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하다가 축구하다가 육아하다가

20.01.05(주일)

by 어깨아빠

주일마다 소윤이와 시윤이를 새싹꿈나무 예배에 데려다준다. 보통은 아내가 가지만 오늘은 나도 함께 갔다. 누나가 신발 벗는 데 좀 오래 걸리니까 이미 신발을 다 벗은 시윤이는 들어가지 않고 소윤이 뒤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시윤아. 먼저 들어가"

"아, 시더여엉. 누나양 가찌"


소윤이 말로는 예배 시간에 화장실이 가고 싶어서 가면 거기도 따라간다고 했다. 아내와 내가 없을 때 소윤이가 시윤이를 어떻게 대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소윤이는 그 성가신 일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는 듯 능청을 피우며 "어쩔 수 없져" 라고 대답한다. 내가 아는 오빠와 여동생 사이 중에서 가장 사이가 좋은 (전인격적인 신뢰와 교류를 나누는...-너무 거창한가-) 아내와 형님도 어렸을 때는 박 터지게 싸웠다는 걸 보면 (아내 말로는 일방적으로 맞았...) 피는 피인가 보다. 난 소윤이가, 시윤이가 아내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서로 사랑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고. 그런 면에서 롬이가 누리는 가장 큰 복은, 잘 훈련(?)된 언니와 오빠가 둘이나 있다는 거다. 막내(!) 딸로 누리는 사랑도 크겠지만 막내 동생으로 느끼는 사랑 또한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바빠도 집에서 나오기 전에 커피를 어떻게든 한 잔 마시는 편인데 오늘 아침은 정말 틈이 없었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커피 생각이 간절했다. 목장 모임이 없었다. 아내에게 묻지 않고 카페 [윌]을 향해 운전대를 돌렸는데 아내가 얘기했다.


"여보. 우리 아직 시간 많지?"

"그렇지. 나 목장 모임 없으니까"

"맑음케이크 갈까"

"맑음케이크? 여보 가고 싶으면 가"


아내는 약 3분 고민하더니 말했다


"여보. 가자"

"어디? 맑음케이크?"

"응"


아내와 내가 마실 커피 한 잔씩과 케이크 하나를 주문했다. 아내가 선택한 케이크는 바나나크레이프(확실치는 않다)였다. 켜켜이 쌓인 얇은 크레이프를 아내가 돌돌 말아 애들 입에 넣어줬다.


너네 많이 먹어라. 아버님은 크레이프도 싫다고 하시네.


시윤이가 갑자기 우리 자리에서 멀어지더니 빈자리로 갔다.


"시윤아. 이리 와. 거기는 다른 손님들 앉아야 돼"

"아빠. 저 똥 따고 이떠여엉"

"아, 그래? 알았어. 다 싸면 얘기해"


아침에도 쌌었다. 심지어 이미 싸지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졸린 눈을 부비고 있을 때 똥 땄다며 나를 찾았다. 제철 맞은 과일도 아니고 좀 그만 땄으면 좋겠는데. (아침에는 아내가 처리했다. 고맙게도.)


"아빠. 바나나 똥이에여엉?"

"음, 글쎄. 그런가?"


굳이 정밀하게 분류하고 싶지 않았다. 바나나 똥이든 토끼 똥이든 똥인 건 매한가지니까.


시윤이는 집에 오는 길에 잠들었다. 낮잠 시간을 훌쩍 넘겼으니 당연한 수순이긴 했는데 방에 눕혔더니 깼다. 급히 아내가 들어갔지만 다시 잠들지 못했다. 소윤이는 아예 재우지 않았다.


아내는 몸이 좀 힘들다고 하면서 침대에 누웠다. 안방 문을 닫고 소윤이, 시윤이에게 당부했다.


"소윤아, 시윤아. 아빠 축구하러 가도 엄마 깨우지 마. 알았지? 엄마가 지금 너무 피곤하시대. 지금 좀 쉬어야 롬이도 안 아프게 잘 자랄 수 있어. 소윤이, 시윤이 건강한 롬이 만나고 싶지? 그러면 엄마가 잘 쉬어야 돼. 그러니까 엄마 깨우지 말고 둘이 놀고 있어? 알았지?"

"네"


반신반의였다. 내 말을 기억하고 엄마를 향한 그리움 (애들은 이 짧은 시간에도 그리움을 느낀다)을 참을 것인지, 아니면 본능에 따라 벌컥 문을 열고 아내를 찾을 건지. 나가는 순간까지 재차 신신당부를 했다.


축구가 다 끝나고서야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뭐해?"

"그냥 있어"

"애들은 괜찮았어?"

"응. 지금 끝났어?"

"어. 가는 중이야. 아까 애들이 안 깨웠어?"

"아니. 시윤이가 의자에서 떨어져서"

"그래? 많이 다치지는 않았고?"

"어, 그런 건 아니고"


스피커 모드였는지 소윤이가 끼어들어서는, 시윤이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자기가 엄마를 깨울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열심히 설명했다.


아내는 소윤이가 밖에서 밥을 먹고 싶어 한다면서 외식을 제안했다. 일단 내가 집으로 가서 아내와 아이들을 태우기로 했다. 목적지는 걸어서 10분, 차로 3분 정도의 식당이었지만 아마 아내가 뭔가 힘에 부치는 듯했다. 임산부의 세계는 내가 죽을 때까지 경험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그저 따라주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두 곳의 식당이 후보였는데 소윤이가 택한 곳은 휴무였다. 후보였던 나머지 한곳으로 가서 김치볶음밥, 돈까스, 잔치국수, 주먹밥을 시켰다. 네 개나 시켰는데 아내는 계속 나에게 양이 부족하지 않은지 물었다.


"어, 배불러"


사실 배가 '엄청' 부른 건 아니었고, 그냥 당분간 허기를 느끼지 않을 정도였다. 메뉴를 네 개나 시켰는데 왜때문에 나는 그 정도였을까. 아내는 위경련 때문에 의도적으로 적게 먹고 있는데 말이다.


아내가 편의점에서 파는 흑당밀크티(요즘 유행이라면서 얼마 전에 처음 먹어 보더니 맛있다고 했다)가 먹고 싶다길래 밥 먹고 잠시 편의점에 들렀다. 소윤이와 시윤이의 관심사는 자기들에게도 콩고물이 떨어질 것인가였다.


"아빠. 우리도 뭐 사 줄 거에여?"

"아빠. 우이두 머 따 둘 거에여?"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하나씩 고르도록 했다. 젤리, 사탕, 초콜렛 종류는 제외한 과자 혹은 음료 쪽에서. 소윤이는 롯데샌드, 시윤이는 초코송이를 골랐다. 이럴 거면 초콜렛을 왜 제한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었지만 뭐 다 그런 거지.


"아빠아. 이거 디금 머그꺼에여엉?"

"어. 집에 가서 아빠 샤워하는 동안 먹어"


꽤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아마 오늘 먹지 못하고 내일 먹어야 하는 게 아닌가 염려했나 보다. 오늘 먹고 잘 수 있다는 아빠의 선언에 둘 다 큰 미소를 지었다. 편의점에 가서 뭔가 고르도록 한 것도, 그걸 늦은 시간에 먹도록 한 것도 다 축구 덕이 아닌가 싶었다. 축구로 끓어오른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아직 사그라들지 않아서 마음이 넉넉했나 보다.


너그럽게 많은 걸 허용한 결과는, 매우 늦은 취침이었다. 소윤이와 시윤이는 10시가 다 되어서 자리에 누웠다. 자리에 눕는 순간까지도 깨알같이 얘기하고, 장난을 치는 아이들을 상대하기에 나에게는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비록 육아 때문은 아니었지만. 아니, 또 생각해 보니까 육아 시간도 적지 않았네.)


"아, 이제 그만하고 얼른 자. 잘 자. 안녕"


오늘도 아내가 어둠 속에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난 빛을 향해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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