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때마다 울음 바다

19.12.12(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일어나자마자 청소기도 돌리고 막바지 집안 치우기에 열중했다. 나도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힘을 보태다가 나왔다.


"여보. 꼭 쫓겨나는 느낌이네"


어디 갈 데가 있는 건 아니었다. 카페에 있었다. 어쩌다 보니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다. 기도 모임이 끝난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 이제 다들 가셨어"

"잘 했어?"

"어, 그런데 집이..."

"왜? 엄청 더러워졌어?"

"응. 순식간에"

"어쩔 수 없지 뭐"

"여보는 천천히 와"

"이제 들어가야지"

"와 봐야 일이나 하는데 뭐. 좀 더 있다가 와. 집은 내가 깨끗이 치워 놓을 게"

"알았어"

"이따 쳐들어 갈지도 모른다"

"나올 거야? 그럼 나 계속 기다릴까?"

"일단 집 좀 치우고"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운을 풍겼기 때문에 일단 좀 기다렸다.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목소리에 짜증이 가득했다.


"아,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

"왜, 누구?"

"강소윤"

"왜?"

"뭐만 하면 징징거려. 계속 울고. 하아, 진짜 짜증 나 죽겠네"

"시윤이는 괜찮아?"

"어, 소윤이가"

"안 나올 거지?"

"쟤가 저래서 어딜 나가겠어"

"알았어. 얼른 들어갈게"


집으로 가고 있는데 소윤이한테 전화가 왔다. 울면서.


"아빠아"

"어. 소윤아"

"어디에여어?"

"집에 가고 있어. 금방 갈 거야"

"얼른 와여. 보고 싶어여어"

"알았어. 금방 갈게. 울지 말고"

"네"


소윤이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안겼다. 할머니랑 통화하다가 내일 만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결론적으로 안 만나게 됐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울음이 시작돼서 사사건건 그치지 않았다는 게 아내의 말이었다. 생각했던 것만큼 파국(?)은 아니었다. 아내도 어느 정도 감정이 가라앉은 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냥 빈정이 상한 정도였던 건지 모르지만, 아무튼 최악은 아니었다.


시윤이는 엄마와 누나 사이에 흐르는 냉기류를 느끼고 몸을 사렸다. 장난은 치되 선은 넘지 않았고, 끊임없는 웃음과 애교로 차가운 공기를 데우기 위해 노력했다. 시윤이의 노력 덕분이었을까. 아내와 소윤이는 금방 정상 궤도로 복귀했다.


오늘도 시윤이가 낮잠을 안 잤기 때문에 저녁 식사를 빠르게 진행했다. 저번처럼 밥 먹다 졸지 않도록. 장모님이 사 주신 고기가 있어서 그걸 구웠는데 어쩌다보니 풍성한 고기 만찬이 됐다.


하루 종일 카페에 있다 왔는데도 피곤했다. 저녁 먹고 소윤이는 편지를 쓰고, 시윤이는 편지를 쓰는 누나를 따라 그림(낙서라기에도 뭐 한 그냥 펜놀림)을 그렸다. 내일 처치홈스쿨에서 생일 예배를 드리는데 그 주인공에게 준다고 했다. 아이들이 내 옆에서 열심히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난 소파에서 잤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꿀맛이었다.


소윤이의 글쓰기, 그림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다. 날 닮아서 그림에는 영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보면 또 나만큼 똥손은 아닌 거 같기도 하다. 소윤이는 자랑스럽게 자기가 그린 그림과 편지를 보여줬다.


"아빠. 엄청 잘 그렸져?"

"그러게. 생일 케이크네? 하성이가 엄청 좋아하겠네"


애들을 씻기려고 눈을 떴는데 아내가 비밀스럽게 얘기했다.


"여보. 나 나갔다 와도 돼?"

"어디?"

"그냥. 아무 데나"

"그래"


소윤이와 시윤이에게는 미리 얘기를 해놨다.


"오늘은 아빠랑 잘 거야. 앞으로는 당분간 계속 아빠랑 잘 거야. 너희가 엄마랑 자든 아빠랑 자든 신경 안 쓰고, 자러 들어가면 바로바로 잘 때까지. 알았지?"

"네"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한 소윤이는 막상 아내와 헤어지고(?) 방에 들어가려고 하자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짜증이 좀 났다. 한두 번도 아니고 잘 때마다 그게 뭐 큰일이라고 우나 싶었다. 아내가 같은 방에서 안 자는 것도 아니고, 자기들끼리 들어가서 자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당분간 우리 집(혹은 아내와 나의) 가장 큰 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시윤이는 조용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순순히 절차에 순종했다. 소윤이는 방에 들어가자 엄마와 함께하지 못하는 서글픔을 나에게 대신 풀었다.


"아빠. 사랑해여"

"아빠. 뽀뽀하고 잘게여"

"아빠. 내 옆에 와서 누워여"


시윤이는 누나가 나한테 와서 뽀뽀하면 그대로 따라와서 뽀뽀하고, 누나가 사랑한다고 하면 따라서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그랬다. 지금은 막내지만 곧 끼인 둘째가 될 시윤이에게 응원과 격려를.


소윤이와 시윤이는 엄청 금방 잠들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잘 거면서 뭘 맨날 울고 그러나. 속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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