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 온 배변 훈련

20.01.16(목)

by 어깨아빠

아무 일도 없었다. 잡힌 약속도 없었던 건 물론이고 어딘가 나갈 생각도 없었다. 아내와 나 모두.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대신 큰 변화가 하나 생겼다. 이것 때문에 외출 욕구가 사라진지도 모르겠다. 미루고 미뤘던 시윤이의 배변 훈련을 시작했다.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미루기만 하다가 제대로 시작한 거다. 이게 빠른 건지 늦은 건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게 중요했으면 진작에 했겠지. 그냥 이제 기저귀 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아니, 이골이 났다. 그만하고 싶었다. 시윤이의 작고 탐스러운 엉덩이에 눌러붙은 그의 잔해를 닦아내는, 아니 떼어내는 일을 그만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두려웠다. 완전히 훈련이 되기 전까지 겪어야 할 인고의 시간이. 그래서 괜히 시윤이한테 "시윤아. 이제 쉬 마려우면 기저귀에 하지 말고 쉬 하고 싶다고 얘기해 봐"라고 얘기했지만 애 키워본 사람, 특히 배변 훈련해 본 사람은 안다. 기저귀를 차고 있는 아이에게 아무리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걸. 배변 훈련은 탈 기저귀로부터 시작되고, 그게 반이다. 기저귀를 벗어던진다는 건 똥과 오줌으로 얼룩진 팬티를 시도 때도 없이 마주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니까.


아내는 과감하게 시윤이 기저귀를 벗기고 팬티를 입혔다.


"시윤아. 이제 쉬 마려우면 그냥 여기에 하면 안 되고 엄마나 아빠한테 쉬 마렵다고 해야 돼. 똥 마려워도 마찬가지고. 알았지?"

"쉬 마여여어. 이케?"

"어. 그렇게"


사실 난 그렇게 큰 각오는 없었다. '그냥 뭐 하다 보면 되겠지' 정도로 여겼다. 그게 아니었다. 시윤이는 내 체감상 1시간 만에 바지와 팬티를 대여섯 번 갈아입었다. 실제 횟수는 모르겠지만 갈아입히면 싸고, 갈아입혀 놓고 돌아서면 또 싸고. 이런 느낌이었다. 시윤이의 잘못은 하나도 없을뿐더러 괜히 어긋나서 먼 길을 돌아갈까 봐 내색도 못했다. 인공의 미소를 보이며 시윤이에게 얘기했다.


"아이고. 우리 시윤이가 또 쉬를 했네. 아직 어색해서 그런가 보다. 시윤아. 다음에는 쉬 마려우면 그때 바로 엄마나 아빠한테 얘기해. 알았지?"

"네"


주로 아내가 담당했다. 아내가 너무 힘겨울 때는 나도 투입됐지만 거의 아내 몫이었다. 아내가 더 차분하게, 동요하지 않고 대처한다. 오줌으로 얼룩진 시윤이의 팬티와 바지를 빠느라 아내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버린 건가'


싶은 좌절과 절망이 고개를 들 때쯤 갑자기 시윤이가 얘기했다.


"엄마. 쉬하고 싶어여엉"


역시 사람은 학습과 적응의 동물이던가. 첫 성공을 이뤄냈다. 그러더니 그 후로는 곧 잘 했다. 물론 중간에 실수도 있었지만 연이은 성공 중간에 낀, 얼마든지 기쁨으로 무시할만한 정도였다. 다만 횟수가 너무 잦았다. 역시 체감이지만, 마치 10분에 한 번씩 오줌을 싸는 느낌이었다. 아마 스스로도 긴장해서 그랬을 거다. 정말 신기한 건 실제로 오줌과 오줌 사이의 시간이 짧았는데도 양이 만만치 않았다. 시윤이의 변의는 대부분 거짓이 아닌 진실이었다.


"여보. 시윤이에 비하면 소윤이는 수월했네"

"아니야. 여보. 그때는 여보가 바쁠 때라 몰라서 그래. 소윤이도 힘들었어"

"아, 그래?"


내 기억에 소윤이의 배변 훈련은 매우 수월하게, 짧은 기간에 마쳤는데, 아내는 아니라고 했다. 아내 말대로 극히 일부만 전해 들은 나의 착각(혹은 오해)인 듯했다. 아무튼 이참에 엄마, 아빠를 제대로 골탕 먹여야겠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시윤이는 부지런히 쏘아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똥이 마렵다고 했다. 급히 휴대용 유아 변기에 앉혔는데 시원하게, 아주 큼지막하게 밀어냈다. 아내와 나는 서로 짜지 않았지만, 짠 듯 반응했다.


"우와! 우리 시윤이. 변기에 앉아서 똥도 싸네!"

"오호! 대단한데, 강시윤? 이야. 역시 오빠네 오빠야"

"시윤아. 진짜 변기에 똥 쌌어? 대단하다"


소윤이는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누나까지 합세해서 자기 인생의 첫 변기 똥을 축하하며 호들갑 떠는 모습에 잠시 어리둥절했다. 잠시였고, 금방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마치 이렇게 얘기하는 거 같았다.


'어? 뭐지? 이게 진짜 좋은 일인가?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데?'


불과 몇 시간 안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팬티와 바지를 적시던 시윤이가 비록 자주여서 힘들긴 해도, 싸기 전에 의사를 밝히는 게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거기에 똥도 한 번 성공하고.


하루 내내 똥, 오줌과 씨름했더니 좀이 쑤셨다. 애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다이소에 남자아이용 소변기를 산다는 핑계로 외출을 했다. 아내에게도 의사를 물었지만 집에 있고 싶다고 해서 애들만 데리고 나왔다. 차는 두고. 단 한 가지, 그러나 가장 큰 두려움은 다름 아닌 시윤이의 똥과 오줌이었다.


시윤이를 위해 (나를 위해서인가) 작은 플라스틱 우유통을 하나 챙겼다.


'이 녀석아. 이게 너의 움직이는 화장실이다'


다이소는 버스로 10분 정도 거리였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시윤이는 버스에서 내려서 한 번, 다이소에서 나와서 한 번. 집에 돌아갈 때까지 이렇게 두 번 오줌을 쌌다. 혹시 버스에서, 길거리에서 아무 데서나 싸지르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그런 일은 업었다. 오히려 내 예상보다 훨씬 앞서갔다.


아기 소변기를 집었는데 시윤이가 그건 싫다면서 거기에 쉬를 안 할 거라면서 고집을 피웠다.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 파악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그건 싫고 집에 있는 것에만 할 거라는 의지는 분명했다. 대충 얼버무리며 지나갔다. 일단 집에 두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외출이 너무 빨리 끝났다. 아내에게 쉬는 시간을 주려는 목적도 분명히 있어서 나온 건데, 쉬고 말고 할 것도 없을 빠른 시간에 모든 걸 완수했다. 사실 내가 겁이 나서 그랬다. 여벌의 옷을 챙기긴 했지만 뭔가 마음이 불안했다. 쉬 마렵다는 얘기만 들으면 무슨 재난 상황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나도 모르게 호들갑을 떨었다.


"시윤아. 쉬 마렵다고? 잠깐만. 참아야 돼. 싸면 안 돼. 잠깐만 기다려"


바지를 내리면서도


"아직이야. 잠깐. 잠깐"


앙증맞은 시윤이의 소중이가 플라스틱 우유 통에 쏙 들어가고 나서야


"자, 이제 됐다. 시윤아. 쉬. 쉬. 쉬"


귀가 본능이 발동됐다. 아내도 아내지만 애들도 아쉬워했다. 특히 소윤이.


"아빠. 이제 벌써 다 샀어여?"

"어. 그러네"

"그럼 우리 이제 어디 가여?"

"집에 가야지"

"그래여? 뭔가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쉽다"


그렇다고 어디 다른 데를 가서 시간을 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아쉬운 대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초미니)붕어빵 가게에서 팥 붕어빵 5개, 슈크림 붕어빵 5개를 샀다. 옛날 붕어빵에 비하면 극악의 가성비였지만, 애들에게 먹이기에는 아주 좋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에서 붕어빵을 나눠줬다. 그나마 버스라도 안 탔으면 그야말로 무료한 외출이었을 뻔했다.


아내는 쉬기는커녕 새로운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고, 세탁기에 있던 건 빼서 건조기로 옮기고, 건조기에 있던 건 꺼내서 거실 바닥에 던져두고, 원래 거실 바닥에 있던 건 개고. 빨래 지옥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그 변기는 싫다면서 자기는 집에 있는 변기에만 오줌이든 똥이든 싸겠다던 시윤이는 아내와 나, 소윤이의 열렬한 응원과 격려로 새로 산 입식 소변기에도 무사히(?) 분출을 했다. 믿기지 않았다. 몇 시간 만에 이렇게 자기 배변 의지를 명확히 표현하다니. 늦게 시작한 만큼 소통이 원활한 건가 싶기도 했다.


새로웠다. 우리 집에서 나 아닌 누군가가 입식 배변을 한다는 게. 난 시윤이이게 필수 과정을 전수했다.


"시윤아. 다 쌌어?"

"네"

"그래. 그럼 털어"


시윤이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하루 종일 배변의 공포에 시달린 데다가 바깥공기를 조금도 마시지 못한 아내가 마음에 걸렸다. 저녁 식사 시간도 일러서 시간의 여유가 조금 있기도 했고.


"우리 저녁 먹고 한살림 산책이나 갈까?"

"대박. 완전 통했어. 나도 그 생각 하고 있었는데"


맞다. 통하긴 했다. 다만 내가 아내의 표정과 어떤 느낌에서 [밤 외출]의 욕구도 읽기는 했지만.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살림으로 산책을 나갔다. 한살림에서 마무리하기에는 마치 낮 외출처럼 아쉬웠다.


"어디 카페라도 갈까?"

"그럴까?"

"투썸에 가서 애들 케이크라도 사 줄까? 쿠폰으로?"

"그래"

"여보는 커피 안 마셔?"

"난 괜찮아"

"마셔도 돼. 스타벅스 쿠폰으로 사 줄게. 커피는 거기서 사고 투썸에 가서 케이크 먹으면 되지. 좀 그런가?"

"아니. 뭘 좀 그래. 상관없지"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서 다른 카페로 갔다. 아내와 소윤이가 케이크를 주문하는 동안 나와 시윤이는 미리 2층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았다. 시윤이 점퍼도 벗기고, 스카프도 풀어줬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 여기 외부 음식 반입이 안 된대"


내가 들고 온 스타벅스 커피가 문제였다. 케이크만 사서 다시 스타벅스로 갔다. 아내와 아이들은 2층에 가서 자리를 잡았고 난 아까 그 커피를 다시 머그컵에 옮겨달라고 했다.


"아, 죄송합니다"


비록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긴 했지만 즐겁고 유쾌한 가족 시간을 보냈다.


시윤이는 카페에서도, 집에서도 배변 실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내와 나는 어느 정도의 실수와 과도기를 각오했는데 그런 게 없었다.


"여보. 잘 때는 어떻게 하지?"

"글쎄. 여보가 알아서 해"


잘 때 기저귀를 채우면 혹시 모를 실수를 처리하는 게 편리하지만(편리한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기저귀만 치우면 되지만) 오히려 잘못된 습관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다.


"엄마. 그런데 밤에 기저귀 하면 시윤이가 밤에는 괜찮나 보다 이렇게 생각해서 오줌을 쌀 지도 몰라여"


소윤이처럼 다섯 살만 먹어도 이해 가능한 문제였다. 아내와 나는 아주 잠시 고민했고, 난 아내에게 모든 선택과 권한을 위임했다. 아내는 그래도 아직은 밤에는 기저귀를 채우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나도 아내의 말에 동의했다.


"시윤아. 잘 때는 기저귀를 하지만 그래도 쉬가 마려우면 참고 변기에 가서 하는 거야. 알았지?"


시윤아. 잘 때는 뭐 기대 안 해. 일단 첫 변기 소변과 변기 똥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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