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이 다 갔다

20.01.02(목)

by 어깨아빠

아내는 어젯밤 잠을 설쳤다. 영화 보고 들어와서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속이 좋지 않고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러더니 화장실에 가서 다 게워냈다. 입덧 이후로 처음이었다.


"많이 토했어?"

"응. 오늘 먹은 거 다"


소리와 시간으로도 유추가 가능했다. 입덧할 때는 오히려 헛구역질이 심했지 그렇게 게워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한동안 임신 황금기를 지내며 즐거워했는데 이제 끝인 건가 싶었다. 문제는 배가 계속 아프다고 했다. 정확히는 위. 아내는 위가 아프다고 했다. 아내와 내가 동시에 휴대폰으로 검색을 했다.


"위경련인 거 같아"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임산부가 많았다. 태아가 커지면서 위를 압박하고 그로 인해 위의 기능이 떨어지고 심할 때는 통증까지 유발하는 임신성 위경련이라고 해야 할까. 거기에 아내는 어제 많이 먹기도 했다. 자극적인 쭈꾸미를 시작으로 라떼, 과자, 팝콘 등등. 아내는 위통을 호소하며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다행히 내가 잠들기 전에 아내가 잠든 걸 확인했고, 아침에는 어제보다 조금 나은 상태라고 말했다.


"여보. 이제 먹는 거 신경 써야겠다"

"그러게. 슬프다. 그게 낙이었는데"


아내는 임신 황금기가 지나고 마지막 고난이 다가오는 걸 직감하고 슬퍼했다.


화요일의 미술 수업이 오늘 오전으로 미뤄져서 일찌감치 처가댁에서 나왔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진작에 일어나 장모님과 함께 아침을 먹은 뒤였다.


"아빠. 갔다 올게"

"아빠. 그림 잘 그려여"

"아빠아. 그딤 잘 그디고 와여엉"


처가댁에서 미술 수업 장소까지는 10분 조금 넘게 걸렸다. 가까워서 좋았다. 미술 수업을 마친 시간이 딱 점심시간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해 보니 근처 파스타 가게에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고 했다. 다시 처가댁으로 가서 아내와 아이들, 장모님을 태우고 식당으로 갔다.


메뉴를 네 개나 시켰다. 물론 샐러드가 하나 포함되어 있기는 했지만 (난 샐러드는 메뉴로 치지 않는다. 회를 먹고 배부른 적은 많아도 풀을 먹고 배부른 적은 아직 없다) 어쨌든 많아 보였다. 일단 아내가 많이 못 먹고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장모님도 많이 드실 리가 없었다. 애들이 아무리 잘 먹는다고 해도 잘 먹는 어른은 나 하나인데 과하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세 개든 네 개든 다 먹기는 했을 거다. 내가 있으니까.) 아내는 애들이 잘 먹을 거라며 네 개를 시켰다.


리코타 치즈 샐러드, 매콤한 파스타, 안 매운 리조또, 안 매운 라자냐. 라자냐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라자냐를 먹었는데 그게 너무 맛있었다. (그때 너무 잘 먹어서 그런가 그때 날 대접한 가족은 날 엄청난 대식가로 알고 있다. 물론 사실이긴 하지만 가족이 아닌 타인과 먹을 때는 어느 정도 양 조절과 이미지 관리를 하는데 아마 그날은 이성의 끈을 놓았나 보다.) 그 후로 한두 번 라자냐를 먹었던 거 같다. 쉽게 접하지는 못했다. 파는 곳이 없었다. 라자냐가 대중적이지 않은지 파스타 가게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라자냐에 마음이 들떴는데 이내 가라앉았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너무너무, 정말 엄청 엄청 잘 먹었다.


"소윤아, 시윤아. 이게 라자냐라는 거야. 엄청 맛있어. 먹어 봐"

"아빠. 그렇게 한 겹씩 먹는 거에여?"

"아 그런 건 아닌데 너네 먹기 편하라고"


층층이 쌓인 라자냐 면을 한 장씩 분리하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아빠. 진짜 맛있다여"

"아빠아. 마디떠여엉"


정말 잘 먹었다. 파스타보다 먹기도 편한지 속도도 엄청 빨랐다.


'너네 많이 먹어라'


아버님은 라자냐가 싫다고 하셨단다. 얘들아.


아내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세 개 시켰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아내는 커가는 롬이 때문에 위경련이지만 난 허기져서 위경련 겪을 뻔했다.


(식전 빵과 함께 나온 토마토소스도 엄청 맛있었다. 잘게 다진 토마토와 바질 페스토가 주재료였다. 아내가 뭐라고 이름을 말해줬는데 생각이 나지 않는다. 베란다 화분을 실현하는 날이 오면 꼭 바질을 키워 봐야지.)


배불리 밥을 먹고 근처 카페를 갔다. 어제 아내랑 영화 보러 가기 전에 갔던 카페였다. 커피가 맛있기도 하지만 휘낭시에가 맛있었다. (빵 트렌드에 민감한 아내의 말로는 요즘 휘낭시에가 유행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커피만 샀다. 아내가 나더러 빵을 사달라고 했다. 휘낭시에와 까놀레(?)를 샀다. 역시나 애들이 무섭게 달려들었다.


'너네 많이 먹어라'


아버님은 휘낭시에도 싫다고 하셨단다. 얘들아.


장모님은 손이 크시다. 집으로 가기 전에 여러 개의 휘낭시에와 까놀레를 사서 아내 손에 건네주셨다.


1박 2일의 짧은 일상 탈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뭔가 마음이 답답했다. 아니, 마음이 답답한 게 아니라 그냥 집이 답답했다. 아내와 애들이 자러 방에 들어가고 나서 소파에 앉아서 한참을 고민했다.


'집에 있을까. 카페에 갈까'


고민하다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카페에 가기에는 늦기도 했고 비용이 아깝기도 했다. 그렇지만 집에는 있고 싶지 않고. 일단 나갔다. 바람이라도 쐬려고. 밤공기를 마시니 한결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더 있고 싶었다. 가출 청소년도 아니고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뭔가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마냥 밤길을 걷기에는 춥기도 했고 재미도 없었다. 다시 집에 들어가 노트북을 챙겨서 나왔다. 카페로 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어디야?"

"나? 헤이즈"

"아, 진짜?"

"응. 여보는 잠들었다가 깼지?"

"어"


아내는 바로 자지는 않고 505호 사모님에게 줄 아기 의자를 닦다가 나머지 하나 (롬이 태어나면 쓸)도 분해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다시 방에 들어갔다고 했다. 난 아내의 위 상태가 제일 걱정이었다. 계속 아픈지 물어봤는데 어제처럼은 아니어도 미세하게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다고 했다. 난 아내가 다시 힘겨운 시기에 접어든 걸 안타까워했고, 아내는 아웃백도 못 갔는데 (아내는 얼마 전부터 아웃백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힘들어진 걸 슬퍼했다.


임신과 출산을 겪는 아내를 옆에서 지켜보는 게 세 번째인데 세 번 다 다르다. 다 다른 세 번의 과정에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 결코 쉽지 않다는 것.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아름다운 만삭 사진 찍는 걸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시간들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


자세를 한 번 바꿀 때마다 신음 소리가 새어 나오는 아내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이 솟구친다. 얼마 전에 아내가 날 실수(?)로 오빠라고 불렀는데 아내도 엄청 민망해했고 소윤이도 막 웃었다.


"엄마. 아빠한테 오빠가 뭐에여. 오빠라고 해야져"


요즘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가영이를 그냥 가영이라고 부를 걸 그랬나. 여보라고 부르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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