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15(주일)
내가 눈을 떴을 때(매우 늦은 시간) 이미 아내는 아이들의 아침 식사를 다 준비해 놨다. 아직 먹기 전이었다.
"여보. 내가 애들 먹일게"
바닥에 앉혀놓고 직접 떠서 먹여줬다. 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었다. 밥 먹이면서 동시에 옷도 갈아입혔다. 남편의 늦은 기상 덕분에 아내도 뒤늦게 준비를 시작했다.
부리나케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다. 새싹꿈나무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는 아내 손을 잡고 식당으로 왔다. 오늘은 내가 식당에 가서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앉혀서 밥을 먹이는데 소윤이와 같은 나이인 여자아이가 소윤이 곁으로 왔다. 함께 새싹꿈나무 예배도 드리고 평소에 간식도 잘 나눠주던 친구인데 오늘은 엄마가 식당 봉사 당번이라 혼자 있는 듯했다. 일단 함께 자리에 앉혔다.
"00아 밥 먹을래?"
"(휘이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배 안 고파? 안 먹어되겠어?"
"(끄덕끄덕)"
그 아이가 과자를 한 봉지 들고 있었다. 시윤이는 그걸 보더니 연기를 시작했다.
"누나. 이거 매움 거야? 이거 빠쭈 함머니 집에더 먹어 본 거 튼데?"
매운맛이 아닌 것도 알고, 파주 할머니 집에서 먹어본 것도 확실히 기억하면서. 먹고 싶으면 그냥 먹고 싶은데 좀 주면 안 되냐고 물어볼 것이지. 빙빙 돌리긴. 시윤이가 가장 먼저 식사를 마쳤고, 두 누나는 아직 한참 남았길래 먼저 시윤이만 데리고 로비로 나갔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잘 놀던 시윤이가 갑자기 나에게 물었다.
"아빠아. 우디 이제 어디 가꺼에여엉?"
"어디 가냐고?"
"네"
"집에 가야지"
"집에?"
"응"
"낮잠 자꺼에여엉?"
"낮잠 자야지"
"아 시더여엉"
"뭘 싫어. 갑자기. 낮잠은 당연히 자야지"
"안 자꺼에여엉"
그러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뜬금없이. 이제 시윤이도 슬슬 낮잠 자기 싫은 시기가 오나 보다. 물론 아직까지는 가끔씩 오늘처럼 울기만 하고 막상 자는 건 순순히 자긴 한다. 우는 시윤이를 안아서 달래다가 다시 엄마와 누나들이 있는 식당으로 갔다. 거기에는 시윤이를 위한 (아까 시윤이가 탐내던) 과자가 담긴 종이컵이 있었다.
"시윤아. 이거 먹을까?"
"네"
눈에 눈물이 맺힌 채 과자를 먹었다.
"시윤아. 낮잠 잘 거지?"
"네"
식사를 마치고 나온 소윤이는 카페에 가고 싶다면서 약간 떼를 썼다. 아빠가 목장 모임이 있어서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는데도 무시하고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장난으로 시작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진지로 넘어가서 수습이 안 될 때. 소윤이가 약간 그랬다. 다행히 진지의 영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가까스로 멈췄다.
자기 싫다던 시윤이는 집으로 가는 길에 잠들었다. 시윤이만 방에 눕혀 놓고 나왔다. 난 축구할 때 필요한 짐까지 챙겨서 집을 나섰다.
"여보. 갔다 올게. 화이팅"
"그래. 잘 갔다 와"
목장 모임을 마치고 축구장에 갔을 때 전화를 걸었다. 상황 파악차.
"여보. 괜찮아?"
"어. 괜찮아"
"애들도 잘 놀고?"
"어. 잘 놀고 있어. 지금은 하람이 잠깐 놀러왔어"
"알았어"
505호 사모님이 놀러 와서 그런 건지 아내의 목소리에 예상을 뛰어넘는 활력이 배어 있었다. 안심하고 축구를 즐겼다.
축구를 마치고 아내에게 전화했다.
"허어. 여보. 어디야?"
"이제 끝나고 가려고. 여보는 집이지?"
"집이지. 얼른 와"
"왜?"
"그냥"
아까보다는 힘에 부치는 목소리였다. 그래도 어두운 기색이 느껴지거나 곧 쓰러질 듯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서둘러 집에 갔더니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뭐야?"
"김치찌개 끓였어"
"애들은?"
"애들은 먼저 먹였어.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여보가 소윤이랑 시윤이 씻겨줘. 그럼 내가 애들 데리고 가서 재울게. 그 사이에 여보는 씻고 나와. 그러면 우리 저녁 먹으면 돼"
[난 애들 씻기고 - 아내는 애들 재우고 - 나 씻고 - 아내 나오면 같이 저녁식사]
이런 얘기였다. 아내의 말대로 진행했다. 씻고 나왔는데도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기다리는데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여보. 시윤이 안 자. 아무래도 나가야 할 듯. 상 다 차리면 카톡 줘요]
[오케이]
먹기만 하면 되는 상태로 상을 차리고 카톡을 보냈다.
[준비 끝]
아내가 나오려고 폼을 잡았는지 시윤이의 거친 울음소리가 먼저 들렸다. 나가려는 아내의 뒤꽁무니에 붙어서 시윤이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시윤아. 괜찮아. 시윤이가 뭐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야. 혼자 잘 수 있지? 엄마, 아빠도 이제 밥 먹어야 해서 그런 거야. 얼른 자?"
"으아아아아아아아앙"
시윤이는 좀 안아서 토닥여 주고 그랬더니 괜찮아졌는데 시윤이의 울음에 잠들었던 소윤이도 깼다. 울음에 합류했다. 하아. 매일 밤마다 진짜, 인내심 측정도 아니고. 하루 종일 고생하고(물론 오늘 같은 경우는, 난 아니지만) 그저 저녁 먹고 좀 쉬겠다는데 왜 맨날 난리냐고 난리가. 의정부 306 보충대에서 부모, 연인과 이별하는 입영 장정도 그렇게 서럽게 울지는 않았다. 이러면 나나 아내는 크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뭔가 죄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말 크게 잘못한 게 없다. 우는 아이를 떼어놓고 오는 그 행위 자체가 주는 떨떠름한 그 기분이 너무 싫다. 그러니까 이제 좀 그만 울고 즐겁게 잤으면 좋겠다.
자꾸 엄마를 볼모로 잡으려고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