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수)
늦게까지 이어진 영신 파티의 여파로 아내와 나는 역대 가장 늦은 시간까지 잤다. 육아 조력자가 있을 때를 포함해도 최장 기록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소윤이와 시윤이는 우리보다 일찍 일어났다. 심지어 아내는 내가 일어날 때도 자고 있었다. 굳이 깨우지 않았다. (곧 아내도 일어나긴 했지만.)
"아빠. 너무 배가 고파여"
"아빠아. 배 고파여엉"
많이 미안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특히 시윤이는 어제저녁에 만두 먹은 게 다였으니 오죽했을까. 부지런히 떡국 끓일 준비를 했다. 사골 국물 얼려 놓은 게 있어서 까다롭지는 않았다. 냉동실에 있던 만두도 넣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표현 그대로 쉴 새 없이 먹었다. 마치 좋아하는 군것질을 먹는 것처럼 숟가락을 놓지도 않았고,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시장이 반찬이던가. 떡국을 향한 찬사가 이어졌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처럼 새 해의 첫 날도 마찬가지였다. 열 자리의 숫자가 1에서 2로 바뀐 게 영 어색하긴 했지만 Y2K와 밀레니엄 버그에 떨었던 나에게 이 정도는 약과였다. 2020년의 첫 날이라는 의미보다 휴일, 수요일의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아내는 며칠 전부터 영화를 보고 싶어 했다. 영화야 늘 보고 싶지만 특히 꽂힌(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욕망이 배가 된다.
"여보. 우리 오늘 파주나 난곡이나 어디든 갈까?"
"왜?"
"그냥. 새해니까. 영화도 보고"
"그럴까? 자고 올 거야? 그럼 난곡은 안 돼. 나 내일 미술 수업 있어"
"아. 그렇구나. 그럼 파주에 가지 뭐"
"그래"
"엄마, 아빠한테 일단 물어봐야 되기는 하지만"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특별한 일이 없으셨다. 저녁으로 먹을 쭈꾸미를 사서 파주로 갔다. 파주에 가서 자는 건 꽤 오랜만이었다. 뭔가 음흉한(?) 목적이 있을 때만 자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라 좀 죄송하긴 했다. (가깝다 보니 자주 오시기도 하고,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숙박은 자연스레 뜸해지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닐지도 모르고.)
잔뜩 흥분해서 달려드는 손주들을 안아주시는 장모님이 혼잣말처럼 얘기하셨다.
"아이고. 새해라고 하나님이 이렇게 선물을..."
(장인 어른은 이미 주차장에 내려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장모님 원 플러스 원입니다. 내년에는 투 플러스 원으로 더 후하게 드릴 게요.
양쪽 집(부모님들의 집)이 좀 다르다. 내 부모님의 집은 일상생활, 습관 등의 규율과 관련해서는 우리와 궤를 같이 한다. 반면에 음식, 특히 군것질의 영역에서는 많이 허용하시는 편이다. 아내의 부모님 집은 식생활의 영역에서는 우리와 일치되는 부분이 많지만 일상생활, 습관 등의 면에서는 굉장히 허용되는 게 많다. 아내와 나도 매 순간(매우 짧은, 정말 짧은 찰나의) 고민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내려놓고 있다.
'애들의 숨구멍이겠지. 뭐'
정도로 여기며 정말 정말 용납되지 않을 수준의 무언가만 차단하고 있지만 사실 그런 게 많지는 않다. 오히려 소윤이와 시윤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하면 너무 버릇이 없어지고 집에서보다 더 악행(?)을 많이 저지르는 게 문제다.
아내와 나는 저녁을 먹고 퇴장했다. 카페도 들르고, 다이소도 구경하고, 영화도 봤다. 확연히 달라진 게 있었다. 애들 생각이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았다. 물론 카페에 앉아서 애들 사진 보면서 낄낄대는 시간도 있었지만 예전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실적인 걱정이 앞섰다.
"애들 일찍 잤으려나. 어제 늦게 자고 오늘 일찍 일어나서 피곤할 텐데"
"일찍 안 자면 병 날 텐데"
집(처가댁)에 돌아갔더니 장모님만 깨 계셨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제법 늦은 시간까지 놀다 잤다고 했다. 나갈 때도 잘 때도 엄마, 아빠를 찾지 않는 걸 보면 다 키웠나 싶은 착각이 든다. 소윤이가 조금만 더 크면 둘이 재워놓고 문단속만 잘 하면 영화 한 편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기는데, 막상 닥치면 내가 불안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할 듯하다.
아내랑 나는 거실에 앉아 TV를 조금 보다가 자러 들어갔다. 수면 중에도 후각이 깨어 있는 건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자기장 같은 게 존재하는지 잠이 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윤이와 시윤이는 자석처럼 아내에게 달라붙었다.
감아도 떠도 들러붙는 아이들 덕분에 아내에게 온전한 자유는 쉽지 않다. 아예 부재하지 않는 이상. 내년에, 아니 올 해 롬이가 태어나면 더 심할 테고.
조심스럽게 롬이는 언니, 오빠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빠에게 매달리는 아이기를 소망해 본다. (막내 딸이라 사심 들어간 거 절대 네버 결코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