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아이스크림

19.12.26(목)

by 어깨아빠

원래 화요일인 미술 수업이 오늘로 미뤄졌다. 그동안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처치홈스쿨 가는 시간과 겹쳐서 조금의 죄책감(?)도 없었는데, 돈을 벌어와도 시원찮을 판에 한가롭게 그림이나 그리러 가는 게 왠지 미안했다. 모두에게. 그 와중에 지난 시간에 완성하지 못한 그림을 그린답시고 방에 앉아 그림도 그렸고. (사실은 어제 산 색연필을 너무 써보고 싶었...)


2시간 30분 동안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바로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뭐해? 애들은? 잘 있었어? 여보는 괜찮고?"


다행히 아내와 아이들은 무사했다. 큰 파도와 풍랑 없는 오후를 보낸 듯했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이케아에 가기로 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아기 의자를 쓰고 있는데 그건 애들 스스로 앉고 내리는 걸 못한다. 반드시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그 도움이라는 게 다른 방법은 없고 그들의 다리가 의자보다 높은 위치에 올라오도록 몸을 번쩍 들어 올려야 한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신음 소리가 절로 새어 나온다. 길이와 무게 모두 버거워진 소윤이를 앉힐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봐야 하루에 세 번 (그 외의 이용을 포함해도 4-5번)인데 뭐가 그리 힘드나고 할는지도 모르지만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연유로 아기 의자 한 개는 롬이를 위해 남겨두고 한 개는 처분하기로 했다. 그럼 대체 의자가 필요하니 그걸 사러 가기로 한 거다. 지금 쓰고 있는 아기 의자도 이케아에서 매우 저렴하게 샀다. 이번에도 적당한 가격대 (너무 비싸지 않은)의 플라스틱 의자를 사려고 했다.


소윤이는 다른 이유로 이케아 방문에 들떠 있었다. 지난번에 아내와 이케아에 갔을 때 자기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사 와서 많이 상심했으며, 다음 방문 때는 꼭꼭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어야 한다는 계약(?) 때문이었다.


"아빠. 오늘은 꼭 초코 아이스크림 사야된다여"

"엄마. 잊지 말아여. 알았져?"


가는 동안 잊을 틈이 없도록 계속 얘기했다.


저녁도 이케아에서 먹기로 했다. 동네에서 꼬마 김밥을 사서 갔다. 이케아 식당에서 파는 것도 몇 개 사서 같이 먹었다. 아내에게 음식 선택의 권한 (혹은 책임)을 모두 넘겼다.


"여보. 너무 많이 시켰나?"

"글쎄?"


난 오히려 '한두 개 더 시켜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내는 정반대였다. 오늘도 모두 배가 고팠다. 아내와 나는 이케아 가는 차 안에서 이미 꼬마 김밥을 두 개씩 먹었다.


"엄마. 우리도 김밥 먹고 싶어여"

"안 돼. 차 안에서는"

"왜여?"

"뭘 왜야. 차 안에서 너희는 원래 음식 먹으면 안 되잖아"

"엄마랑 아빠는 왜 먹어여?"

"배고프니까"

"우리도 배고파여"

"엄마, 아빠는 어른이잖아. 이제 거의 다 왔으니까 좀만 참아. 가서 밥 먹자"


허술한 걸 넘어서 앞뒤가 안 맞는 논리였다. 어쨌든 소윤이와 시윤이는 차 안에서 어떠한 요기도 하지 못하고 이케아에 간 거다. 역시나 소윤이와 시윤이는 기도가 끝나기 무섭게 앞에 놓인 김밥과 여러 음식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나도 욕망대로 숟가락을 놀렸으면 폭주했을 테지만 소윤이와 시윤이의 부지런한 포크질 앞에 잠시 행동을 멈췄다.


"아빠. 감자 고로케 다 먹은 거에여?"

"아, 그런가? 소윤이 하나도 안 먹었어?"

"아빠가 다 먹으면 어떻게 해여. 나도 감자 고로케 먹고 싶었단 말이에여"

"소윤아. 소윤이 그릇에 있는 음식을 봐. 얼마나 많은 음식이 있어. 앞에 놓인 건 감사하지도 않고 못 먹었다고 불평하면 안 되겠지? 감사함으로 먹어. 알았지?"


틀린 말도 아니고 모범적인 가르침이었지만 조금 미안하긴 했다. 배고픔에 취해서 코를 박고 먹다 보니 어느새 감자 고로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거니까. 아내도 아이들의 숟가락질에 부담을 느꼈는지 배가 부르다면서 속도를 늦췄다. 생각해 보니 아내에게는 애들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거대한 식추...아니, 인간이 한 명 더 있었네.


"여보. 배불러?"


아내는 계속 나의 포만감 수치를 확인했다. 배가 부르지는 않았지만 허기를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모두 어느 정도 배를 채우고 나니 매장을 둘러볼 힘이 생겼다. 오늘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다니는 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둘 다 말도 엄청 잘 듣고 어느 시점 이후부터는 쭉 카트에 태우고 다녔다. 정말 한 번도 애들이 아내와 나의 쇼핑을 방해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 피곤했다. 이케아는 예전부터 그런 곳이었다. 뭔가 계속 걷게 만드는 곳이랄까. 거기다 길까지 헤매서 불필요하게 많이 걸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도 힘들고 지겨웠을 거다. 아마 아이스크림이 없었으면 진작부터 그만 보고 집에 가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아빠아. 아즈끄림은 온제 먹어여엉?"

"아빠. 저는 초코 아이스크림인 거 잊지 않았져?"


쇼핑을 마치고 드디어 아이스크림 시간. 아이스크림 자체도 맛있겠지만 기계에 콘을 올린 뒤 전용 동전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아이스크림이 얹히는 그 과정이 너무 재밌나 보다. 콘 넣기, 동전 넣기, 버튼 누르기는 꼭 자기들이 해야 한다나 뭐라나. 직접 만들어 먹는 기분인가?


"소윤아. 초코 아이스크림 맛있어?"

"네. 너무너무 맛있어여"


소윤이, 시윤이 모두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이었다.


꽤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소윤이는 의자 조립하는 걸 보고 자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소윤아. 지금 너무 늦었어. 얼른 자야 내일 은율이랑 놀지"

"그래도 보고 싶은데"

"아니야. 이건 너희 자면 아빠가 조립해 놓을 거야"

"알았어여"


아빠가 혼자 조용히 집중하면서 해 놓을 게. 신경 꺼라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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