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 손님과 축구

19.12.29(주일)

by 어깨아빠

토스트가 너무 많았나. 아니면 너무 바빴나. 1인당 2개를 계산하고 구운 토스트는 절반이 넘게 남았다. 하긴 정신이 없기는 했다. 가뜩이나 은율이네는 오늘 교회에 가서 특송까지 한다고 했다. 은율이네를 먼저 떠나보내고 우리는 나중에 나왔다.


오늘 아침을 끝으로 우리 집에서는 나가려던 게 은율이네의 최초 계획이었는데 하루 더 묵고 가기로 했다.


어제 소윤이가 아내와 나에게 물었다.


"엄마. 은율이는 주일에 가는 거에여?"

"응. 그런다고 했는데"

"그래여? 더 있다 가면 좋을 텐데"

"그럼 소윤이가 더 있다 가라고 얘기해 봐"

"그럼 더 있다 갈 수도 있어여?"

"글쎄"


소윤이는 대성 삼촌에게 얘기했다.


"삼촌. 하루 더 자고 가여"


어차피 은율이네도 주일에 울산으로 가려던 건 아니었다. 여행은 아니지만 그래도 2박 3일의 만남이 아쉽기는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일이니 각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다시 만나기로 했다. 소윤이는 엄청 기뻐했다. 시윤이도 그렇고.


어제 승아에게 물어보니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나면 서너 시쯤 될 거 같다고 했다. 혼자만의 고민이 시작됐다.


'축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손님을 초대해 놓고 축구를 하러 가는 게 좀 무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지난 주일을 마지막으로 축구를 하지 못해 근질거리는 몸에 오늘도 축구를 허락하지 않는 것도 무례인가 싶었다. (멍멍, 멍멍)


축구는 네시부터고 은율이네도 네시에 끝난다고 했으니까 (분명 서너 시라고 했지만 내 뇌는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얼추 두 시간 정도만 자리를 비우는 셈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또 내심 은율이네의 일정이 늦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여보. 나 오늘은 축구를 꼭 해야 될 거 같아. 몸이 들썩들썩해"


축구를 위해 목장 모임은 빠지려고 했는데 따지고 보니 올해의 마지막 목장 모임이었다.


"여보. 목장 모임도 가야 할 거 같네"


삼송의 날개 없는 천사인 이가영 아내는 나를 너그러이 방생했다. 아내와 아이들을 집에다 데려다주고 홀연히 떠났다가 목장 모임 마치고 잠시 집에 들렀다. 아내와 아이들은 한숨 자고 일어난 뒤였다. 나는 아내에게 신신당부를 하며 떠났다.


"여보. 은율이네 좀 일찍 오면 나 기다리지 말고 저녁 먼저 먹어. 알았지?"


목장 모임도 좋았고 축구는 더 좋았다. 너무 재밌었다. 몸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그제, 어젯밤 늦게까지 이어진 수다로 쌓인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었다.


축구를 끝내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막 애들 저녁을 먹이고 어른들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라고 했다. 서둘러서 집으로 갔다. 분위기는 좋았다. 애들은 저녁을 먹고 노는 중이었고 어른들의 저녁 준비는 막바지였다. 다행히 은율이네는 6시쯤 집에 왔다고 했다.


어른들이 저녁을 먹는 동안 아이들은 오늘도 사이좋게 놀았다. 미끄럼틀을 꺼내줬는데 아주 질서정연하게 차례를 잘 지키며 잘 탔다. 물론 중간중간 질서를 파괴하려는 역모가 보이기는 했지만 보는 어른의 눈이 많았다. 질서 파괴는 실행되지 못했다. 가장 어린 가을이도 자기 차례와 규칙을 지키며 놀았다.


자기 위해서 미끄럼틀을 치우고 한 명씩 씻겼다. 애들 여럿과 함께 하니 새삼 느낀 게 있다. 애들은 틈만 나면 논다. 당연한 얘기지만 잠시라도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는 시간이 없다.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 곧장 삼삼오오 모여 새로운 놀이를 시작한다. 우리 집은 장난감이 없는 편이라 놀 게 없는데도 주변에 잡히는 모든 물건을 놀이감으로 삼았다.


오늘 자기 전에는 목베개와 쿠션, 인형이 주된 재료였다. 여기서 가을이와 소윤이의 사랑이 꽃 피었다. 소윤이가 목베개를 가지고 가을이 머리에 씌워주고 그게 떨어지면 가을이가 폭소를 터뜨렸다. 처음이었다. 가을이의 그런 큰 웃음을 본 게. 몇 번을 반복해도 웃음이 잦아들지 않고 계속 웃었다. 소윤이한테만. 은율이와 시윤이도 가을이를 웃기고 싶다는 일념으로 주변의 각종 웃음 소재를 잡고 달려들었지만 외면당했다. 가을이는 소윤이 바라기였다.


특히 은율이는 자기 동생이 다른 누나에게 더 마음을 주는 게 싫은 듯 어떻게든 가을이의 관심을 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이런 현상은 소윤이에게도 나타난다. 어디 가서 시윤이가 다른 누나에게 더 관심을 보이고 친밀하게 지내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챙기려 든다. 있을 때 잘 하지.


오늘은 엄마들이 애들을 재웠다. 걱정이었다. 다들 낮잠을 거하게 자서 일찍 잘 거 같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 한참 걸렸다. 그마저도 고요하게 오래 걸린 것도 아니었다. 소윤이는 먼저 나가는 엄마를 보며 울고, 둘 다 목마르다고 나오고, 화장실 가겠다고 나오고. 이미 나오기까지도 한참 시간을 쓴 아내는 거실에 나와서도 한참 동안 씩씩거렸다. 홀로 남은 대성씨는 아내와 내가 개는 빨래를 함께 갰다. 아내는 괜찮다고 만류했지만 대성씨는 '좋아한다'라는 궤변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은율이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은율이가 잠들지 않았다. 아빠랑 특별 면담 시간도 갖고 한바탕 울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됐다. 또 엄청 늦은 시간이었다. 우리의 시간은 이제 시작이었다. 거기다 마지막 밤. 하얗게 불태웠다. 세 시가 넘어서야 자리를 파했다.


은율이네는 내일 울산으로 돌아가야 했다.


울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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