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0(금)
난 광화문에 나갈 일이 있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에 가는 날이었다. 난 오후 일정이라 여유를 부려도 됐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세 명, 정확히는 혼자 유독 바쁠 수밖에 없는 아내를 외면하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도 요즘에는 긴장이 좀 풀려서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서 움직이는 경우가 허다하다.
늦게나마 일어나서 애들 옷을 입히고 나갈 준비를 맡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여기며 움직였다. 아내는 매우 정갈하게 나의 아침 상을 차려주고 나갔다. 밥, 강된장, 순무, 김. 아내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 바쁜 와중에 자그마한 쟁반에 예쁘장하게 담아 놓고 나간 게 퍽 고마웠다.
광화문에서 오후를 다 보냈다. 집에 돌아가면 한 시간 정도 머물다가 다시 교회에 가야 할 시간이라 좀 고민이 됐다. 바로 교회 근처로 가서 시간을 보내다 금요철야예배를 드릴까도 생각했다. 좀 비효율적인 것 같아도 일단 집에 가기로 했다. 왠지 모를 헛헛한 마음에 잠깐이라도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보고 싶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처치홈스쿨을 마치고 이케아에 들렀다가 자연드림에도 들렀다 온다고 했다. 내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 한 5분쯤 있다가 들어왔다.
"아빠 어디찌?"
문을 열자마자 나를 찾아주는 시윤이의 목소리가 참 반가웠다.
"짜잔"
"아빠아"
"강시윤. 아빠 보고 싶었어, 안 보고 싶었어"
"보ㄱ..안 보고 시퍼떠여어"
"뭐어?"
시윤이는 요즘 이런 장난을 즐긴다. 소윤이는 내가 장난을 걸 때도 조심스럽다. 내 예상보다 훨씬 이른 지점에서 진지함의 영역으로 진입하니까. 그만큼 나나 아내의 감정을 꽤 세심하게 살핀다. 본인의 장난이 어미, 아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면서. 시윤이는 그런 거 없다. 그냥 직진이다. 롬이가 나오면 조금 더 명확해지겠지. 이게 성별의 문제인지, 순서의 문제인지, 아니면 그냥 창조주 마음대로인지. 어쨌든 잠깐이라도 들러서 얼굴 보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교회에 갔다.
소윤이와 시윤이 모두 낮잠을 자지 않아서 자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듯했다. 아내가 애들 못지않게 졸려 보이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드럼 반주를 마치고 아내에게 문자를 했더니 조금 전에 나왔다는 답장이 왔다. 재우러 들어간지는 한 시간 정도 지났고, 아내도 잠들었다가 나온 거라고 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사정을 들어보니 애들을 재우기 전에 집을 치울까 말까 엄청 고민을 했다고 했다. 단순히 집을 치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순간의 귀찮음을 극복하고 매우 깨끗한 상태로 다시 되돌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조금 포기하고 혼돈의 거실을 받아들일 것인지의 기로였다. 아내는 청소기를 집어 들었다. 위이이잉. 위이이이잉. 덕분에 우리 집은 아직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자려고 누웠는데 아내가 갑자기 얘기했다.
"여보. 가위바위보"
"응? 왜?"
"내일 누가 일찍 일어날지"
"뭐야. 여보 자. 내가 일어날게"
"진짜? 그래. 그럼 나 안 일어난다?"
"알았어"
작년 이맘때만 해도 애들이 막 새벽같이 일어나고 그래서 무척 힘들었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적어도 8시(그것도 애들만. 아내와 나는 한 시간 정도 더 자거나 자는 척한다)는 넘겨주니 살만하다. 게다가 요즘은 거의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난다. 가위바위보 했다가 져서 실리도 명예도 모두 잃느니 멋있는 척이라도 한 번 하는 게 낫다. (또 애들이 누굴 깨울지는 아침이 돼 봐야 아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