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 사랑을 이긴 월요병

19.12.08(주일)

by 어깨아빠

소윤이와 시윤이가 몇 시에 일어난 건지 알기 힘든 날이 많아졌다. 자기들끼리 일찍 일어나서 엄마, 아빠는 깨우지 않고 놀기 때문에. 대신 조금이라도 아내와 나의 소리가 들리면 바로 달려와서 확인을 하기 때문에 최대한 소곤거리다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면 자는 척을 한다. 물론 이제 둘 다 보통 눈치가 아니라서 잘 속지는 않지만.


소윤이는 지난주에 아파서 딱 한 주 못 간 새싹꿈나무에 얼른, 너무 가고 싶다면서 갈망을 표현했다. 올해도 성탄절 발표회가 있어서 아침을 먹으면서 그때 해야 할 율동 동영상을 봤다. 작년 성탄절에는 '과연 소윤이가 잘 할까', '엄마랑 떨어졌다고 울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 했었는데, 이제는 나서서 율동 연습을 하겠다고 하니 격세지감이다. 4살이었던 소윤이가 그랬던 걸 생각하면 독립성(?) 면에서는 시윤이가 확실히 무던한가 보다.


교회에 가서 주보를 보는데 성탄절에 유아 세례를 하니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아이는 신청하라는 광고가 있었다.


"여보. 시윤이 세례 안 받았지?"

"아, 그런가?"

"문답 받은 기억이 없잖아"

"아, 그러게. 만 2세까지인데 괜찮나?"

"예배 끝나고 목사님한테 여쭤보자"


잠시 후


"여보. 시윤이 세례 받은 거 같은데?"

"그런가? 아, 나 작년에 아플 때"

"어, 맞아. 그때"

"맞네. 맞네"

"문답은 나 혼자 왔었고"

"왜 그랬지? 나 아파서?"

"아니야. 아픈 건 성탄절 당일이었어"

"아, 부모 교육 때문에 그랬나 보다"

"아, 그렇네. 여보. 창피할 뻔했다"

"그러게"


시윤아. 엄마, 아빠가 이렇게 정신없이 산다. 니가 세례 받은 것도 깜빡하고 말이야. 졸지에 두 번 세례 받을 뻔했네.


예배드리고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바로 다시 교회로 갔다. 시윤이는 집에 가는 길에 잠들어서 그대로 방에 눕히고 나왔다. 교회에 가서 목장 모임을 하고 다시 집으로 와서 옷을 갈아입었다. 시윤이는 깬지 얼마 안 된 모습으로 날 맞이했다.


"아빠. 어디 가따 와떠여어?"

"아빠 목장 모임하고 왔지"

"아빠. 또 어디 가여어어?"

"아빠 이제 축구하러"

"왜 우디는 안 가여어어?"

"이제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갈 수가 없어"


아내나 아이들의 상태가 힘들어 보이지는 않아서 마음 편히 집에서 나갔다.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원흥역 모처에서 장인어른, 장모님과 밥을 먹고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소윤이는 나 못지않게 땀을 흘리고 있었다. 식당 안에 있는 놀이방에서 한바탕 뛰고 난 뒤 밥을 먹으려고 막 자리에 앉았다. 시윤이도.


"으, 강시윤"

"왜? 말 안 들었어?"

"어. 징징이였어"

"왜?"

"몰라"


시윤이는 식당에서도 밥을 잘 안 먹었다. 그냥 잘 안 먹은 게 아니라 매우 불량한 태도로. 밥그릇과 수저를 진작에 빼앗겨야 마땅했지만 할머니,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꾸역꾸역 식사를 마쳤다. 시윤이는 밥 먹고 어디 갈 거냐고 계속 물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은 아니었다. "카페는 갈 거에여?" 라고 바꿔도 무방한 질문이었다. 아내와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장인어른이 매우 피곤해 하시는 게 느껴졌다. 요즘은 양가 할아버지들이 주로 그렇다. 특히 밤이 되면 더욱. 손주빨(?)이 다했나 보다. 롬이야, 화이팅.


근처 스타벅스에 잠깐 머물렀는데 시윤이는 스콘을 엄청 잘 먹었다. 보통의 스콘보다 크기가 좀 작은 미니 스콘 3개가 들어있는 걸 샀는데,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하나씩 주고 하나가 남았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의견이 갈렸다.


시윤 : 지금 다 먹어치우자

소윤 : 내일도 먹고 싶을 테니 아껴뒀다 내일도 먹자


반씩 잘라서 주고 시윤이는 오늘 먹게 하고, 소윤이는 내일 먹게 하면 될 간단한 문제였지만, 또 그렇지가 않다. 그럼 내일 분명히 시윤이가 누나의 스콘에 눈독을 들일 거다. 눈독만 들이면 다행이지만 또 생떼를 쓸지도 몰랐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컸다. 소윤이가 해결사로 나섰다.


"괜찮아. 시윤아. 지금 먹어. 내일은 누나가 또 좀 나눠 줄게"


시윤이는 탐욕스럽게 마지막 반쪽을 먹어치웠고, 소윤이는 고이고이 싸서 아내의 가방에 넣어뒀다. 소윤이는 먹을 건 정말 좋아하지만 식탐이 없고, 시윤이는 소윤이만큼 좋아하지 않지만 식탐은 많다.


집에 오니 꽤 늦은 시간이었다. 후다닥 씻겨서 아내가 데리고 들어갔다.


"나 나올 거다"


아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눈은 전혀 단호하지 않았다. 역시나 아내는 소식이 없었고 한 40분쯤 지나고 들어가서 깨웠다. 내일은 별일 없는 월요일이고 오늘 하루 종일 애들이랑 붙어 있었으니까.


"여보. 일어날 거야?"

"애들 둘 다 자?"

"어, 자지. 일어날 거면 나와"

"움ㄹㅇ;ㅓㅁ아ㅣ;ㅓㅁㅇㄹ;너"


아마 안 나오겠구나 싶었다.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깨서 나오기는 했다. 새벽 1시가 다 된 시간이긴 했지만.


집이 엄청 깨끗했다. 아내가 신경 써서 치운 게 느껴졌다. 아내는 소윤이의 공이 크다고 얘기했다. 거실에 쌓여있던 빨래를 개는데 소윤이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실제로 빨래를 개기도 했고 (따로 보수작업을 하지 않고 그대로 서랍에 넣어도 될 정도로) 무료한 집안일의 동반자로 옆에 앉아서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주는 게 정말 큰 힘이 됐다고 했다. 소윤이는 자기 전에 자기가 갠 수건을 자랑하고, 팬티를 어떻게 갰는지를 신이 나서 얘기했다.


"아빠. 저는 저만의 팬티 개는 방법이 있어여. 제꺼나 엄마, 아빠꺼는 다 여기까지는 똑같이 이렇게 접는데 엄마, 아빠꺼는 이렇게 한 번 더 접는 거에여"


과연, 이것은 5살이 되어서 가능한 걸까 아니면 맏이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런 것도 아니면 맏딸이기 때문에? 시윤이를 좀 더 키워 보면 증명이 되겠지. 시윤이의 행태는 왠지 훤히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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