내가 씻지도 못하고 자는 데다가 내일 목장 모임이 있으니 혹시라도 준비할 게 있나 싶어 흔들어 깨웠다. 파드득 움찔하며 눈을 뜬 아내가 얘기했다.
"아. 나 완전 잠들 뻔했어"
?
여보. 제일 먼저 잠들었는데? 그리고 꽤 잤어 . 한 20분?
"여보. 계속 잘 거야?"
"아니. 나가야지"
"알았어. 그럼 잠 깨면 나와"
하고 먼저 나가려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아함. 졸리다"
"그럼 그냥 자. 꼭 해놔야 하는 거 있어? 내가 해 놓을 게"
"음. 없어"
"그럼 그냥 계속 자"
"그럴까"
꼭 해놔야 하는 거 없다고 했으니 어질러진 거실만 대충 정리하고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도 너무 피곤해서 혹 아내가 뭘 시켰더라도 안 하고 그냥 잤을지도 모른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편 지 얼마 되지 않아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 한글날이 끝났다니.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빨간 날이 없다니'
슬픈 마음을 안고 자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