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9(목)
함께 처치홈스쿨 하는 교감 선생님네가 점심때쯤 오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주로 아내가 그랬다. 반찬하고, 집 치우고. 난 화장실 청소를 비롯해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을 일단 하고, 아내가 부탁하는 일을 거들었다.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느라 아침을 걸렀더니 (아내와 아이들은 차려줬고) 뒤늦게 배가 고팠다. 냉동실에 있던 구운 식빵을 데워서 먹으려고 식빵 두 장과 딸기잼을 꺼냈다. 그 순간 시윤이가 막 소리를 지르면서 방방 뛰었다. (구체적인 사유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내가 자기가 원하는 걸 못 하게 하니까 거기에 대고 성을 낸 거였다. 가벼운 훈육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거기서도 강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무거운 훈육의 시간으로 넘어갔다. 나와 함께.
훈육은 매우 오래 걸렸다. 나와 보니 식빵 두 장과 딸기잼이 나무 접시에 고이 놓여 있었다. 착잡했지만 배는 채워야 했다. 식탁에 앉아 빵을 먹었다. 소윤이는 자기도 먹고 싶다면서 옆에서 알짱거렸다. 몇 입 줬다. 시윤이는 아내에게 안겨 위로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시윤이에게도 빵을 들이댔더니 입을 벌리고는 베어 먹었다. 표정은 울상이었지만.
시윤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오래 가라앉아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안아서 괜찮냐고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그럼 훈육의 정당성(?)이 훼손되는 일이었다. (어렸을 때 나의 엄마는 이런 상황을 두고 '역성든다'라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훈육의 시간 끝에 이미 충분히 훈육과 사랑의 상관관계에 관해 교감하기도 했고. 대신 시윤이의 말과 행동에 평소처럼 반응했다. 말 시키면 대답해주고 뭔가 요청하면 해결해주고. 육아와 훈육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항상성, 일관성을 잘 지키면 된다. (나처럼 불같은 면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 늘 자책하지만.) 시윤이도 점점 원래대로 돌아왔다. 교감 선생님네가 집에 오기 직전에는 오히려 평소보다 더 기분이 좋은 상태까지 갔다.
교감 선생님네는 오후 1시 30분쯤에 왔다가 7시가 넘어서 갔다. 일상 얘기를 비롯해서 새 학기 준비를 위한 여러 가지를 의논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애들은 총 다섯이었다. 우리는 소윤이, 시윤이. 그쪽은 6살 여자, 4살 남자, 2살(갓 100일) 남자. 2살 막내는 정말 신기하게도 2시간 넘게 소파에서 잤다. 그 시끄러운 환경에도 조금도 칭얼거리지 않았다. 나머지 아이들은 그럭저럭 잘 놀았다. 다만 소윤이와 시윤이가 뭔가 평소랑 달랐다. 평소랑 달랐다기보다는 가끔 나타나는 모습이기는 하지만 아내와 내가 썩 좋아하지 않는, 어른들 얘기하는 데 와서 옆에 앉아 있고 쉬지 않고 먹을 거 찾고. 그 기저에는 아내와 나의 말을 들은 체 만 체 하는 태도가 깔려 있고. 특히 소윤이가 그랬다. 내 생각에는 오늘 너무 일찍 일어났고 (최근에 그런 적이 별로 없었고) 낮잠도 안 자서 그 부작용이 아니었나 싶다. 아무튼 그것 때문에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6시간 동안 어른들이 중요한 얘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었다는 건, 애들도 나름 역할이 컸다는 증거였다.
교감 선생님네가 가고 우리도 잠시 외출을 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답답하기도 했을 테고 (그것도 여러 사람과 함께) 저녁도 먹어야 했다. 점심을 배불리 먹은 데다가 계속 간식을 먹어서 밥을 챙겨 먹는 건 부담스러웠다. 밤 산책과 가족 데이트를 겸해서 스타벅스에 갔다. 가지고 있던 쿠폰을 사용해서 커피와 빵, 케이크를 시켰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 즐거웠다.
시윤이는 카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사실 모두 피곤했다. 나도, 아내도, 애들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잠시의 쉴 틈도 없이 뭔가를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오늘도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잠들었다.
홀로 주방에 서서 오늘의 유산(설거지)을 처리했다. 아까 아내가 싱크대에서 사부작대길래 "내가 이따 할 테니까 손대지 말고 두라"면서 핀잔을 줬는데, 막상 수세미를 드니 아내가 정갈하게 정리해놓은 (심지어 어느 정도 애벌 세척도 된) 그릇이 참 고마웠다. 싱크대 여기저기 제멋대로 널브러져 있는 그릇을 닦는 것과 종류와 크기대로 모여 있는 걸 닦는 건 소모되는 시간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잠시 낭만에 잠겼다.
마음이 고울 때는 이런 사소한 것에서도 아내의 배려와 사랑을 느끼는데, 식기세척기가 이 자리를 대신하면 그런 게 사라지겠구나. 식기세척기로 몸은 편해져도 배려와 사랑의 기회는 잃는 거구나.
'아무리 그래도 식기세척기는 사랑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