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06(금)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라 일찍부터 알람이 울렸다. 어제 늦게 잤더니 아침에 눈 뜨기가 힘들었다. 아내가 일어나서 아침도 차리고 애들 준비도 시키려는 찰나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밥은 이미 아내가 했고 계란을 프라이팬에 올렸을 때 내가 이어받았다.
아내의 도움이나 확인이 없어도 진행이 가능한 밥 먹이기, 옷 입히기 (물론 옷은 아내가 골라주거나 찾아줌)는 내가 맡아서 했다. 시간 단축을 위해 떠먹여줬다. 한 그릇에 퍼서 번갈아 주려다가 혹시나 끝나가는 감기에 불을 지필까 봐 따로 떠서 줬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시윤이는 이제 열도 완전히 떨어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나가고 곧바로 움직이려고 했는데 너무 졸리고 피곤해서 잠시 소파에 앉아서 쉬었다. 휴대폰 좀 만지작거리다가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왔다. 다행히(?) 오늘은 집이 그렇게 더럽지 않아서 바로 치워야겠다는 죄의식이 들지 않았다. 설거지는 조금 있었지만 조금 더 미뤄도 될 만한 수준이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카페에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평소보다 일찍 끝났다. 감기 때문에 빠진 가정도 많고, 교회가 추워서 일종의 단축 수업을 했다. 아내는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소윤이의 중이염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 단계라 걱정 안 해도 된다고 하셨고, 시윤이는 기관지염의 끝물이라고 하셨다. 시윤이는 약한 기관지염이었나 보다. 자기 힘으로 이겨낸 게 대견스럽다.
아내와 아이들은 먼저 집에 도착했고 난 조금 더 있다가 저녁 시간쯤에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열심히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바로 나에게 매달렸다. 일하고 온 것도 아닌데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드러누워서 좀 쉬었으면 좋겠는데 소윤이와 시윤이는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빠. 우리 놀자여"
"그래. 뭐하고 놀까?"
"숨바꼭질이여"
하필 숨바꼭질이라니. 세상 귀찮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즐겁게 임했다. 평소처럼 오두방정 가위바위보(가위바위보할 때 세상 정신 사납게 오두방정을 떨며 아이들을 웃기는)까지는 못 했다. 얼른 아내의 저녁 준비가 완료되길 바라면서 재밌지만 귀찮고 힘든 숨바꼭질을 이어갔다. 그러다 소윤이가 이제 숨바꼭질은 그만하고 다른 놀이를 하자고 했다.
"무슨 놀이?"
"아빠. 시윤이랑 인형 하나씩 들고 와 봐여"
"왜? 무슨 놀인데?"
"인형 밥 먹이기 놀이여"
그러더니 색종이를 주고는 그게 밥이니 그걸 잘라서 먹이는 놀이라고 했다. 차마 그것까지는 성실히 임하기 힘들었다. 함께하는 척하면서 슬쩍 소파에 앉아 대열에서 이탈했다. 소윤이는 눈치를 못 챘는지 아니면 채고도 모른 척해 준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날 놓아줬다.
드디어 아내의 저녁 준비가 끝나고 반가운 외침이 들렸다.
"저녁 먹게 자리에 앉자"
소윤이와 시윤이를 아기 의자에 앉히고 아내와 나도 앉았다.
"자, 오늘은 시윤이가 기도해"
시윤이는 이상한 지점에서 엉뚱한 걸 가지고 고집을 부렸다. 처음에는 기도를 못하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엄청 개미만 한 목소리로 들리지도 않게 읊조렸다. 제대로 하라고 주의를 줬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러더니 괜히 힘들다, 졸리다 핑계를 댔다.
"시윤아. 밥 안 먹고 싶어? 안 먹고 싶으면 지금 내려가"
"머그꺼에여"
"그럼 감사한 태도로 먹어. 그렇게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는 것처럼 하지 말고. 얼른 기도해"
그대로였다.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번에도 기도 안 하면 정말로 오늘 저녁은 못 먹는 거야"
마찬가지. 식판을 회수하고 시윤이는 바닥에 내려줬다. 당연히 대성통곡을 했다.
"시윤아. 울지마. 누가 밥상에서 그런 태도를 보여. 매일 감사히 먹어야지. 엄마, 아빠 말도 안 듣고"
시윤이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밥 안 먹은 덕분에 생긴 시간이 즐거우면 안 될 것 같았다. 역시나 시윤이는 안방에 누워 엄지손가락을 탐닉하고 있었다.
"시윤아. 이리 나와서 여기 벽 보고 서. 곧은 자세로. 그냥 서 있지 말고 반성하면서"
시윤이는 모두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기도 했지만 한 번도 싫은 소리 안 하고 끝까지 버틴 시윤이도 참 대단했다. 소윤이가 마지막 숟가락을 뜨고 나서 시윤이를 불렀다.
"시윤아. 이리 와"
다시 한번 차근차근 설명하고 같이 기도하고. 교회에 가려고 현관에 서서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러 인사를 나눴는데, 시윤이가 처음에는 오지 않았다. 멀찍이 거실에 앉아 손만 흔들었다.
"시윤아. 얼른 와서 뽀뽀"
"시더여어"
"아, 얼른. 아빠 가야 돼"
못 이기는 척 달려와서 안기고 환하게 웃으며 뽀뽀.
내가 교회에 가고 나서 장모님과 장인어른, 형님(아내 오빠)이 오셔서 함께 카페에 갔다고 했다. 아내는 미리 시윤이에게 얘기했다고 했다.
"시윤아. 가서 간식 먹어도 시윤이는 못 먹어. 못 참을 거 같으면 아예 가지 않아도 돼"
시윤이는 당연히 그래도 가겠다고 했다. 소윤이는 동생을 생각해서 끓어오르는 간식 욕구를 잘 자제했고, 자그마한 쿠기 하나만 먹게 됐다. 당연히 시윤이는 서글프게 울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안쓰러운 마음에 조부모의 권한으로 Super Pass 를 사용하려 했지만 아내가 단호히 차단했다고 했다. 훈육도 손발이 맞으면 효과가 배가된다.
아마 시윤이는 내일 눈뜨자마자 그 쿠키를 찾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