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아무나 하나

19.12.19(목)

by 어깨아빠

감사하게도 소윤이는 어젯밤의 격렬한 시간을 모두 잊은 듯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정했다. 자신 있으면서도 자신 없다. 육아는 늘 이런 식이다. 아이를 향한 건전한(완전한이 아니라는 걸 주의하자) 사랑이 있으면 어느 정도의 실책이나 부족함은 상쇄된다는 믿음. 혹은 자신감. 그와 반대로 이래도 되나 싶은 순간의 연속인 현실에서 밀려오는 불안과 염려 사이의 끝없는 다툼이다.


홈스쿨을 한다고 하면 (정확하게는 '처치'홈스쿨이고, 우리는 '처치'에 집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홈스쿨'에 눈길을 둔다.) 많이들 걱정한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속내가 느껴지는 경우도 많고. 가장 큰 오해를 받는 게 너무 싸고도는 거 아니냐, 부모가 그렇게 기를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좀 자유롭게 해라 등등이다. 맞게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아내와 나는 부모가 되면 주어지는 권력을 포기하려고 치열하게 사는 중인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내도 나도 부족하고, 앞으로도 늘 부족할 테니까. 그렇다고 아무런 기준도 없이 그냥 친구 따라 무조건 강남가면 된다고 가르치면 안 되니까. 친구가 강남에 가도 강북에 가야 할때는 강북에 가야하니까. 지금은 그걸 가르치는 과정일 테고. 매일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정한 방향은 그렇다.


그러니까 늘 고민하고 염려하고, 후회하고, 걱정하고, 곱씹고, 복기하고, 다짐하고 그러는 거다. 오늘처럼 소윤이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나를 부모로 인정해 줄 때, 그게 그렇게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고맙고.


내 의도가 아무리 선하고 옳았어도, 전해지는 과정에서는 얼마든지 어그러질 수 있다. 나에게 안긴 소윤이를 붙잡고 급하게 어제의 일을 다시 꺼냈다.


"소윤아. 어제 많이 속상했어?"

"네"

"그래도 엄마, 아빠가 왜 그렇게 했는지 알지?"

"네, 그럼여"

"괜찮아?"

"네. 괜찮아여"


그러더니 몇 분 뒤에 뜬금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아빠. 어제 잘 때는 내일 일어나면 엄마한테 엄청 많이 안아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막상 일어나니까 괜찮아졌네여?"


그래. 사람 마음이란 게 다 그런 건데 아빠도 그걸 잘 못 참아. 넌 빨리 깨닫길.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기도 모임이 있었는데 장소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다른 집이었다. 심지어 같은 동. 아내는 아무런 부담 없이 아침 시간을 보냈다. 집에는 처음 가는 거라 아침에 과일을 사러 갔다 온다고 어젯밤에 얘기했는데, 아내는 아침에 늦잠을 잤다. 내가 딸기를 사러 나갔다 왔다.


아내와 아이들을 내 머리 위로 떠나보내고 집에 남아서 하루 종일 영상과 씨름했다. 처치홈스쿨 종강 예배 때 필요한 영상을 내가 만들기로 했다. 정말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헐리우드 영화 CG 기술자들이 왜 그렇게 큰돈을 받는지 조금은 알게 됐다. 놀라운 건 아내와 아이들도 하루 종일 들어오지 않았다. 기도 모임을 마친 뒤 근처 중국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더니, 밥을 먹고 난 후에는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에 간다고 했다. 시간이 갈수록 집에서 멀어졌다. 결국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 정규 모임이 있는 날보다 더 늦게 집에 돌아왔다. 그 덕에 난 할 일에 원 없이 집중했다.


아내는 집에 돌아와서 이렇게 얘기했다.


"집에 여보만 있으니까 어질러질 일이 없구나"


맞는 말이긴 했지만, 또 완전히 맞는 건 아니었다. 요즘 집이 굉장히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아내도 나도 매우 만족하고 있고. 아내의 부단한 노력 덕분이다. 그걸 조금이라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아서 알아서 기고 있는 중이다. 단 한 명이라도 인간이 존재하는 이상 그곳이 어디든, 그 공간은 청결과 질서를 상실한다. 치우지 않으면.


나는 존재한다. 고로 어지른다.


애들은 오늘도 내가 재웠다.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어쨌든 아내는 좋을 거 같다. 재우는데 쓰는 힘만 줄여도 얻는 체력과 시간이 꽤 많으니까. 하루 종일 집에 있었던 나 놈은 뭐가 그리도 피곤했을까. 정말 간만에 애들 재우다 잠들었다. 다행히 아내가 중간에 깨워줬다.


"여보. 어디 나갔다 오게?"


아내가 나에게서 어떤 기운을 느꼈나 보다.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렇게 물어봤다. 바깥공기가 그리웠다. 하루 종일 한 번도 안 나갔더니. 나갈까 말까 고민하던 차였다. 아내가 내일 처치홈스쿨 반찬으로 강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지만 오늘은 나가는 게 나아 보였다. (아내가 나에게 시켰다는 말은 아니다. 나 혼자 부담을 느낄 뿐이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아내에게 넘기고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갔을 때 아내의 첫마디는 이거였다.


"하아. 강된장, 힘들었어"

"그치? 고생했어"


아이를 향한 건전한 사랑이 어디 그럴싸한 철학적인 사고나 깊은 생각에서만 나오는 건 아니다. 아무리 물고 빨고 사랑을 말해도 결국 사랑은 실천이다. 갖은 채소를 채 써는 동안, 그걸 무를 때까지 볶는 동안, 자정이 넘도록 불앞에 서서 내일의 양식을 준비하는 그 모든 시간 속에, 부모의 사랑이 배는 거다.


그래서 사랑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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