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천을 떠나 신림동으로

18.10.13(토)

by 어깨아빠

방이 너무 뜨거워서 밤새 이리저리 뒹굴며 자느라 깊은 잠을 자지 못하다가 아침을 맞았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6시 40분. 잠깐 휴대폰이나 들여다보다가 또 자려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무심결에 고개를 틀어 소윤이가 누워 있는 쪽을 봤더니 소윤이가 날 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더니 배시시 웃었다.


"아빠. 왜 벌써 일어났어여?"

"어 아니야. 다시 잘 거야"

"자지 마여. 나랑 놀자여"

"소윤아. 지금 너무 일찍이야"

"아 싫어여. 나가자여"

"지금 밖에 다른 어른들 주무셔서 나가면 안 돼"

"아빠? 소리가 들리는데여?"


그랬다. 다들 너무 부지런하셔서 안 일어난 사람은 나랑 아내, 장모님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다들 일어나서 아침상을 준비하고 계셨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당연히 시윤이도 눈을 떴고 다 함께 거실로 나갔다. 장인어른도 일어나 계셨다. 장인어른과 소윤이는 마음이 맞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숙소 바로 앞, 서천 해변으로 나갔고 나도 시윤이를 데리고 따라나섰다.


서천 해변은 갯벌 해변이다. 소윤이는 갯벌에 들어가겠다고 폼을 잡고 그랬는데 일단 말렸다. 버려도 상관없는, 갯벌의 흔적이 남아도 상관없는 그런 옷을 미리 준비해왔다. 그걸 입혀야 했다.


"소윤아. 일단 아침 먹고 조금 더 따뜻해지면 옷 갈아입고 그때 다시 오자"


시윤이도 처음에는 찰박찰박 물만 밟는 척하더니 자꾸 더 제대로 놀려는 듯 주저앉으려고 했다. 짧은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다. 아내도 일어났다. 아침부터 숯불을 피워 전어를 구워 먹었다. 다 함께 푸짐한 아침을 먹고 갯벌 타령 무형문화재 지정 전수자처럼 갯벌은 언제 가냐고 물어보는 소윤이를 위해 부지런히 애들 옷을 갈아입혔다. 다행히 날씨가 많이 춥지는 않았다. 소윤이 시윤이 둘 다 철푸덕 앉아서 온 몸에 진흙을 묻혀가며 재미있게 놀았다. 아이들이 더 많이 크기 전에 좀 한적한 곳, 자연 속에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큰 내가 보기에 역시 애들은 자연에 풀어놔야 둥글둥글한 정서가 만들어질 것 같았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서천 같은 곳은 너무 촌이라는 생각을 했다.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놀고 데리고 들어와서 씻겼다. 생각보다는 진흙이 잘 떨어져서 다행이었다. 한 여름에 바닷가에서 놀고 온몸 곳곳 숨은 모래를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쉽게 느껴졌다. 막내 고모, 고모부 댁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러 음식거리, 반찬거리를 소분해서 각 집마다 나누는 과정이 진행됐다. 이제 아내도 장모님 밑에 딸린 계열사가 아닌 독립된 본체로 대우를 받았다.


"자. 이건 가영이네 꺼"


꽃게를 삶고 있었는데 맛을 보라며 상 위에 잘 삶아진 꽃게가 놓였다. 꽃게를 먹고 있는데 순식간에 밥이 치고 들어왔다.


"그냥 앉은 김에 밥 먹어야"


그렇게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소윤이랑 시윤이도 먹이긴 했는데 그리 잘 먹지는 않았다. 나도 꽃게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그냥 밥 몇 숟가락하고 반찬 몇 가지만 집어먹었다고 생각했는데 엄청 배가 불렀다. 전라도 상차림의 위엄.


어제 12시 다 되어서 잠들고 오늘 7시도 안 돼 일어난 소윤이는 극강의 졸림을 호소하고 있었다. 물론 본인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과 행동에 졸림이 뚝뚝 묻어났다. 점점 통제불능 상태에 도달하고 있었다. 시윤이는 한 숨 자고 일어나서 괜찮았다. 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사진도 찍고 우리는 조금 먼저 출발했다. 소윤이가 작은 아버지의 딸, 그러니까 아내의 사촌 동생, 샘이를


"이모 이모"


그러면서 잘 따르더니 헤어질 때도 아쉽다며 이모 손을 놓지 않았다. 아내는 여러 명의 사촌 동생들에게 몇 살이냐고 나이를 묻고는 벌써 그렇게 컸냐며 막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보기에 고모님들 눈에는 가영이가 애를 둘이나 낳은 게 더 신기해 보일 것 같은데.


우리의 목적지는 집이 아니었다. 신림동이었다. 월요일이 (내)엄마 생일이라 주일날 동생네랑 다 같이 모여 밥을 먹기로 했다. 아내랑 얘기하다가 서천에서 바로 신림동으로 가서 하루 자기로 했다. 제대로 된 커피를 먹지 않은 공백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카페인 금단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출발하자마자 첫 번째 휴게소에 들어가 커피를 샀다.


"여보. 운전해 볼래?"

"괜찮을까?"

"뭐. 천천히 가면 되지"


그리하여 아내는 첫 고속도로 주행을 시작했다. 소윤이는 잠들었고 시윤이도 조용히 앉아 있다가 잠들었고. 소윤이는 출발해서 도착할 때까지, 그러니까 거의 3시간을 안 깨고 잤다. 덕분에 아내는 첫 고속도로 주행을 휴게소에 한 번도 들르지 않고 마쳤다.


"우와. 여보 온몸이 쑤신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헤어지고 또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난 소윤이와 시윤이는 당연히 신났고 아내와 나는 역시 늘어졌다. 엄마가 먼저 선수 쳤다.


"저녁 먹고 너네끼리 나갔다 와"


오늘은 정말로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생각이 없었다기보다 계획이 없었다. 장거리 이동으로 인해 몸이 피곤하기도 하고 보고 싶은 영화가 딱히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저 그렇게 미끼를 던져주시니 덥석 물었다.


"여보. 나갈까?"

"그럴까?"


그렇게 또 도망치듯 외출. 역시 영화는 볼만 한 게 없었다.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애들이랑 못 가는 곳 가고 싶다"


그건 언제나 제1의 조건이었다. 샤로수길에 가보기로 했다. 아내는 폭풍 검색을 해서 가볼만한 곳을 찾아봤다. [황홀경] 이라는 카페를 찾아서 갔다. 시끄럽기가 번화가에 있는 스타벅스 못지않기는 했지만 나름 독특한 분위기와 매력이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도무지 아이들 하고는 올 수 없는 그런 곳이라 마음에 들었다. 샤로수길 자체가 좀 그런 것 같다. 첫 느낌은 망원동이랑 비슷했다.


아무튼 밤늦게까지 아내랑 데이트했다. 다음부터는 신림동에 와서 데이트 시간을 얻게 되면 샤로수길에 와야겠다고 얘기를 나눴다. 애들은 곤히 자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지만 내일 아침, 두 녀석은 우리의 몫이 아니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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