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29(금)
안타깝게도 소윤이는 더 나아지지 않았다. 그대로였다. 아니, 오히려 더 안 좋아졌다. 처치홈스쿨에는 시윤이만 가고 소윤이는 나와 함께 집에 있었다. 소윤이는 서럽게 울었다. 처치홈스쿨에 가지 못해서가 아니라 엄마랑 떨어지는 게 싫어서. 아플 때는 엄마의 손길이 더욱 그리운 법인데 오히려 엄마랑 떨어지게 되는 게 많이 속상했나 보다. 한참을 서럽게 울었고 하루 종일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허덕였다.
증상은 비슷했다. 코 막히고, 기침하고, 열이 조금 나고. 내가 하는 말을 잘 듣지 못하는 건 어제보다 심해졌다. 보통의 목소리로 말하면 거의 못 알아듣고 되물었다.
아침으로 누룽지를 줬지만 역시 거의 먹지 못하고 누웠다. 간병인 자격으로 옆에 있기는 해도 가만히 누워있는 소윤이 옆에 내내 붙어 있을 수는 없으니까 소윤이에게 얘기하고 작은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소윤아. 아빠 여기서 아빠 할 일 좀 할 테니까 소윤이는 거기 누워있다가 필요한 거 있으면 아빠 불러? 알았지?"
"네"
영 마음이 불편했다. 자는 것도 아닐 텐데 혼자 누워서 천장과 벽을 번갈아 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을 소윤이가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계속 옆에 앉아서 말동무를 해 줄 수도 없고. 어차피 소윤이도 그럴 만한 기력이 없었다. 소윤이는 한 번씩 일어나서 내가 보이는 쪽으로 몸을 움직여 나랑 눈을 맞추고는 다시 눕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을 하더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작은방으로 들어왔다.
"소윤아. 심심하지?"
"네"
"그래. 알았어. 기다려 봐"
노트북을 가지고 거실로 나왔다. 소윤이는 소파에 눕도록 하고 난 식탁의 자리를 옮겨서 소윤이랑 서로 마주 보는 구조를 만들었다.
"소윤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아빠는 여기서 컴퓨터 할 테니까 소윤이는 거기 누워 있어. 그래도 아빠 보이니까 좀 낫지?"
"네"
거실에 누워있던 소윤이 눈꺼풀의 꿈뻑꿈뻑 느려졌다. 소윤이를 방에 데리고 들어가서 재우고 나왔다. 온 집안에 무거운 공기가 가득했다. 노트북을 펴고 앉긴 했지만 집중이 잘 되지도 않았다. 차라리 집안일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설거지 좀 하고, 어질러진 집을 좀 치웠다.
소윤이는 한 시간 조금 넘게 자고 일어났다. 자기 전에는 자고 일어나면 엄마가 오냐고 물으며 엄마를 찾았고, 일어나서는 엄마는 언제 오는 거냐며 엄마를 찾았다. 물론 아내가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남았을 때였다.
"엄마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금방 오시긴 할 텐데, 바로는 못 오셔. 처치홈스쿨에 가셨잖아"
금방 온다는 건지 한참 있어야 한다는 건지 애매하게 대답했다. 금방 오니 힘을 내라는 희망의 메시지와 아직 더 있어야 하니 마음 접고 편히 있으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주고 싶었나 보다.
소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차는 아내가 가지고 가서 없었고 택시를 탈지 버스를 탈지 고민했다. 버스나 택시나 시간은 비슷하게 걸렸다. 집 앞에서 타면 병원 바로 앞까지 가는 버스도 있었다.
"소윤아. 아무래도 소윤이 병원을 좀 가야 할 거 같은데 소유니 걸을 수 있겠어? 괜찮으면 버스 타고, 좀 힘들면 택시 타고 가려고"
"괜찮아여. 버스 타도 되여"
"그래? 알았어. 시간 맞춰서 나가면 바로 탈 수 있을 거야"
버스가 20분 간격 배차라 한 번 놓치면 많이 기다려야 했지만 우리 집이 종점 근처라 시간 맞추기는 어렵지 않았다. 소윤이가 추위에 최대한 덜 노출되도록 무장을 시킨 뒤 집에서 나왔다. 소윤이는 바깥바람을 쐬니까 오리혀 조금 생기가 도는지 약간 말도 하고 나서서 버스가 오는지 살피기도 했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역시나 중이염이었다. 양쪽 귀에 염증이 가득 찬 상태였다. 청진기 소리로는 일단 폐렴은 아니라고 하셨다. 코에 공간이 없을 정도로 부어서 그것 때문에 콧물이 귀로, 목으로 넘어가서 그렇다고 하셨다.
"아빠. 집에 가면 엄마 와 있어여?"
"아니, 아직. 한참 더 있어야 오시지"
"엄마 보고 싶다"
소윤이는 말이 없었다. 기운이 하나도 없이 축 늘어진 상태였다. 말 한마디 하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하루 종일 같이 있었지만 대화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다. 버스에서도 집에서도 침묵이 소윤이와 나 사이를 채웠다.
병원에 갔다가 집에 막 돌아왔을 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여보. 전화했었네?"
"어. 소윤이 병원 다녀왔어"
"아, 그래? 뭐래?"
"중이염이 심하대"
"그렇구나. 여보. 우리도 병원 갔다가 가야 할 거 같아"
"왜? 여보도 안 좋아?"
"아니, 시윤이"
"시윤이? 왜?"
"오전에는 완전히 멀쩡했는데 낮잠 자고 일어나더니 갑자기 엄청 칭얼대면서 나한테 떨어지지를 않더라고. 이마 만져보니까 좀 뜨끈한 게 얘도 아픈 거 같아"
"아, 진짜? 다들 난리네. 알았어. 잘 갔다 와"
소윤이는 밥은 거의 먹지 못했다. 대신 과일은 꽤 잘 먹어서 틈틈이 딸기와 배, 감을 줬다. 신기하게도 과일은 평소처럼 잘 먹었다.
시간이 지나고 아내와 시윤이도 돌아왔다. 아침에는 눈 오는 날 강아지처럼 폴짝대며 뛰어나갔던 시윤이가 한 걸음 옮기기도 힘든 몸짓으로 돌아왔다.
"시윤아. 시윤이도 아파?"
"네"
"힘들어?"
"힘드여여"
다행히 오늘 철야 예배 드럼 반주가 없어서 교회는 안 가도 됐다. 정확히 말하면 특별 집회가 있어서 나의 반주 임무가 없어졌고, 우리는 다 함께 교회에 가려고 했었다. 상황이 그랬으니 당연히 모두 무산되었지만. 어쨌든 내가 함께 집에 남을 수 있는 건 다행이었다.
시윤이는 아파 보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소윤이처럼 막 깊은 구덩이에 빠진 느낌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먹은 걸 아주 조금 게워냈는데 그 후부터는 다시 멀쩡해졌다. 자고 일어나면 또 어떻게 바뀔지 몰랐지만 어쨌든 당장은 정상인이었다.
기나긴 간병의 하루가 끝나갈 즘,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어디라도 좀 나갔다 와"
"이 시간에 어디를 가겠어"
"왜, 그래도. 운동이라도 하고 오든가 카페를 가든가"
"괜찮아"
"뭘 괜찮아. 여보 하루 종일 답답했을 거 아냐. 그러니까 어디라도 좀 나갔다 와. 알았지? 우리 들어가면"
"알았어"
힘든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지만 아내는 탈출을 포기하고 잠을 선택한 듯했다. 선택이 아닌 강제나 마찬가지였지만.
자기 직전까지도 소윤이는 썩 나아지지 않았다. 밤잠이 부디 회복의 원천이 되길 바라며 인사를 하고 나왔다. 소윤이도, 아내도 모두 지쳐서 만신창이였다. 희한하게 강시윤만 활력이 넘쳤다.
"여보. 얘라도 이렇게 해맑아서 다행이네"
"그러게"
병실처럼 무거운 분위기에 그나마 생기를 더하는 게 시윤이의 몸짓과 웃음이었다.
모두 방에 들어가고 혼자 소파에 앉았다. 이미 많이 늦은 시간이라 운동도 하고 카페도 가려면 바로 움직여야 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나갈까 말까 수백 번 고민하다가 아내 말처럼 그대로 집에 있다가는 나도 짙은 질병의 공기에 오염될 거 같아서 일단 나갔다. 잠깐이라도 카페에 앉아 있다 올 생각이었는데 밤공기가 생가보다 너무 상쾌하고 좋았다. 가방을 멘 채로 동네를 걸어 다녔다. 한 30분을 넘게 걸었다. 몸속 어딘가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병균을 뿜어내고 새 공기를 채우는 느낌으로 크게 크게 호흡했다. 아내 말을 듣고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