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28(목)
시윤이가 아침부터 짜증이 한 바가지였다. 꼭 아플 때처럼 짜증과 신경질이 기본이었다.
"시윤아. 어디 아파? 힘들어?"
"네. 힘드여여"
"힘들어?"
"네"
"어디가?"
"모야여(몰라여). 그양 힘드여여"
걱정스러웠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에 가고 난 집에 남아 묵은 집안일을 했다. 설거지와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건 늘 하는 일이고 오늘은 특별히 화장실 청소도 했다. 다짐, 또 다짐을 해 봐도 마음처럼 부지런히 안 되는 건 왜 그런 걸까. 아무튼 오랜만이니 열심히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기도 모임이 끝나고 점심까지 먹고 온다고 하길래 나도 대충 점심을 때웠다. 밥, 순무, 김. 대충 식탁에 꺼내 놓고 서서 해결했다. 겉모양만 보면 궁상맞고 불쌍하기 짝이 없지만 나름 최고의 식탁이었다. 순무는 나에게 영혼을 달래는 음식이기 때문에.
"여보. 뭐 했어?"
"그냥 뭐 있었지"
"좀 쉬었어?"
"어, 잘 쉬었어. 끝났어?"
"어. 여보. 우리 어디 카페라도 갔다 올까?"
"그럴래? 알았어"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서 나갔다. 시윤이는 잠들어 있었고 소윤이는 표정이 좋지 않았다.
"소윤아.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아니여"
"그럼?"
"그냥여"
"졸려?"
"네"
아침에 상태가 별로여서 걱정했던 시윤이는 다행히도 아무렇지 않았다.
[오늘]에 가기로 했다. 집에서 한 30-40분 걸리니까 그동안 소윤이에게도 자라고 했다. 소윤이는 습관성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일단 눈을 감게 했더니 금방 잠들었다. 아내와 나의 밤 자유를 담보로 잡힌 늦은 낮잠인 게 아쉽긴 했어도 평화롭고 유쾌한 카페에서의 시간을 대가로 받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요즘은 아내의 급격한 체력 저하 때문에 애들이 협조해도 아내가 못 버틸 때도 많고.
카페에 막 도착했을 때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잠에서 깼다. 시윤이는 매우 개운한 듯 깨자마자 밝은 표정과 쾌청한 목소리를 보였지만 소윤이는 자기 전의 뚱했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뭔가 잠이 개운하지 않았나 싶은 표정이었다. 잠이 덜 깨서 그렇겠거니 생각하고 카페에 들어갔다. 아내와 내가 마실 커피도 사고 함께 먹을 빵도 사고, 오늘은 특별히 아이들에게 줄 핫초코도 주문했다.
딸기 타르트를 먹었는데 그걸 먹다가 거기 올려진 딸기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렸다면서 소윤이가 서럽게 울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서럽게 울 일이 아닌데 요즘 유독 눈물이 많아진 걸 떠올리며 그 연장선인가 추측했다. 그걸 감안해도 좀 지나치긴 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소윤이 마음속의 뭔가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제어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소윤아. 계속 짜증만 내다가 갈 거야? 우리 가족끼리 즐겁게 보내려고 왔는데 그렇게 계속 짜증만 내다가 가면 시간이 아깝잖아. 소윤이가 속상한 건 충분히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그렇게 내버려 두면 안 돼. 소윤이도 마음을 잘 다스려 봐"
이번에는 핫초코. 소윤이가 핫초코가 든 컵을 들다가 놓쳤고 그대로 바닥에 쏟아졌다. 꽤 많이 마시고 1/3도 안 남은 상태였지만 소윤이는 마찬가지로 엄청 서럽게 울었다. 아무래도 그대로 두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서 소윤이를 데리고 차에 갔다.
"소윤아. 여기서 마음 좀 진정시키고 가자. 소윤이가 계속 울고 짜증 내고 그러면 우리가 여기 계속 있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여기서 마음이 좀 괜찮아지고, 소윤이가 다시 카페 가서도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으면 그때 아빠한테 얘기해"
"아빠"
"무조건 됐다고 하지 말고, 좀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봐. 알았지?"
한 10여 분이 지나고 소윤이는 이제 괜찮다며 울음을 걷어낸 목소리로 얘기했다. 소윤이는 태도의 큰 변화는 없었다. 반대로 시윤이는 어디까지 신나고, 어디까지 해맑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윤이와 반대의 모습이었다. 그저 뚱하고 짜증이 가득하다고 생각한 소윤이에게서 약간의 무기력함이 보였다. 심상치 않은 기색이었다.
"소윤아. 혹시 힘들어?"
"네. 힘들어여"
"어디가?"
"그냥 힘들어여"
이마도 따끈했다. 언제부터 힘들었냐고 물었더니 오늘 아침부터 그랬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아침에 소윤이랑 대화를 하는데 소윤이가 평소보다 내 말을 너무 못 들었다. 자꾸 되물었다.
"네? 뭐라구여?"
그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 이유가 있었나 보다. 언제부터 힘들었냐고 물었더니 오늘 아침부터라고 대답하더니, 소윤이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환자의 모습을 보였다. 기침은 이미 많이 하고 있었고.
코가 가득 차고, 기침도 많이 하고, 청각 기능에 약간의 장애(?)가 생긴 걸로 보아 중이염이 아닐까 의심했다. 열도 좀 났고. 숨 쉬는 게 힘들지는 않은지, 침 삼킬 때 목은 아프지 않은지 물어봤더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집에 오는 길에 한살림에 들러서 누룽지와 새우 죽을 샀다. 아내는 누룽지탕을 끓이고 새우 죽을 데웠다. 시윤이는 멀쩡했지만 누나 덕분에 함께 환자식이었다. 시윤이는 죽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소윤이도 죽보다는 누룽지를 잘 먹었다. 물론 엄청 잘 먹지는 못하고 몇 숟가락 뜨다 말았을 뿐이었다.
소윤이는 39도가 넘었다. 병세가 짙어지는지 점점 몸이 늘어지고 신음소리를 냈다. 기침도 자주 했다. 카페에서 마음이 작아져서 그런 게 아니라 아파서 그랬던 건데 그걸 몰라줘서 조금 미안했다. 진작에 알았으면 굳이 카페도 가지 않고 집에서 쉬었을 텐데.
첫날은 항상 비슷하다.
'하루 만에 멀쩡해 질지도 몰라'
'내일 아침에는 멀쩡해졌으면 좋겠다'
'괜찮겠지?'
걱정보다는 기대를 품게 된다. 소윤이는 통계상 하루 만에 멀쩡해진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