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인과의 하루

19.12.07(토)

by 어깨아빠

아내가 나의 늦잠을 보장해줬다. 아내와 내가 1차로 깼을 때도 이미 좀 늦은 시간이었는데 아내는 자기가 애들 밥 차려줄 테니 더 자라며 문을 닫고 나갔다. 덕분에 1시간 넘게 더 쉬다가 나갔다. 잠결에 소윤이와 시윤이가 잘 노는 소리, 그러다 갑자기 다투는 소리, 개입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시윤이가 어제의 쿠키를 찾는 소리도 들렸다.


점심에는 포항에 사는 아내 친구네 부부와 밥을 먹기로 했다.(친정이 일산이다) 집 근처 중국 음식점에서 만났다. 시윤이가 차에서 내리면서부터 뾰로통한 표정을 하더니 심통을 부렸다. 자기 말로는 엄마가 자기 손을 잡고 가기로 했는데 안 잡고 먼저 들어가서 그랬다는데 (아내는 얼른 메뉴 고르려고 도착하자마자 먼저 내렸다.) 납득이 가는 이유는 아니었다. 친구네 부부는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 살 딸과 함께였으니 아이는 총 세 명이었다. 그래도 방으로 예약한 덕분에(비좁긴 했지만) 제법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했다. 애들도 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먹어줬다. 다만, 시윤이는 여전히 짜증을 냈고, 먹는 것도 안 먹겠다고 그러고 도대체 왜 그러나 싶었는데, 졸릴 시간이었다. 난 평소에 비해 늦게 일어나서 시간이 얼마 안 지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미 집에서 나온 시간이 평소에는 낮잠 잘 시간이었으니, 다 졸려서 그랬던 거다.


아니나 다를까 시윤이는 밥 먹고 카페로 이동하는 15분 동안 잠들었다. 수정이와 아내 친구의 딸은 아주 잘 놀았다. 거기에 본 건물이 아닌 별채 같은 공간에 다른 손님도 없이 우리뿐이었다. 파손할 기물도 거의 없었고. 심지어는 주인분도 본 건물에만 있었다. 아이들이 좀 돌아다니고 시끄럽게 떠들어도 내버려 둘 수 있었고, 덕분에 어른들은 엉덩이를 많이 떼지 않고 나름의 대화도 나눌 수 있었다.


시윤이는 중간에 깨서 합류했다. 열심히 누나들의 흥과 속도를 따라가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안 따라주는 게 꼭 아빠 축구할 때 같았다. 그래도 자기들끼리 잘 어울렸다.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내 친구네 부부가 부모님께 맡기고 나온 둘째(2살, 아들), 내년에 태어날 롬이가 함께라면 물론 이 평화도 깨지겠지만, 처음(시윤이 없던 시절이나 어린 시절, 아내 친구 딸이 더 어렸을 때)에는 이마저도 버거웠다.


갑작스럽게 저녁 약속도 생겼다. 울산에 사는 아내 친구네 부부가 대전에 왔는데 만나자고 했다. 너무 호기롭게 우리가 있는 쪽으로 올 테니 저녁을 먹자고 했다. 그들은 여기서 1박을 하는 게 아니라 우리만 만나고 다시 울산으로 가야 했다. 우리도 아래쪽으로 좀 내려갈 테니 대전과 우리 집의 중간 지점쯤인 이천에서 보자고 했다. 괜찮다며 우리 집 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막상 내비게이션을 찍어 보니 너무 늦게 도착하는 걸로 나와서 조금 더 절충 지점에서 보자는 거였다. 그게 현명한 길이었다. 그래야 만날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고. 지도를 보며 고민하다가 아내와 나도 생전 가 본적 없는 판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차가 많이 막혀서 두 시간 정도 걸렸지만 덕분에 소윤이를 재웠다. 안 그랬으면 또 오랜만에 만나서 예민함만 잔뜩 풍기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시윤이는 두 시간에 가까운 운행에도 짜증 한번 없이, 오히려 웃고 장난치면서 잘 갔다. 역시 아까는 졸려서 그랬나 보다.


서로 먼 길(감히 울산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을 달려 판교에서 만났다. 저녁에 만난 가정은 애가 셋이다. 6살 남, 4살 여, 2살 여. 그래도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가정이라 아이들이 다 말을 잘 들었다. 어른 넷에 애가 다섯인데 휴대폰 영상 하나 틀지 않고 그 정도로 얌전하게 (상대적 평가임을 명심하자) 먹는 걸 보니 뭔가 뿌듯했다. 애들도 대단하고 부모들도 대단하고.


시윤이는 여기서도 음식이 나올 때마다 족족 안 먹겠다고 하면서 괜한 심통을 부렸다. 그러다 단호박 수프를 한 입 먹어보더니 태도가 변했다. 시윤아, 음식 앞에서는 체면 차려봤자 너만 손해야.


어쨌든 크게 다친(내면과 육신 모두) 부모 없이 무사히 식사를 마쳤으니 성공이라고 평가할만했다. 날이 춥지 않았으면 밖에서 시간을 좀 보냈을 텐데(애들을 자유롭게 풀어두고) 도저히 그럴 만한 날씨는 아니었다. 스타벅스를 찾아서 들어갔지만 자리가 없어서 다시 나왔고, 커피빈으로 자리를 옮겼다. 거기서도 겨우겨우 자리를 만들었다. 자리를 옮길 때마다 옷 입히는 게 일이었다. 겨울이라 옷도 다 두툼하고 옷에, 모자에, 목도리에 입혔다 벗겼다 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애들이어도 엄마나 아빠한테 안겨 있을 만한 녀석은 딱 한 명이라 다 하나씩 의자를 차지하고 앉았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아이들을 보며 '과연 여기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갈까'하는 두려움 섞인 의문이 들었다. 과연 몇 마디라도 주고받는 게 가능할까 싶었다.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일단 처음에는 빵으로 애들을 얌전하게 만들었다. 그다음에는 우유. 그다음에는 거래 관계. 니네도 빵과 우유를 먹었으니 이제 좀 가만히 있어라 뭐 이런. 시간이 많이 늦기도 했고 마음껏 돌아다니거나 떠들 수 없으니 애들한테는 좀 지겨웠을 거다. 아주 짧은 시간, 아주 조금의 대화를 나누긴 했다.


자리를 정리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잠깐 아이들을 바깥에서 놀게 하고 그때 또 대화를 나눴다. 애들은 물 만난 고기가 되어 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시윤이는 카페에 있을 때부터 피곤했는지 아내 허벅지에 머리를 문대며 흐느적거렸다. 밖에 나가니 괜찮아지긴 했는데, 제일 먼저 집에 가자고 한 게 시윤이었다.


"너무 추어여어. 집에 가자여어"


주차장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고 각자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우린 1시간, 그쪽은 3시간. 시윤이는 금방 잠들었고 소윤이는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며 아내와 나의 말상대가 되어줬다. 소윤이는 계속


"아빠. 오늘 너무 좋았어여. 채은이도 보고 시언이 오빠랑 시아랑 시온이도 보고. 너무 반가웠어여"

"그치?"

"이제 또 언제 볼까여?"

"그러게"


소윤아,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근처에 사는 친구보다 더 자주 보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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