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27(금)
하루 종일 손님 맞을 준비로 바쁘게 보냈다.
누군가 집을 방문할 때 아내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하는 화장실부터 청소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화장실이 깨끗한 상태가 아니면 매우 신경을 쓰고, 화장실 청소는 분장상으로는 어쨌든 내 몫인데 또 나는 자주 하지 않고. 내 입장에서는 화장실 이슈가 등장하면 다른 집안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 잡아먹는 게 싫고. 열심히 한다고 티가 나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내 입장에서 화장실은 애증의 현장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손님이 오는 날에는 나도 다른 일 다 제쳐두고 화장실 청소부터 하려고 한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오후에) 나서는 이케아에 다시 가야 했다. 어제 사 온 의자 하나가 불량이었다. 아내는 집에 남고 내가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갔다.
"대신 오늘은 아이스크림 안 먹을 거야. 알았지? 교환만 하고 바로 올 거야"
"네"
교환/환불 창구에 가서 접수를 했더니 15-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은 쿠폰 세 개를 주셨다.
"이거 아이스크림 쿠폰인데요 애들하고 같이 드시면서 기다리세요"
"네, 감사합니다"
주방 놀이를 하고 있던 소윤이와 시윤이를 불렀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아이스크림 또 먹을 수 있게 됐네"
"왜여?"
"아, 기다리는 동안 먹으라고 주셨어"
어제도 먹고 오늘도 먹어도 맛있나 보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먹으니 오히려 더 맛있는지 가만히 앉아 움직이지도 않았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따라디니니까 아이스크림도 먹고 좋네?"
집에 돌아와서는 작은방 정리를 했다. 정확히는 옷 분류 및 처분. 시간이 촉박할지도 몰라서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시작했다. 한 번 손을 대니 중간에 멈추기가 애매해서 꽤 많이 정리를 했다. 덕분에 소윤이, 시윤이 입힐 옷도 몇 개 건졌고.
옷 정리를 끝내고 나니 시간이 거의 다 됐다. 아내가 마지막 세밀한 청소와 정리를 하고 난 옷을 비롯한 커다란 쓰레기를 갖다 버렸다. 소윤이는 손님을 환영하는 편지(?)를 써서 문에 붙였다.
울산에 사는 은율이네가 오기로 했다. 소윤이는 아침부터 은율이는 몇 시에 오냐고, 언제 오냐고 물었다.
"아빠. 은율이 오려면 몇 분 남았어여?"
"은율이 어디쯤이래여?"
"은율이는 도대체 언제 올까?"
은율이네 가족은 저녁 먹을 시간쯤 도착했다. 집에 들어오지는 않고 곧장 식당으로 출발했다.
소윤이(5살), 시윤이(3살), 은율이(5살), 가을이(2살). 인원 구성은 이랬다. 저녁 먹으러 간 식당에 커다란 놀이 공간이 있어서 애들을 거기 풀어줬다. 자기들이 먼저 거기로 달려갔다. 시윤이까지는 같이 노는 게 가능한데 가을이는 좀 버겁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지난여름에 비해서 애들이 좀 큰 건지 조금의 다툼이나 분쟁도 없이 너무 잘 놀았다.
자리에 앉았을 때 시야에는 들어오는 곳이라 눈으로는 계속 살폈지만, 어른 넷이 아이들 없이 평화롭게 식사하며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할 정도였다. 2살 가을이까지 크게 겉돌지 않았다. 아무튼 모두 적당하게 잘 놀았다. 같이 처치홈스쿨 하는 집이라 훈육의 방향이나 방법도 비슷하니 편했다. 아이들끼리도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도 되는 것의 경계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우리 집의 기준이 저 집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되니 서로 편했을 거다. 어른들도 그랬고.
그래도 아직 어린 가을이를 돌봐야 하는 대성씨(은율이 아빠)가 가장 바쁘긴 했다. 아내와 나는 거의 엉덩이를 뗄 일이 없을 정도로 편했다. 내년 4월이면 급변할 가정 정세를 앞두고 누리는 마지막 여유랄까.
떨어져 있는 거리(울산 - 경기)에 비하면 자주 보는 셈이어도 그래봐야 1년에 두세 번인데, 소윤이와 은율이는 조금의 어색함이나 거리감이 없었다. 이런 게 고향 친구의 정인가.
밥 먹고 카페에 가서도 제법 양호했다. 아이들과 함께 있기에는 조금 좁고 화분도 많은 카페였는데 있을만했다. 모두 훈련(훈육)이 잘 되어 있어서 꼭 자기 부모가 아니더라도 말을 잘 들었다. 이럴 때 너무 뿌듯하다. 그 누구도 휴대폰 영상 하나 보지 않는데 상황과 장소에 맞게 적당히 조용하게, 조심하는 모습이.
아주 늦은 시간에 집에 복귀하게 됐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동안 은율이가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나 없는 동안 나 많이 보고 싶었어?"
"그럼. 내가 은율이 언제 오냐고 계속 물어봤어"
어른들의 강요와 조작이 없어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저런 장면을 연출하다니.
어른들의 야간 회동을 위해 일단 애들을 다 안방에 몰아넣고 한꺼번에 재웠다. 엄마들이 들어가서 재웠는데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엄마들은 녹초가 되어서 등장했다. 울산에서 먼 거리를 달려오느라 피곤했겠지만 야간 회동은 두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에서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시작이 늦었으니 끝도 늦었다. 3시(새벽)가 다 되어서야 자리를 정리하고 누웠다. 방에 있던 아이들을 다시 가족별로 분리해서 눕혔다. 은율이네는 안방에, 우리는 거실에.
가을이는 아침에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고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가을이 엄마, 아빠의 예상은 한 8시였다. 가을아, 난 너희 아빠가 아니니까. 난 깨우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