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0(금)
아내가 나에게 "오늘은 밖에 좀 나갔다 와도 된다"라고 얘기했다. 어제부터. 나를 향한 배려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모르게 내 안의 무언가 안 좋은 것을 발산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그걸 감지한 아내가 더 심해지기 전에 내리는 예방 조치라고 생각하고 순순히 따르고 있다. (싫은데 억지로라는 건 아니다.)
소윤이와 시윤이가 나더러 어디를 가는 거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냥. 아빠 뭐 할 게 좀 있어서"
라고 얼버무렸지만 소윤이의 정밀한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너무 헐거운 답변이었겠지. 무슨 일을 어디에서 왜 하는 건지를 알고 싶어 했다.
"소윤아. 아빠도 잘 몰라"
정말 그랬으니까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일단 얼버무렸다. 갔다 오면 얘기해 주겠다면서.
밤에는 금요철야예배가 있었는데 부흥회 기간이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이었다. 아내에게 같이 갈 생각이면 소윤이와 시윤이를 재우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고 집을 떠났다. 함께 갈 건지 말 건지는 전적으로 아내의 선택이었고.
아내에게 둘 다 재웠다는 연락을 받았다. 통상의 낮잠 시간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30분쯤 지나고 다시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강소윤이 30분 만에 일어난 데다 방에 누워있다 나오라고 했더니 돌아다녀서 시윤이까지 깨 가지고 나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
자고 있는 형제(자매, 남매)를 깨우는 건 참 참기 어려운 일이긴 하다.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잠과의 씨름을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라 몸에 배는 거 같다. [자고 있을 때는 굳이]가 기본 공식인데 그걸 유린하는 파괴자가 나타난다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애들이 이렇게 컸어도. 그나마 아내 스스로 가라앉히고 있다고 얘기하는 건 다행이었다. 그 일로 뚜껑이 열렸다면 그렇게 소상하게 상황을 전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을 테니까.
저녁 시간 전에 집에 돌아가서 아내와 아이들의 저녁을 챙겼다. 집에 마땅한 반찬이 없어서 크게 손이 갈 일은 없었지만, '이번에는 또 뭘 먹일까'하는 고민을 나눠서 지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 힘이 되고 있지 않을까.
보통의 금요철야예배 때보다 1시간 30분 정도 빨리 시작하니 그만큼 빨리 끝났고, 예배 전 연습 시간도 평소보다 짧아서 아내 혼자 애들하고 있어야 하는 시간도 줄어드니 실제로 부담이 덜하기도 했다. 게다가 소윤이와 시윤이도 늦은 낮잠을 자서 예배 시간 내내 아주 또렷한 상태를 유지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에 집중했다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의 설교는 미국에서 오신 미국인 목사님이었다. 그 아내분께서 통역을 맡으셨고. 목사님의 설교를 듣던 소윤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빠. 그런데 외국에서 오신 목사님이에여?"
"응. 맞아"
"그런데 한국말도 하시네?"
"그래? 어떤 거?"
"할렐루야랑 아멘이여"
예배 시간이라 자세한 설명은 못하고 그저 웃었다. 시윤이는 시윤이대로 외국어로 설교하시는 목사님이 신기했는지 엄청 집중했다. 목사님이 웃긴 표정과 행동을 보이면 막 웃기도 했다.
이렇게 기록하면 매우 수월하고 힘이 하나도 들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할까 봐, 덧붙인다. 시윤이는 아내와, 소윤이는 나와 예배를 드렸다. 시윤이는 끊임없이 자세와 위치를 바꾸며 아내를 낑낑거리게 만들었고, 소윤이는 예배 시간 내내 내 무릎 위에 앉았다. 20kg에 육박하는 무언가를 계속 허벅다리 위에 올려놓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그 무언가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나의 딸일지라도.
소윤이는 예배를 마칠 무렵 다시 나에게 속삭였다.
"아빠. 배가 고파여"
글쎄. 난 아직도 소윤이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정말 배가 고팠던 건지 아니면 눈치껏 편의점에 가기 위한 가장 정당한 핑계를 찾았던 건지. 다만 소윤이가 그 얘기를 꺼내기 전부터, 어쨌든 어른의 예배가 지루하고 지겨울 텐데 자리를 지키며 소란을 피우지 않은 아이들이 기특해서 작은 선물(그래봐야 편의점에서 군것질거리 한두 개 사주는 거지만)이라도 사줄까 생각하긴 했다.
"소윤아. 엄마한테 소윤이랑 시윤이가 예배를 잘 드려서 아빠가 편의점에 가서 뭐라도 사주고 싶다고 하시는데, 사줘도 괜찮은지 물어봐"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다는 건 아내와 나의 말과 행동에서 당연히 드러나겠지만, 때로는 이렇게 의식적으로 꺼내야 한다. 애들은 신비로운 존재다. 모르는 거 같은데 다 알고, 다 알 거 같은데 하나도 모르니까.
소윤이와 시윤이를 데리고 편의점에 들렀다. 배가 고프다고 했으니까 밥을 먹으라면서 햇반과 김을 사줬으면 소윤이와 시윤이가 황당했을 거다.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감춘 욕망도 해갈하면서 배고픔이라는 실제의 욕구도 해결하는 절충안을 찾았다.
"소윤아, 시윤아. 우리 그럼 꿀호떡이랑 우유 먹자. 이거 집에 가서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으면 엄청 맛있어"
소윤이와 시윤이는 초코우유도 하나씩 집었다. 모르는 척했다.
"아빠아. 금데 왜 펴니덤 가떠여엉?"
"소윤이랑 시윤이가 예배시간에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예배를 잘 드려서. 예배를 잘 드렸다고 항상 그러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아빠가 그러고 싶었어"
"아빠아. 우디(우리) 에베 달 드려떠여엉?"
"응. 아빠 생각에는 그 정도면 잘 드린 거 같아"
"그대여엉?(그래영?)"
금요철야예배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른 시간이었지만 (보통 금요철야예배를 마치고 집에 오면 11시니까) 어쨌든 평소에는 잘 시간이었다. 꿀호떡을 데워서 소윤이와 시윤이에게 두 개씩 줬다. 둘 다 어찌나 잘 먹는지.
"이 늦은 시간에 이러고 있다니"
소윤이와 시윤이는 맛있게 야식을 먹고, 아내가 씻는 동안 책도 읽고 나서 아내와 함께 자러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