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2(주일)
"아빠아. 왜 띠간(시간)이 없떠여엉?"
"어. 아빠가 늦게 일어나서"
나의 늦은 기상으로 인해 시간이 많이 촉박했지만 그만큼 서두른 덕분에 많이 늦지는 않았다.(고 말하지만 원래 예배 시작 시간이 아닌 다른 '늦은' 날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그렇다는 걸 밝혀둔다.)
예배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는 각자 머랭 쿠키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스타벅스의 그란데 잔 정도 되는 플라스틱 용기에 가득 담겨 있었다. 곧 성탄절이니 선물로 준 듯했다. 작년에도 성탄절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날이었는지 머랭 쿠키를 받아왔던 적이 있었다. 우리 집 찬장에 아직 그대로 보관(혹은 방치)중이고.
"누가 이런 거 만드시는 분이 계시나?"
"그런가?"
내가(혹은 아내가) 불량한 식품을 줄 때는 별로 거리끼지 않으면서 남이 주면 괜히 더 신경을 쓴다. 성경에서 '네 눈의 들보는 왜 보지 못하냐'라고 책망한 건 다 이유가 있다. 애들이 말 안 해도 괜히 불을 지펴서 간식 사고 그러는 게 누구(나)인데.
시윤이는 처음 접하는 (작년에는 받아서 먹였는지 안 먹였는지 모르겠다. 아마 안 먹였을 거고 설령 먹었다고 해도 기억에 없겠지) 머랭 쿠키에 큰 관심을 보였다. 표현은 관심이지만 실상은 집착과 떼.
"엄마아. 이거 언제 먹어여엉?"
"엄마아. 이거 빠이 먹고 지퍼어여어엉"
점심을 먹고 나서 아내가 다섯 개를 허락했다. 시윤이는 만족하지 못했다.
"아 시더여어엉. 많이이이잉. 많이이이잉"
"시윤아. 그럴 거면 아예 먹지 마. 다섯 개 준 것도 감사해야지. 어디서 떼를"
그러고 보니 시윤이는 오늘도 아침부터 아내랑 한바탕 했다. 길고 진한 훈육의 시간을 보냈다. 내년이 걱정이다. 조금 더 머리가 크고 말을 잘 하면 얼마나 더 고집이 세질지. 얼른 지나고 소윤이처럼 됐으면 좋겠다.
아무리 고집을 부려 봐야 시윤이에게는 내밀 카드가 없다. 머랭은 아내가 쥐고 있으니까. 울며 겨자 먹기로 다섯 개라도 감사히 먹는 쪽을 택했다. 현명하게도.
밥 다 먹고 교회 로비에 나갔더니 평소에도 먹을 걸 후하게 나눠주는 소윤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가 오늘도 이것저것 나눔을 하고 있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몇 개 얻어먹었다. 그러고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보아하니 조금이라도 더 얻어먹을 게 있나 살피는 눈치였다. 그래도 염치는 있는지 대놓고 더 달라고 말은 못 하고 괜히 곁에 머물며 이런저런 대화를 시도했다. 그 와중에 소윤이는 받은 걸 비축했다. 시윤이는 당연히 그 자리에서 축냈고.
저녁에 성탄 발표회가 있었고 그보다 이른 시간에는 애들 연습이 있었다. 또 그보다 이른 시간에는 내 목장 모임이 있었고. 원래 교회에 계속 머물까 하다가 그럼 아내가 아이들과 교회에 체류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내가 목장 모임 하는 동안 아내는 애들을 데리고 집에 갔다 오기로 했다. 애들 낮잠도 재우고.
"여보. 애들은 잘 잤어?"
"시윤이는 자고. 소윤이는 안 자고"
"소윤이는 안 잤어?"
"어. 누워 있기만 했어"
"여보는? 괜찮았어?"
"응. 뭐 그럭저럭"
잠시 후 아내와 아이들이 다시 교회로 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곧바로 새싹꿈나무 연습에 보내고 아내와 나는 잠시 동안 자유를 얻었다. 작년에는 이런 작은 자유에도 무척 행복했던 거 같은데 올해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 걸 보면 많이 편해지긴 했나 보다. 그렇긴 하다. 난 요즘 시기를 이렇게 여기고 있다. 폭풍전야. 롬이가 태어나기 전에 누리는 마지막 평화. 너무 비장한가 싶지만 각오를 해야 한다. 롬이가 셋째니까 아내와 나의 피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상황이 많겠지만, 그래도 애는 애니까. 그리고 우린 과거보다 늙었으니까.
소윤이와 시윤이의 성탄 공연을 보기 위해서 양쪽 할머니, 할아버지와 평소에 소윤이를 많이 예뻐해 주시는 장모님의 친구분도 오셨다. 발표회 시간이 다가오고 소윤이와 시윤이도 친구들과 함께 순서를 기다렸다.
아까 새싹꿈나무 예배가 끝나서 애들을 데리러 갔을 때 소윤이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아버님. 이따가 혹시 시윤이도 올라가나요?"
"아, 그러려고요"
"아니 소윤이가 자꾸 시윤이 신경 쓰느라 율동을 못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그럼 제가 소윤이한테 얘기할게요"
"네네. 잘 하는데 동생 신경 쓰느라 아무것도 못해서"
사실 어제 연습 때도 약간 그런 모습이 보였다. 말할까 하다가 알아서 하겠지 싶었는데 아마 점점 과해지지 않았나 싶다.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동생을 신경 쓰고 보살펴 주는 건 너무 잘 하는 행동이 맞지만, 오늘만큼은 시윤이가 어떻게 하든 신경 안 써도 된다고. 몇 번을 말했던 게 효과가 있었는지 소윤이는 자기 노래와 율동에 집중했다.
안타깝게도 시윤이는 어제 연습 때의 선전하고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뭔가 기분이 안 좋은지 표정이 뾰로통했다. 무대 위에 선 내내. 아주 막판에 조금씩 율동을 따라 하기도 했는데 그마저도 꼭 억지로 하는 애처럼 울상이었다. 소윤이도 이제 좀 컸다고 작년처럼 뭔가 버둥거리는 유아의 미가 사라져서 오히려 동년배를 기준으로는 평이한 수준(?)의 가무였다. 본편 만한 속편 없다더니. 그래도 열심히 찍어댔다. 내 눈에는 둘 다 연예인이었으니까.
순서를 마친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러 가서 시윤이에게 물었다.
"시윤아. 기분이 안 좋았어?"
"네"
"왜?"
"엄마, 아빠가 없떠더여엉"
"그랬어?"
"네에"
발표회를 마치고 나서 다 함께 저녁도 먹고 카페도 갔다. 장모님의 친구분과 나의 부모님은 아내와 나의 결혼식 때나 소윤이 첫 생일 때 스치듯 마주한 적은 있어도 함께 식사를 한 건 처음이었다. 어른들 사이에 흐를 수 있는 어색함과 정적을 소윤이와 시윤이가 다 가려준 건지, 아니면 살 만큼 사신 어른들의 능숙함 덕분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와 나는 이 상황이 뭔가 웃기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그랬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오늘도 아내와 나는 그로기 상태였다. 다행히(?) 애들도 체력이 많이 남지 않았긴 했지만 아내의 체력이 그보다 더 없어 보였다.
"여보. 진짜 피곤하다"
"그러게"
당연히 애들과 함께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시간이 좀 지나서 깨우러 들어갔는데 아내는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여보. 안 잤어?"
"살짝 잠들었다가 깼어"
"계속 드라마 봤어?"
"그냥 끝에 조금"
"애들은 금방 잤어?"
"생각보다는 금방 잤네"
"시윤이는 낮잠도 잤는데 의외네"
"나름 피곤했나 봐"
드라마 시청을 마친 아내는 다시 거실로 진출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견딜 수 없는 피곤함을 느끼고 다시 방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