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31(화)
오후에 소윤이 치과 진료가 있었다. 밤에는 송구영신 예배를 드려야 했고. 시윤이는 점심까지 먹고 아예 늦은 오후에 재웠다. 시윤이가 자는 동안 아내가 소윤이를 데리고 치과에 다녀왔다. 소윤이가 치과 진료에 공포를 느낄지도 모르니 엄마가 곁에 있어야 안정을 할 수 있기는 무슨 그냥 내가 좀 쉬고 싶었다. 시윤이도 잠들었으니 남은 자는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치과에 간 아내가 진료대(?)에 누운 소윤이 사진을 보내줬다. 오늘은 아예 울지 않을 거라는 소윤이의 다짐도 함께 전해줬다. 진료받다가 잠시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에서도 소윤이는 활짝 웃고 있었다.
시윤이는 무려 두 시간이나 잤다. 아들이 이렇게 효도를 하네. 덕분에 난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누렸다고 하니까 뭔가를 한 거 같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누림이다. 푹 자고 깬 시윤이는 방문을 열더니 얘기했다.
"아빠. 누나양 엄마늠여?"
"어. 치과 갔어"
"누나양?"
"응. 이제 조금 이따가 올 거야"
"왜 누나만 갔어여엉?"
"아, 시윤이는 자고 있어서. 아빠랑 시윤이는 집에 남았지"
"그래여엉?"
사과를 먹던 시윤이가 갑자기 나에게 얘기했다.
"아빠아"
"어?"
"이거늠 이따 누나 오먼 나너 먹으꺼에여엉"
"그래? 착하네. 누나 것도 남겨주고. 시윤이가 다 먹어도 돼. 또 있어"
"아니에여엉. 누나양 가치 먹으꺼에여엉"
"그래. 시윤이 마음대로 해"
잠시 후 시윤이가 다시 물었다.
"아빠. 누나양 엄마늠 언데 와여엉?"
"글쎄. 곧 온다고 했는데"
"더나(전화) 해바여엉"
"곧 오겠지. 조금만 기다리자"
"아아아. 아빠아. 해바여엉"
"그래. 알았어"
통화를 하고 나서는 더 이상 언제 오냐고 묻지 않았다.
아내와 소윤이는 곧 돌아왔다. 저녁은 아내가 들어오는 길에 사 온 만두로 대신했다. 만두를 먹고 난 뒤에는 소윤이를 재웠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려면 11시까지 교회에 가야 했다. 다른 날이었으면 밤잠도 가능했을 시간에 소윤이를 재웠다. 아내가 함께 들어갔는데 아내도 좀 잤다.
그동안 시윤이는 거실에서 혼자 이것저것 하며 복작거렸다. 샤워하러 가면서 거실에서 놀고 방문을 열지 말라고 했더니 대답도 잘하고, 실천도 잘하고. 혼자 있을 때는 얼굴 붉힐 일이 없다. 대체 왜 그렇지.
시윤이는 깜깜해져서 다 자야 하는 이 시간에 누나와 엄마만 들어가서 자는 게 잘 이해가 안 됐는지 나에게 계속 물어봤다.
"아빠아. 언데(언제) 아찜 대여엉?"
"아침? 아직 한참 남았지"
"그엄 누나양 엄마늠 아찜 대면 나와여엉?"
"아, 아니야. 조금 이따가 나올 거야"
"아빠아. 디금 밤이에여엉. 깜깜해여엉"
"아. 오늘은 밤에 교회를 가니까 그러는 거야"
또 물었다.
"아빠. 엄마양 누나늠 언제 나와여엉?"
"글쎄. 조금 더 있다가?"
"디금 깨우까여엉?"
"아니. 놔 둬"
"왜여어엉?"
"좀 더 자야 이따 교회 가서 안 피곤하지"
"그래여엉?"
아내와 소윤이도 거의 두 시간을 자고 일어났다. 이때는 일을 했다. 어차피 시윤이가 있는 이상 완전한 자유는 힘들기 때문에 차라리 할 일을 하는 게 낫다. 설거지도 하고 집도 치우고. 애들도 이제 엄마, 아빠가 뭘 하는지에 따라 반응을 달리한다.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는 좀 심심해도 잘 건드리지 않는다.
"시윤아. 아빠 설거지 좀 할 테니까 놀고 있어"
"네, 아빠"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득달같이 와서 이것저것 놀이 이름을 대며 같이 하자고 그러고. 집안일은 가끔 합법적인 도피 수단이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지만 따로 뭔가 하거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다. 우리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는 송구영신 예배가 가장 큰 이벤트니까.
교회에서 나눠준 기도 제목 종이에 우리 가족의 열 가지 기도 제목을 적고,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송구영신 예배의 의미가 뭐고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 설명하고 그러면서 남은 저녁 시간을 보냈다.
함께 교회에 다니기로 한 친구네 부부도 오늘 예배를 함께 드렸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그럭저럭 무난했다. 일단 잠을 푹 재운 게 주요했다. 둘 다 피곤하거나 졸려서 칭얼대지는 않았다. 시윤이는 오히려 좀 뺀질거리긴 했지만 통제 범위 안에 있었다. 예배는 11시에 시작해서 12시 30분이 넘어서 끝났다. 1부 예배가 끝나고 12시가 넘어가는 순간에 다 함께 숫자를 세며 새해를 맞았다.
"우와. 시윤아 축하해. 이제 시윤이 네 살이야"
"소윤아. 소윤이도 축하해. 벌써 여섯 살 됐네"
아이들한테는 잔뜩 축하를 건넸지만 아내하고는 축하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섞인 인사를 주고받았다.
"여보. 화이팅. 서른여섯이네"
"그러게. 언제 이렇게 늙었지"
"나도 서른넷이야"
"그러게. 여보가 서른넷이라니"
예배가 끝나고 친구네 부부하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시윤이는 차에 탄지 얼마 안 돼서 잠들었다. 아무리 두 시간이나 잤어도 너무 늦은 시간 앞에 장사 없었다. 소윤이는 쌩쌩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저녁 여섯 시에 푹 자고 일어난 소윤이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저녁을 만두로 대신한 후폭풍이 그제야 나타났다.
"아, 배고프다. 여보"
"그치? 나도"
"엄마. 나도 배고파여"
뭔가 먹기에 적합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송구영신 예배를 감사와 은혜 속에 드리며 새해의 첫날을 맞이한 걸 소소하게나마 기념하고 축하하고 싶었다. 시윤이가 자고 있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깨면 깨고, 아니면 말고였다. 동네 햄버거 가게에 갈까 했는데 이미 문을 닫은 뒤였다. (혹시나 24시간 운영일까 기대를 했지만 아니었다.)
"소윤아. 그럼 우리 집 앞에 편의점이라도 갈까?"
"좋아여. 좋아여"
시윤이가 자고 있으니 먹을 걸 사서 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내가 소윤이를 데리고 편의점에 갔다. 아내와 나는 컵라면을 먹으면 됐는데 소윤이에게 먹일 게 마땅치 않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몸에 해로운 걸 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편의점에서 파는 게 다 도긴개긴이지만 그중에서도 합성 화학물투성이인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고를 게 없었다. 그럴 거면 편의점에 오면 안 됐다.
"아빠. 저 소떡소떡 먹을래여"
컵라면 두 개와 소떡소떡, 호빵 두 개를 샀다.
시윤이는 그대로 방에 눕히고 남은 세 명의 영신(迎新) 파티가 시작됐다. 소윤이는 먹는 것도 먹는 거지만 이 늦은 시간에 (본인이 정확한 시간은 몰라도 느낌으로 매우 늦었다는 건 아는 듯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평소랑 다른 뭔가 이례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즐거워 보였다.
아내랑 나는 반대였다. 이 늦은 시간에 라면을 흡입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만만치 않았다. 군대 시절, 비슷한 시간에 근무 끝나고 먹었던 컵라면의 맛이 떠올라서 아내에게 잔뜩 보따리를 풀었다. 아마 아내는 처음 듣는 게 아닐지도 몰랐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얘기를 꼭 해야만 라면의 맛이 살아나는 느낌이었으니까.
막상 판을 깔아준 건 우리(아내와 나)면서 걱정이 되긴 했다. 늦은 시간에, 자기 직전에 이것저것 욱여넣다가 소윤이가 탈이라도 날까 봐. 소윤이가 그런 것까지 생각하면 여섯 살이 아니라 스물여섯이겠지. 소윤이는 자기에게 주어진 양을 어떻게든 먹고 자려고 했다. 아내가 소윤이에게 얘기했다.
"소윤아. 그거 다 안 먹어도 돼. 지금 시간이 늦었잖아. 괜히 무리해서 다 먹으려고 그러면 배 아플지도 몰라. 그러니까 욕심내지 말고....푸흡"
아내가 그 얘기를 할 때 난 라면 면발을 길게 뽑아 면치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도 열심히 라면을 먹던 중이었고. 표리부동, 언행불일치의 현장이었다. 한참을 웃었다. 엄마, 아빠가 왜 웃는지 영문을 모르는 소윤이도 따라 웃었다.
"소윤아. 재밌다. 그치?"
"맞아여. 엄마, 아빠가 웃으니까 그냥 따라 웃었어여"
"그래. 이런 게 행복이지 뭐"
"맞아여"
소윤이랑 앉아서 편의점 음식을 먹으며 새해를 맞이하다니. 격세지감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