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5(월)
일어나지 못했다. 자전거 출근에 맞춰 알람을 맞춰 놨지만 일어나지 못했고 오늘은 차를 가지고 출근했다. 피곤해서 일어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아내가 오늘 나에게 자유시간을 줬으니 퇴근하고 바로 어딘가를 가거나 운동을 하러 가더라도 최대한 이동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문만 열면 나갈 수 있는 상태로 현관 앞에 서서
"소윤이, 시윤이 아빠 뽀뽀"
하면 열심히 달려오는 두 녀석(늘 소윤이가 먼저다)에게 차례대로 뽀뽀를 해주고 아내에게도 하고.(까먹고 안 할 때도 많다) 출근할 때 퇴근할 때 아이들이 보내주고 맞아준다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내 마음의 많은 것들, 주로 없어도 되는 나쁜 것들을 희석시켜주는 어마어마한 효과를 발휘한다.
아내가 준 자유시간이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냥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원래 아내의 필라프리데이인데 목요일에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이 있다고 자진 반납한 게 영 개운치 않았다. 무슨 자유시간 종량제도 아니고.
"여보. 나 오늘 그냥 자유시간 안 할래. 여보나 나갔다 와"
"왜? 나갔다 오라니까"
"원래 여보가 나가는 날이잖아"
"난 목요일에 애들 만나니까"
"아. 그건 그거고. 오늘은 나 집에 있을게"
"자꾸 그러면 진짜 내가 나간다"
"어. 그렇게 해"
다시 반납했다. 원래 주인에게.
오후쯤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식탁 위 그릇에 놓인 고구마깡 사진과 함께.
[청소기 다 돌렸는데 안 끄고 계속하는 척 함]
몰래 과자 먹느라고ㅋㅋㅋㅋㅋㅋ
먹다가 걸렸는데 뭐냐고 물어보길래
단호박 과자라고 함 ㅋㅋㅋㅋㅋㅋ]
생각해보면 소윤이는 아침에 깨서 저녁에 잘 때까지 단 한시도 쉬지 않고 시퍼렇게 두 눈을 뜨고 있으니 '아내의 시간'이라는 건 존재할 수가 없다. 시간까지도 필요 없고 잠깐의 분리 조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일거수일투족을 소윤이와 공유해야 하고 때로는 보고해야 한다. 과자는커녕 두 녀석 밥 챙겨 먹이고 나면 식욕이 싹 달아나는지 요즘은 밥도 제대로 안 먹는다. 아침은 거르기가 일쑤고 점심은 애들 남은 거 먹을 때도 많고.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게 아니라 짜장면 먹을 시간이 없었던 거다.
아내에게 3시 넘어서 영상통화가 왔는데 소윤이 시윤이가 밥을 먹고 있었다. 시윤이는 다 먹었고 소윤이는 먹고 있었다.
"오늘은 밥이 늦었네?"
"아니야. 두 시부터 먹은 거야"
정말 두 시부터인지 아니면 아내의 체감상 시간인지 몰라도 아무튼 소윤이의 태도를 보아하니 충분히 1시간을 소요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아내는 초탈한 듯 별다른 잔소리 없이 인내하고 있었다.
"얼른 먹어. 소윤아"
헬스장이라도 들렀다가 집에 가려고 했는데 그냥 바로 집에 갔다. 기왕 내보낼 거 최대한 빨리 내보내면 좋으니까.
하람이네 집에 가 있던 아내와 소윤이, 시윤이가 돌아왔고 아내는 바로 저녁 준비에 돌입했다. 점심 먹은 지도 얼마 안 되어서 둘 다 잘 안 먹을 것 같았다. 아내는 이것저것 재료를 넣어서 비빔밥(음, 그냥 비비는 행위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붙인 이름)을 만들고 커다란 그릇에 담았다. 내가 한 숟가락씩 번갈아 가며 먹였다.
오늘은 신기하게 시윤이가 나가는 아내를 보고도 울지 않았다. 오히려 현관에 서서
"읏냥 읏냥"
이러면서 손을 까딱까딱 흔들며 배웅했다. 아내가 나간 뒤로는 속전속결. 순식간에 잘 준비를 마치고 방에 들어가 재웠다. 아내는 오늘부터 헬스장에 다닌다. 단지 내에 헬스장이 생겼고 오늘부터 정식 등록 및 이용이 가능하다. 워낙 저렴하기도 하고 그야말로 집 앞이니 필라테스 대신 헬스장에 가겠다고 했다. 내 생각에 아내는 헬스 타입은 아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운동이 주목적이 아닌지는 오래됐다. 그렇다고 운동은 핑계일 뿐이라고 매도하면 또 그것도 사실은 아니고, 불쾌해할 테니 명칭은 유지하되 변경해야겠다. 헬스 프리데이로.
애들 재우고 나와서 통화했을 때 아내는 런닝머신 위에 있었는지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허어 혀보호. 나하 훈도홍 하고호 히써허"
런닝머신 위에서 전화받을 정도면 그렇게 빠른 속도는 아닐 테고 빨라 봐야 경보 수준일 텐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언급하지는 않았다. 누누이 얘기하지만 생각의 10%만 얘기해도 충분하다. 운동을 마친 아내가 전화를 했다.
"응. 운동 다했어?"
"응"
"지금은 어딘데?"
"어. 나 밥 먹으러 왔어"
"아. 뭐?"
"파스타"
아내는 요즘 꽂혀 있는 가게에 파스타를 먹으러 갔다. 만년 다이어터이자 논스톱 체중증가인으로 살아온 나의 경험상 아마 운동은 좋은 해독제가 됐을 거다. 파스타를 먹는다는 죄책감을 말끔히 없애주는.
아내랑 같이 헬스장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 날이 오려면 도대체 앞으로 몇 년이 더 지나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까마득해서 너무 먼 미래의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소윤이가 중간에 한 번 깼다.
"아빠아 아빠아"
급히 불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 왜 소윤아?"
"아빠 내 옆에 누우라고여"
"어 알았어. 아빠 일할 게 있어서"
"그거 그거. 노트북으로여?"
"어. 맞아"
시윤이도 살짝 잠에서 깼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시윤아. 다시 누워"
말 한마디에 자기 자리를 찾아가서 누웠다. 이제 막 말귀 알아듣고 행동할 줄 알게 된 아이들이 주는 흐뭇함이란 정말. 재워놓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집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지만 치우지 않았다.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이대로 두는 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얼른 치워야지 치워야지'
하고 있는데 아내가 돌아왔다. 아내랑 앉아서 잠깐 수다를 떨고 있는데 다시 소윤이가 깼다.
"아빠. 내 옆에 누워여"
"어어. 알았어"
소윤이는 금방 잠들었는데 시윤이가 자지 않았다. 매트리스에 누운 소윤이 옆에 누워 있었는데 바닥에 있는 시윤이의 베시시한 웃음이 어둠을 뚫고 전해졌다. 시윤이 옆으로 내려갔다. 시윤이가 환하게 웃었다.
"시윤아. 뽀뽀"
하고 뽀뽀를 했더니 막 갓난아기처럼 좋아하면서 웃었다. 또 했더니 더 좋아하고 또 했더니 더더 좋아하고. 약간 잠에 취하기도 한 것 같았는데 아무튼 한참 동안 뽀뽀를 퍼부었는데 할 때마다 활짝 활짝 웃어댔다. 금방 다시 자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내에게 노트북 정리와 내일 입고 갈 옷 준비를 부탁하는 카톡을 남겼다. 아내도 금방 들어왔다.
"여보. 얘 봐"
"왜?"
"엄청 웃어"
시윤이는 아내를 보고도 마찬가지 반응이었다. 히죽히죽 한참을 웃었다. 요즘 아내랑 시윤이를 두고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여보. 얘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어"
딱 맞다. 둘째가 부모에게 주는 기쁨은 딱 저 한 문장으로 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안 낳았으면 어쩌긴. 큰일 날 뻔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