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금)
아무 일도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아무 일'이라는 건 집에서 보내는 일상 외의 특별한 만남이나 일정을 얘기하는 거다. 정말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 심지어 오늘은 애들 낮잠도 안 재웠다. 오히려 아내는 틈틈이 방에 들어가서 누웠다. 위경련 이후 부쩍 몸이 약해진 게 느껴진다. 배도 자주 당겨서 눕고 싶을 때도 많아졌고.
소윤이와 시윤이가 특별히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물론 여섯 살과 세 살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어떤 육아의 피로도는 당연히 존재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서로 선을 넘어갈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거나 상하는 순간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소진되는 느낌은 있었다. 아, 이게 뭔지 정확히 남겨 놓으면 좋겠지만 아마 그러기 힘들 거다. 그냥 나도 모르게 바닥에 붙어 버리고 싶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어쩌다 보니 집 밖에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나도 아내도, 애들도. 저녁에 철야 예배를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소윤이와 시윤이는 잠옷을 입고 있었다. 소윤이는 이렇게 얘기했다.
"엄마. 그러고 보니까 오늘 잠옷을 한 번도 안 벗었네?"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조금 미안하긴 했다. 자기들도 답답하고 지루했을 텐데 오후에는 나도 모르게 짜증을 냈다. 그야말로 내 안에 쌓인 어떤 찌꺼기를 조금이라도 배출하기 위한 행위였다. (정당한 짜증이 있겠냐마는, 그 와중에도 명분이 개운치 않은 짜증이었다는 말이다.)
철야 예배에 가기 위해서 집을 나설 때도 애들은 아직 취침 전이었다. 드럼 반주가 끝나고 아내와 카톡을 나눴다. 애들이 금방 자기는 했다고 했다. 내가 선사한 오늘의 유일한 선물이었다. 아이들의 빠른 밤잠.
집에 왔더니 아내는 소파에서 요양중이었다.
"여보. 소윤이가 자기 전에 그러더라"
"뭐라고?"
"엄마. 내일은 어디라도 좀 나가자여"
"진짜?"
"응. 웃기지?"
"그러게. 좀 미안하네. 진짜 내일은 어디라도 나가야 할 거 같아. 내가 못 견디겠어"
"그러게. 어디 가지?"
오늘 하루가 얼마나 특이점이 없었는지는 사진이 증명했다. 애들하고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었다. 예배 끝나고 집에 와서 애들이 자고 있는 모습을 일부러 한 장 남겼다. 참, 이게 묘하다. 한 발 차이다. 현관문 안에서 마시는 공기와 현관문 밖에서 마시는 공기가 참 다르다.
깊은 밤에 아내와 이런저런 의견을 나눴다. 날이 추우니까 야외는 안 되고, 그렇다고 쇼핑몰 (스타필드 같은 곳)은 싫고. 교착을 거듭하고 있는데 아내가 흥미로운 안을 던졌다.
"광장시장 이런 데 갈까?"
처음에는 3호선 동선의 안국이나 인사동을 생각했는데 뭔가 자주 간 듯한 느낌이어서 내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아내가 광장시장을 언급한 거다. 나도 풍문만 들었지 한 번도 가 보지 않았던 그곳.
아내와 나는 차를 두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광장시장의 맛집을 검색하며 아내와 나는 매우 심한 허기를 느꼈다.
"여보. 내일 재밌겠다"
"그러게. 여보는 괜찮겠어?"
"나? 괜찮지. 괜찮아, 괜찮아"
주말에는 사람이 미어터진다는 정보가 많았지만, 아내와 나는 그런 거 개의치 않는 편이다.
얘들아, 내일은 광장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