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의 보상

19.12.10(화)

by 어깨아빠

여느 화요일처럼 바쁘게 아침을 보냈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최대 과업은 아침 식사. 아내의 최대 과업은 세면 및 아이들 옷 고르기. 나의 최대 과업은 아이들 식사 독촉 및 옷 입히기. 물고 물리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무사히 각자의 과업을 완수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교회에 데려다주고 역시나 오늘도 도서관으로 향했다. 미술 수업이 1시 30분부터니까 그전까지 3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 셈이다. 여유가 넘칠 것 같은 백수에게 그런 여유가 가치나 있을까 싶지만, 백수가 의외로 바쁘다. 시간 챙기기가 쉽지 않다.


처치홈스쿨은 오늘부터 종강 때까지, 약 한 달 동안 단축 수업에 들어갔다. 난방이 시원찮아서 너무 추운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점심까지만 먹고 오후 일정은 생략하기로 한 거다. 원래 미술 수업 끝나고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 시간이 딱 맞았는데, 오늘부터는 처치홈스쿨이 일찍 끝나서 시간이 어긋났다. 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차를 주고 오기에는 너무 멀었다.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금쪽같은 3시간의 여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돌려 하는 중입니다.) 아내는 같은 단지에 사는 엄마 선생님과 함께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


"여보. 어디야?"

"나? 집"

"뭐 하고 있었어?"

"난 졸고 있었어"

"애들은? 괜찮았어?"

"어. 괜찮았어"

"낮잠은?"

"둘 다 안 잤고. 내가 너무 졸려"

"얼른 갈게. 저녁은 어떻게 하지?"

"모르겠어"

"뭐 사 갈 건 없어?"

"커피랑 맛있는 빵"

"빵? 어디서?"

"뭐 달고오묘나 라본느지"

"커피는?"

"몰라. 여보가 알아서"

"저녁은?"

"여보가 오면서 생각해 봐. 아, 여보 나 너무 졸려"


아내는 혀가 꼬인 채 잠에 취한 듯 얘기했다. 금방이라도 잠들 듯한 목소리였다. 그나마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내를 심히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대화동까지 가서 [맑음케이크]를 들를까 하다가 빵도 좋고 커피도 좋지만 일단 빠른 귀가가 더 좋을 거 같아서 빠르게 동네로 향했다. 달고오묘(동네 카페, 지만 빵을 더 자주 삼)에 가서 밤 스콘, 휘낭시에, 미니 머핀(6개), 그리고 얼음을 넣지 않은 아이스 라떼를 샀다. 밤 스콘과 휘낭시에, 라떼는 아내 몫이었고, 미니 머핀은 애들 꺼였다.


집에 들어갔더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난장판이 된 거실에서 (어젯밤의 열심은 이렇게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 놀고 있었다. 비록 거실은 어질러 놨어도 둘은 사이가 좋았다. 아내는 안방에서 자고 있었다.


"아빠아. 그거늠 머에여엉?"

"이거? 머핀. 빵이야 빵. 소윤이랑 시윤이 주려고 아빠가 사 왔지"

"저거늠여?"

"아, 저건 엄마 꺼야. 엄마 일어나시면 드시라고 할 거니까 소윤이랑 시윤이는 눈독 들이지 마"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음식의 조합을 알려주는 게 재밌다. 아직 시윤이는 못 먹는 게 많고 음식의 맛을 음미하는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소윤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미역국에 밥을 말아 먹을 때 작게라도 김치를 올려준다거나, 소고기를 먹을 때 소금을 살짝 올려 먹는다거나. 오늘처럼 머핀이나 카스테라를 먹을 때는 우유를 함께 먹는다거나.


"시윤아. 우유랑 같이 먹어 봐. 엄청 맛있어"


시윤이는 몇 번 그렇게 먹더니 맛을 알았는지 나중에는 머핀을 먼저 입에 넣고도 씹지 않았다. 머핀을 입에 머금은 채로 우유를 마시고 나서야 입을 움직였다. 소윤이는 이미 예전에 깨달은 맛의 궁합이었고.


"시윤아. 맛있지?"

"아빠. 너무 마지떠여어"


머핀 6개를 소윤이 3개, 시윤이 3개 이렇게 나눠 줬는데 소윤이는 받자마자 나에게 한 개를 건넸다.


"아빠. 먹어여"

"아니야. 소윤이 먹어"

"아아, 빨리여"

"아빠 진짜 괜찮아. 소윤이 먹어도 돼"

"아빠 주고 싶어서여"


시윤이는 누나가 나눠주는 걸 보면 마치 경쟁하듯이 자기도 나눠주겠다고 하긴 한다. 다만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거나 양이 얼마 안 남았을 때는 그런 거 없다.


"시윤아. 아빠 그거 조금만 줄래?"

"안 대여어엉"

"왜 안 돼?"

"쪼곰바께 안 남아짜나여엉"


"아빠. 제 꺼 먹어여"

"아니야, 소윤아. 그냥 시윤이한테 장난쳐 본 거야"


애들이 머핀을 다 먹었을 때쯤 아내를 깨웠다. 저녁 먹을 시간이기도 했고 너무 오래 자면 두통을 비롯한 각종 부작용(?)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 아내 몫으로 사온 커피와 빵을 아내가 먹는 동안, 아이들에게 엄포를 놨다.


"엄마 껀 건들이지 마. 엄마 드시게 놔둬"


물론 아내는 혼자 다 먹지는 않았지만.


여러가지 안을 두고 논의한 끝에 애들한테는 볶음밥을 해주고 아내와 나는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모두 열심히 식사를 하고 있는데 한 명, 낮잠을 자지 않은 최연소자 한 명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래도 용케 주는 밥을 거부하지는 않고 낼름낼름 잘 받아먹기도 했고, 씹기도 열심히 씹었다. 졸긴 했지만 잠들지 않은 채 끝까지 식사를 마쳤다.


졸린 시윤이를 위해서 오늘도 서둘러 잘 채비를 갖췄다. (생각해 보니 만날천날 서두르다 볼 일 다 보겠네. 일어나서도 서두르고 자기 전에도 서두르고.) 당연히 둘 다 금방 자고 아내도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예상 밖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소윤이와 시윤이가 둘 다 안 자고 있었다. 아내를 구출했다.


"엄마. 나오세요"

"아빠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앙"


소윤이는 대성통곡을 하며 펄쩍 뛰었고 시윤이는 조용히, 자기는 아빠의 처분을 달게 받겠다는 듯 잠잠히 있었다. 슬피 우는 소윤이에게 한껏 훈계를 했다. 엄마도 힘이 남아 돌아서 너희를 재우는 게 아니다, 엄마도 피곤한데 애를 쓰는 거다, 앞으로 자꾸 이러면 엄마랑 아예 안 자게 할 거다 등등. 소윤이를 자리에 눕혀 놓고 문을 닫고 나왔다. 소파에 앉아 있던 아내가 얘기했다.


"사실 소윤이는 좀 억울해"

"왜?"

"시윤이가 자꾸 소윤이 자리로 가서 방해했거든. 그래서 못 잤거든"

"아, 그래? 소윤이는 자려고 했어?"

"응. 거의 잠들려고 할 때 시윤이가 가서 방해하고 그랬지"

"말을 해주지"

"틈이 없었어"


고민하다가 다시 방문을 열고 말했다.


"소윤아, 나와 봐"


나오라고 했더니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막 크게 울어댔다. 진정시키고 진중하게 사과를 전했다.


"소윤아. 아빠가 몰랐어. 시윤이가 방해해서 소윤이가 잘 못 잔걸. 소윤이는 자려고 노력했는데 아빠가 그걸 모르고 그랬네. 미안해 소윤아"

"네. 흑흑흑흑"


재차 소윤이에게 사과를 하고 다시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러고는 잠잠해졌다. 살다 보면 얼마든지 억울한 일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억울한 일 당한 걸 어떻게든 나서서 바로잡아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가해자(?)가 나일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빠른 인정과 빠른 사과는 부모, 자식 간에도 꼭 필요한 일이다.


강시윤이 이 모든 일의 근원이었다. 그럴 거면 졸지를 말던가. 일이 벌어지고 나니까 자기는 쏙 빠지고 말이야.


운동 갔다 와서 아내랑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영화를 봤다. 영화 다 보고 소파에서 빈둥거릴 때 아내가 휴대폰으로 이동욱이 진행하는 토크쇼 클립 영상을 보고 있었다. 난 소리만 들었는데 이동욱이랑 공유랑 대화하는 게 들렸다.


[알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인 거?]

[그럼. 안에 지방 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지]


아내랑 깔깔대며 웃었다. 웃음 안에 묘한 자괴감, 괴리감, 비참함 같은 게 느껴졌다.


여보, 괜찮아. 우리 오늘 하루도 수고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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