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운 당신

19.12.13(금)

by 어깨아빠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데려다주고 난 근처 카페에 있었다. 오후에 잠시 어디를 가야 했는데 아내와 아이들도 거기 함께 갔다가 밤에는 철야 예배에 가기로 했다.


"여보. 오늘 하루가 길겠는데?"

"그러게"


아침에 집을 나서며 고된 하루를 예상했다.


처치홈스쿨을 마친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다. 단축 수업을 하고 있어서 낮잠은 자지 않고 마친 거다. 거기서 다음 장소까지 한 30분 정도 거리였다.


"소윤아, 시윤아. 오늘 밤에 교회 가기로 했지? 그럼 지금 낮잠 좀 자야 돼. 알지?"


시윤이는 이렇게 얘기하면 재깍 눈을 꽉 감고 자는 시늉이라도 한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그렇게 하면 금방 잠들기도 하고. 반면에 소윤이는 겉으로는 대답도 하고 자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눈도 감긴 하지만 마음 없는 행위에 그칠 때도 많다. 잘 생각은 없지만 엄마, 아빠가 자라고 하니까 일단 눈은 감아보는 뭐 그런. 정말 안 졸릴 때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 시간이면 안 졸리기가 힘들다.


소윤이는 결국 잠들지 않은 채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오늘 같은 날은 낮잠을 재워 놓지 않으면 교회에 가서 아내가 너무 힘들기 때문에 꼭 재우고 싶었다.


"소윤아. 들어가면 조그만 방도 하나 있대. 그럼 거기서 자. 꼭 자. 이번에는. 알았지?"

"네"


시윤이는 아직 자는 중이라 아내는 차에 남았고 나랑 소윤이만 내렸다. 시윤이가 깨서 올 때까지 소윤이는 나랑 있었다. 아내와 시윤이가 왔고 소윤이와 함께 한쪽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소윤아. 이제 여기서 엄마랑 한숨 자. 알았지?"

"싫은데"

"싫긴 뭘 싫어. 오늘 교회 갈 거라며. 그럼 낮잠 자야지. 그래야 예배도 잘 드리고 졸리다고 땡깡도 안 피우고. 얼른 자?"

"네"


마지못해 대답하는 소윤이의 모습에서 불길한 예감이 들긴 했다.


"여보는 괜찮아? 안 힘들어?"

"어. 괜찮아"


아내와 아이들은 방에 남기고 난 나왔다. 같은 공간이긴 했지만 문과 벽으로 구분된 곳이라 자세한 상황을 알기는 어려웠다. 카톡으로 아내와 상황을 나눴다.


[여보. 아직도?]

[응. 안 잠]


다시 한번 문을 열고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얼른 자라고 했지. 아빠랑 약속 안 지켜? 밤에도 그렇고 낮에도 그렇고 왜 그렇게 잘 때마다 힘들게 해"


시간이 좀 지나고 다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답이 없었다. 아내도 함께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방바닥이 뜨근하니 잠들기 딱 좋았다.


차를 좀 빼달라는 연락이 와서 시윤이를 데리고 잠시 차를 빼러 갔는데 그때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여보. 어디야?"

"어, 나 차 빼주러"

"소윤이 깼어"

"어? 벌써?"

"어"

"얼마나 잔 거지?"

"몰라. 한 10분 잤나"


소윤이가 얄미웠다. 그냥 좀 자라면 눈 감고 푹 자면 될 것을. 바득바득 안 자려고 버티는지. 잠도 안 잤으면서 (내 말은 듣지도 않으면서) 좋다고 히죽거리고 장난치는 게 뭔가 보기 싫었다. 자꾸 심술이 튀어나와서 몇 번은 소윤이를 향했는데, 내 나름대로는 잘 참았다.


"소윤아. 대신 이따가 교회에 가서 졸리다고 짜증 내거나 엄마한테 매달리거나 그러지 마. 엄마 옆에 앉지 말고.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얌전히 앉아서 예배 잘 드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잘 아는 동네가 아니라서 쉽게 정하지 못했다. 가성비가 좋은 중국집에 있다고 하길래 갔는데 제법 괜찮았다. 대학교 근처라 싸고 양이 많았다. 맛도 있었고. 소윤이는 짜장면, 시윤이는 탕수육을 엄청 먹었다. 진짜 많이, 열심히 먹었다.


"아빠. 짜장 양념이 너무 맛있어여"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다 먹었다면서 숟가락을 내려놨다가 다시 들었다.


"왜? 다 먹었다며?"

"아, 배가 부르긴 한데 너무 맛있어서 또 먹고 싶어서여"

"아빠. 나두 또 머꼬 지퍼여어"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교회에 가기 위해 다시 차에 탔을 때 아내가 탄식하듯 얘기했다.


"여보. 힘들다"

"그치? 괜찮겠어?"

"어, 괜찮아. 그런데 힘들어. 아직 많이 남았네?"

"그러게. 아침부터"


소윤이는 설교 중간쯤에 잠들었고 시윤이는 내가 드럼 치느라 옆에 없을 때는 아내한테만 달라붙어서 아내를 힘들게 하더니, 내가 옆에 앉고 나에게 안겼을 때는 비교적 얌전했다. 아내의 표정에서 분노, 짜증, 예민 이런 건 전혀 읽히지 않았지만 딱 하나, 힘듦은 여실히 드러났다.


소윤이는 예배가 끝나고 차에 태울 때, 집에 도착해서 차에서 내릴 때도 깨지 않다가 방에 눕혔더니 살짝 깼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기는 잠옷을 입어야 한다면서 순식간에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쏟아냈다. 얄미웠다.


"강소윤. 그러게 아빠가 아까 낮잠 자라고 했지. 어디서 짜증이야. 그냥 자"


잠옷이야 뭐 갈아입혀서 나쁠 건 없지만 그냥 얄미웠다. 피곤해 죽겠는데 난데없이 일어나서 짜증을 내니까 나도 짜증이 났고. 요 며칠간 눈물 없이 잠든 날이 있었는가 싶었다. 덕분에 시윤이도 잠에서 깼는데 조용히 눈알만 굴리고 있었다.


"강시윤. 손가락 빼"


바로 엄지손가락을 입에서 뺐다.


"눈 감고"


눈도 꽉 감고.


"이제 자"


썩 바람직한 대응은 아니었다. 이미 감정의 평정을 잃은 상태라 그랬다. 얄미운 강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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