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30(월)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가을이 소리가 들렸다. 아마 우리 애들보다 은율이, 가을이가 먼저 깨 있었던 것 같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거실로 나가니 가을이가 반기는 소리가 들렸다. 내 추측에 또 소윤이를 보고 반가워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성씨는 오늘도 아이들과 함께 일어나 있었다. 울산에서 온 Saint DS, 혹은 Diligent DS. 엄마들은 방에서 조금 더 늦게까지 자고 애들 아침을 먼저 먹였다. 과일도 깎아주고. 생각해 보니 뭔가 애들 간식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다. 왜 그랬지. 아마 너무 잘 놀아서 그런 듯하다. 좀 울고 칭얼대고 기분이 상해야 간식으로 달랠 필요를 느낄 텐데 그런 게 전혀 없이 너무 잘 노니 굳이 간식을 들이밀지 않았나 보다.
은율이네는 점심 약속이 있어서 아침 먹고 조금 있다가 떠났다. 우리 집을 떠난 거지 아직 경기도를 떠난 건 아니었다. 오후에 이케아에서 또 만나기로 했다. 덕분에 집을 나서는 은율이네와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제법 무덤덤했다.
라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약간 뭉클했다고 했다. 난 뭉클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가고 나니 집이 휑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허전함이었다. 그러고 보니 누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간 게 참 간만이었다. 소윤이도 은율이네가 떠난 지 몇 분 안 지나서 이렇게 얘기했다.
"아, 은율이랑 가을이 보고 싶다"
그런 면에서는 이따 만나기로 한 게 다행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 낮잠을 재우려고 아내가 방에 데리고 들어갔다. 하아. 밤에도 난리고 낮에도 난리고. 엄청 오래 걸렸다. 오랜 시간 = 격동의 시간이라고 보면 된다. 내가 한 번 문을 열고 들어가서 강경하게 진압(?)했다. 아내가 그 후의 상황을 전해줬는데 시윤이는 그 뒤로 눈을 꾹 감더니 그대로 잠들었다고 했다. 소윤이는 정말 잠이 안 오는 모양인지 아내가 보기에 노력은 하는데 잠들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 아내도 잠들었고 소윤이도 잠깐 자다 깼다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소윤이는 자지 않은 듯했다. 그간의 경험과 시간으로 유추해 보면.
[차라리 소윤이는 재우지 말 걸 그랬나]
[그러게. 서로 고난이다 정말]
점심 일정을 마친 은율이네한테 연락이 왔다. 우리도 준비를 하고 이케아로 출발했다. 먼저 둘러보고 있던 은율이네와 만나서 함께 매장을 돌러보며 구경했다. 이번에도 가을이는 우리를 발견하고 강아지처럼 소리를 냈다. (글로 묘사하기 어려운 2살 아이의 강아지 같은 소리) 요 며칠간 가을이 하고 정이 많이 들었다. 아직 나에게 안기지는 않지만.
이케아의 다양한 가구와 쇼룸을 구경하는 것만큼이나 소비와 지출을 하려는 승아와 막으려는 대성씨의 국지전을 재미있게 구경했다. 사부작거리며 꼭 붙어 다니는 소윤이와 은율이의 모습도 흥미로웠다. 또 이케아처럼 아이들과 함께 전진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각자 엄마, 아빠 혹은 삼촌, 이모의 말에 즉시 즉시 반응하며 행동하는 아이들 덕분에 구경하는 게 매우 수월한 게 신기했다. 나중에는 카트에 타고 있던 시윤이까지 내려갔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물론 몸은 피곤했다.)
모든 구경과 구매를 마치고 이케아의 꽃인 자가 작동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내가 은율이와 소윤이를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고 나머지는 음식을 주문하러 갔다. 소윤이, 은율이, 시윤이, 나, 대성씨. 이렇게 다섯 개를 샀다. 우리 집에서 지내는 동안 은율이와 가을이에게 찬물 안 먹이는 걸 보고 혹시나 아이스크림을 사 주면 안 될까 싶어서 미리 물어봤는데 괜찮다고 했다.
소윤이와 은율이에게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쥐여주고 나머지 세 개는 내가 들었다. 내 건 가는 동안 거의 다 먹었다. 대성씨와 아내(가영이)는 음식을 받으러 가고 승아와 가을이, 시윤이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윤이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네고 내 손에는 대성씨의 아이스크림만 남았다. 소윤이와 은율이는 열심히 먹고 있었고.
아내와 대성씨가 음식을 가지고 돌아왔고 난 대성씨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아까 멀어지는 나를 향해 대성씨가 자기 것도 하나 사다 달라고 말하길래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나 싶었는데, 대성씨에게 건넨 아이스크림은 어느새 가을이의 손에 옮겨져 있었다. 가을이는 엄청 귀엽게 입을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고. 가을이가 아빠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었다. (집에 있는 동안 가을이는 아빠가 없어지면 울고, 찾고 그랬을 뿐만 아니라 엄마한테 안겨 있다가도 아빠를 향해 몸을 뻗고 그랬다.) 롬이야, 너 아이스크림 좋아하니? 너만은 내 편으로 만들게.
오후에 내가 먼저 아내에게 얘기했다.
"여보. 오늘 저녁은 밖에서 먹자"
아내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마침 소윤이가 치킨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와 내가 그렇게 치킨을 자주 먹었지만 애들은 아니었다. 애들 잠들고 나면 먹으니까. 저녁 메뉴는 치킨으로 정했었다. 은율이네는 아예 이케아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출발한다고 했다. 소윤이에게 물었다.
"소윤아. 은율이랑 같이 여기서 저녁 먹을까? 아니면 헤어지고 우리는 치킨 먹으러 갈까?"
소윤이는 깊게 고민하더니 치킨을 먹겠다고 했다. 살짝 놀랐다. 은율이네를 향한 소윤이의 애정(?)을 아는 터라 그 정도로 치킨이 먹고 싶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윤이는 갈팡질팡했다. 내가 절충안을 제시했다.
"소윤아. 그러면 은율이네 저녁 먹을 동안 같이 기다렸다가 다 먹으면 인사하고 우리는 치킨 먹으러 갈까?"
"좋아여"
아내는 잠시 허기를 잠재울 목적으로 감자 고로케와 미트볼 스파게티를 사 왔다. 우리 음식과 은율이네 음식으로 아내와 아이들의 허기를 달랬다.
먼저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마지막으로 식사 공간 중앙에 조성된 놀이 공간에 가서 놀았다. 어른들도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소윤이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아아아아아아"
"어. 왜 소윤아"
"시윤이 넘어졌어여어어어어"
곧바로 시윤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단지 서러운 울음이 아니었다. 뭔가 깊고 굵은 게 많이 아프다는 걸 직감했다. 멀리서 시윤이를 봤는데 턱 밑에 얼룩 같은 게 보였다.
'피인가? 아이스크림 자국인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서럽게 울고 있는 시윤이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건 피였다. 바로 안아서 자세히 살펴봤다. 다행히 패이거나 찢어지진 않은 듯했다. 소윤이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아, 저는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시윤이가 놀고 있다가 갑자기 넘어져서 우는 것만 봤어여"
소윤이의 진술 정황을 보아 하니 누군가의 가해가 있었던 건 아닌 듯했다. 특히 소윤이가 뭔가 본인의 책임을 숨기는 것도 아닌 느낌이었고.
시윤이에게도 물었다.
"시윤아. 어떻게 된 거야?"
"내가아 홈자 기짜 노리 하다가 넘어짐거에여어"
시윤이는 훌쩍 거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자세한 건 몰라도 시윤이 혼자 걷다가 넘어져서 단단한 나무 구조물에 부딪힌 듯했다. 날카롭지 않은 게, 부딪힌 곳이 턱이라 다행이었다.
드디어 은율이네와 진정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이케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작별 인사를 나눴다.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1년에 최소 2번은 보고 있다. (통계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인 거리 때문인지 헤어짐의 순간은 언제나 애틋하다. (다시 한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치킨을 먹으러 가고 대성씨는 300km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적의 노래가 떠올랐다. '다행이다')
치킨집에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시윤이 밴드를 샀다. 피부 재생(?) 밴드. 상처가 깊지는 않아도 그대로 두기에는 찝찝했다.
아내는 한 마리를 시킬지 두 마리를 시킬지 고민했다. 난 사실 한 마리로 마음이 기울었다. 어쨌든 이케아에서 조금이라도 배를 채웠으니까. 한 마리는 부족할 게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두 마리를 시키면 너무 많이 남을 듯했다. 아내는 두 마리를 시키자고 했고 그러기로 했다. 남으면 싸 가면 되니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딱 네 조각을 남기고 다 먹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치킨을 잘 먹는지는 알았지만 이 정도였다니. 소윤이는 따로 살만 발라주지도 않았는데 서너 조각을 먹었다. 자기가 직접 들고 살을 발라 먹은 건 물론이고 엄청 야무지고 꼼꼼하게. 시윤이도 꽤 먹었다. 양으로만 치면 누나랑 비슷했다. 아내도 꽤 잘 먹었다. 늘 말하지만 나머지가 아무리 잘 먹어도 언제나 가장 잘 먹는 건 나다.
집에 들어가며 소윤이가 얘기했다.
"은율이랑 가을이랑 대성 삼촌이랑 승아 이모 보고 싶다. 재밌었는데"
잘 가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애들 재우다 잠든 아내가 다시 나와 상황을 전해줬다.
"11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